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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잘 퍼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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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공덕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1회 작성일 18-11-2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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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반에는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병원 직원들에게 국을 퍼 준다.

어디가 아파서 의사 앞에 서는 나나, 국을 한 그릇 받기 위해 내 앞에 서는

의사나 그 절실함에 차이는 없는 것 같다. ​먹어야 살고, 아프지 않아야

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날, 그 끼니는 한 번 먹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고, 그들 역시도 벌어 먹고 살거라고 온 일터에서 한 끼 먹는 식사이니

국 한 그릇에도 웃음과 정성을 담아 보려고 노력은 한다. 바쁜데 뭐하러 파를

일일이 국그릇마다 셋팅 하려고 하냐며 바트에 가득한 대파를 반이나

뜨거운 국솥에 들어부어버리고는, 내게도 그렇게 하라고 시켰지만, 나는

그릇 그릇 일일이 파를 셋팅해 놓는다. ​콩나물 국이나 계란국이나 파만

동동 뜨 있어도 맛이 있어 보이거니와 실제로 맛도 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눈을 맞추고 웃으며 맛 있게 드시라는 인사를 건낸다. 식판에 먹는 밥은

정도 느껴지지 않고,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사료를 먹는 개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의 식사라기 보다는 기계의 연료를 채우는 기분도 든다.

맛 있게 드시라고, 눈 맞춰 말해주면, 왠지 조금은 더 맛있어 질 것 같고

그 식사 시간이 사람다워질 것 같아, 혹시 침이 튀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꼭 빠뜨리지 않고 그렇게 말한다. 사람이 지나가면 또 사람이 오고, 또, 또

사람이 오는 것, 정말 사람을 사람 같이 보기 힘들게 만든다. 달리는 차를

스쳐가는 가로수 만큼도 살아 있는 대상처럼 느껴지지 않고, 사람의 개별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아니 누구라도 건더기를 더 달라던지, 국물만 달라던지,

또 아니면 조금만 달라던지, 그들이 개체이기 때문에 하는 개별적인 주문들에

스트레스만 받는다. 그들은 똑 같이 요구해야 마땅한 사람들인 것이다. 세상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너무 흔하다는 것이 사람에 대한 소중한 감정을 잃게

만드는 것 같다. 더러운 집에 너무 많은 바퀴벌레처럼 사람을 징그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감정을, 한 사람, 한 사람, 우주에서 단 하나 뿐인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일부러라도 만들지만, 정말 그것은 어렵다.

다만, 그저 노력일 뿐이다. 아무리 찾아도 세잎 클로버 뿐인 것이다. 그 무더기 속에서

딱 하나가 네 잎이라면, 그 잎에게는 행운이 아니라 재앙인 것이다. 딱 한 명 키가

초등학교 일학년에서 멈춘듯한 간호사가, 말하자면 우리가 그렇게 찾는 네잎 크로버

인 것이다. 나는 사람을 다 똑 같이 사랑해야 하는지, 당신만 특별하게 사랑해야 하는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다 똑 같이 특별하게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일까? 다 똑 같이

특별하게 사랑하는 내 웃음은 그들이 들고 있는 식판처럼 똑 같은 것일텐데,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난 친절한 국 퍼는 아줌마로 보이고 싶은 걸까? 내가 웃는 얼굴로

국을 퍼 주면 그들이 조금이라도 기분 좋아 질 것 같아서 웃는 것일까? 불친절도 싫지만

직업적인 친절도 썩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나는 그 시간에 그기서 그 일을 해야 시급과

일당을 받는 것일 뿐 그들이 밥을 어떻게, 어떤 기분으로 먹든지 상관 없는 것이다. 솔직히

그런 것이다. 외려 바깥에 나가면 늘 vip대접을 받을텐데, 여기서라도 똑 같이 대접 받아라

싶은지도 모른다. 의사나, 간호사나, 간병인 할머니나, 미화원이나, 병원 기물을 수리하는

정비 아저씨나 똑 같은 국을 먹는 것이 통쾌하지 않은가? 어쨌거나 모두 죽어야 한다는 사실처럼

불가피한 평등은 못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이리저리 깊이 생각하면 내 웃음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내 웃음은 식당 입구에 프라스틱으로 만들어 놓은 모형 음식 같은 것이다.

인상을 쓰고 있거나 무표정 해도 그들이 국을 먹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다. 그들은 내 표정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음식도 표정도 모두 영혼이 없다. 애초에 아예, 원래 없는 것을

있어야 한다고 우린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린 몸일 뿐이다. 마음은 몸의 결과물이거나 몸의 일부

인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고장나면 마음이 박살나는 것이다. 영혼 같은 것은 없으면 없을수록

사람들은 잘, 더 잘 사는 것이다. 파는 그릇 그릇 씨 뿌리듯 셋팅하지 않고, 큰 바트에 있는 것을

반이나 들어 부어버리고, 어떤 그릇에는 파가 연못의 수련잎처럼 가득하고, 어떤 그릇에는 한

조각도 없어도 상관 없이, 쭉 스무 그릇쯤 퍼 놓고는, 탁자를 닦거나, 다른 일들을 처리하러 가버리

면 되는 것이다. 쳐 먹거나 말거나 시간만 떼우고, 빨리 시간이 가서 나도 식판 하나 들고 배를

채우고 싶은 것이다.

그러지 말자.  어떻게 하면 사람에 대한 애지중지를 회복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

사람이 징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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