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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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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9회 작성일 18-11-03 17:07

본문

고양이 덕구가 낳은 새끼 세 마리가 다 죽었다.

내가 고양이 장의사도 아니고!

잇따른 고양이들의 죽음으로 삽을 들고 들판으로 나가

고양이 무덤을 파는 남편이 투덜거렸다

고양이가 죽으면 집에서 쓰던 타올을 감아서 묻어 주는데

우리집에 타올이 몇 장 남지 않았다.

예방 접종을 해주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산과 들판이 가깝다보니

뱀에 물려 죽기도 하고, 농가가 많아 약을 먹고​ 죽기도 한다.

사실 우리 부부는 고양이를 기를려고 기르는 것이 아니다.

이사를 왔더니 지붕과 마당에 고양이들이 살고 있었고

돈과 거래를 알지 못하는 그들의 집을 돈을 주고 세들었다고

뺏기도 뭣해서 시작한 동거였다. 우선 쓰레기 봉투를 뜯지 않도록

뭐든 먹을 것을 주었고, 그들에게 우리집에 가니 먹을 것을 주더라고

소문이 났던지, 한마리씩 새끼 낳은 어미들이 몸과 새끼들을 의탁

해온 것이다. 야박한 일이지만 그런 길고양이들에게 일일이 의료 혜택을

베풀만큼 우리 살림이 그리 넉넉치를 못했다. 엠이, 메롱고, 까망이, 재동이,

맥주, 양주,흑주(술이 한 잔 되어 퇴근하는 날이 많아 새끼 고양이들 이름을

털 색깔에 따라 술 이름으로 지었다),난이, 난이의 자매....많은 고양이들이

잠시 튀는 불꽃처럼 우리 마당에 왔다 사라져 갔다. 늘 밥이나 줘야지 하는

결심과는 달리 밥의 찰기 탓인지 금새 정이 붙고 마는데, 올 여름, 그 폭염에

낳은 새끼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죽어 나가니 마음이 쑥대밭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어미 덕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퇴근해오면 들고 오는 밥냄새에

허덕허덕한다. 다행이다. 상심이 크서 웅크리고 있으면, 녀석도 죽을까봐

노심초사 할 것인데, 유행가 노래 가사처럼 밥만 잘먹어 정말 다행이다. 그런

것이다. 밥만 잘 먹으면 되는 것이다. 밥만 잘 먹으면 사는 것이다. 새끼를

또 낳는다해도 걱정이지 않은가? 죽은 새끼 고양이 중 한마리가 주인집 창고에

똥을 누어서 가을 걷이가 한참이던 이모의 역정에 간을 조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어디 쫓겨날데도 없는데, 아직 어린 것들을 어디로 보낼수도 없고

얼마나 난감 했었던가? 괜찮다. 그 어미 조차도 밥만 잘 먹고 있지 않은가?


주 오일 근무란 건 참 좋다. 편의점에서 임시로 산 생리대처럼 한 묶음 풀어 놓으면

금새 일주일이 다 쓰고 없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는 쉬는 것을, 혹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일을 죄악처럼 여기게 되었을까? 돈으로 환전 되지 않는 시간은

헛된 것이라고 누가 주입한 것일까? 그리고 쉼 또한 쉼을 위한 쉼이여서는 않되고

일을 위한 충전이여야 한다고 믿게 된 것일까? 하나님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못 박지 않았다면 지구는 7일 중 단 하루도 거룩해지지 못하고 먹고 사는 일에 허덕

였을 것이다.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쉬어야 한다고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아마도 칠일 중 하루는 충전기에 꽂힌

충전기처럼 생기를 주신 존재로부터 생기를 충전하는 날로 삼아라고 하시는 것 같다. 충전기는 충전 되는 동안 어딘가에 꽂혀서 멀리가지 않는다. 거룩은 에너지의

원천이 지니는 어떤 특성일 것이다. 주일날 교회에 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쉬는

날은 먹고 사는 일을 떠나 나를 거룩히 대접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일하는 날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식판처럼 틀에 박힌 식사를 했다면, 쉬는 날, 밥그릇, 국그릇, 접시와 종지와 맛과 분위기까지 잘 갖추어서 제사장에게서 제사를 받듯 나를 귀하게

대접하자는 것이다. 비싼 식당에서 외식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한번 해먹어 보고 싶었던 음식을 꼼꼼하게 장을 봐서 한껏 치장을 한 식탁에

차려놓고 친한 친구도 불러서 술도 한 잔 곁들여서 하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나를 먹여 살리느라 뼛골이 빠진 내가 산을 좋아한다면 산으로 보내고, 바다를 좋아한다면 바다로 보내고, 잠만 퍼질러 자고 싶다면 또 그렇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매사에 전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쉬는 것도 얼마나 전투적으로 쉬는지 뭐라도 뜻 깊고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허무감에 사로 잡히는 것이다. 그저 가을이 왔다는데 카카오톡 사진에 올릴만한 변변한 산을 가야 직성이 풀리고

미뤘던 머리를 하고, 평일의 땜빵으로 휴일을 쓰는 것이다. 그야말로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추는 것이 쉬는 일이다. 아무 의미도 찾지 말고, 시간에서 무엇인가를 건지려고 뜰채를 들지 말 것이다. 늘 화장을 바르고 찝찝함을 견디던 얼굴을 푸석푸석하게 내버려두고, 슬리퍼를 신고, 츄리닝을 입고 반사회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원한다면 돈을 쓰고 깜짝 놀랄만큼 예쁘게 차려 입고 친구를 만나면 되는 것이다. 나는 커다란 천체 망원경이 있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쉬는 날은 나를 이 지구에서 잠시 떠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내 둘레가 사실을 얼마나 거룩한지 돌아보게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빛나는 우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확인 하고 싶은 것이다.

가을 바람이 차다. 사실은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순간이 시고 그림인 것이다.

감나무 잎이 추락을 즐기듯, 휘파람 소리처럼 떨어지고, 큰 물방울 무늬의 삐에로 같은 겨울 잠옷 위에 패딩 조끼를 걸쳐 입고 슬리퍼를 신고, 오랫동안 서성이며 앞산의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며 나는 서 있는 것이다. 겨울에는 눈을 기다릴 것이다. 차다는 느낌은 얼마나 황홀한 감각인지, 겨울을 지나고 부는 봄바람의 감촉은 또 얼마나 보드라운지, 외로움은 또 얼마나 간절하고 애틋한 허기인지,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은 욕심이다. 가만히 견디는 외로움의 맛은 초여름 풀밭에 누워 가만히 씹어보던 삘기처럼 달큰하고 심심하다. 내 쉼의 맛도, 어릴적, 손만 뻗치면 뽑아지던 그 풀의 새순맛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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