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8年 12月 14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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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1회 작성일 18-12-14 22:57본문
鵲巢日記 18年 12月 14日
맑았다.
오전에 울산에서 여러 번 전화를 받았다. 예산이 끝나면 다음 달 기계를 들여놓기로 했다. 추후 일정을 주시겠다고 행정실에서 통보를 받았다.
시집 여러 권을 받았다.
점심때였다. 모 학교 교수님께서 본점에 다녀가셨나 보다. 문이 잠겨 카페에서 일을 보지 못했다. 너무 죄송했다. 늦은 오후쯤 다녀가셨다.
새로 들어온 시집 중 한 권에서 한 편의 시를 읽고 감상문을 썼다. 시마을과 경산 문협에 게시했다.
조감도에서 배 선생을 뵈었다. 차 한 잔 했으면 했는데 여간 바빠서 미처 함께 하지 못해 죄송했다.
조감도에서 동인 문 형을 만나 청도에 함께 내려갔다.
오후에 청도 카페리*에 커피 배송했다. 점장의 어머님은 올해 일흔 하나다. 치매 끼가 좀 있다고 하셨다.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한다며 강조했다. 우리 집 어머니는 돈 빌려 준 것은 금석처럼 잘 잊지 않는다고 대구 했다. 함께 웃었다.
여기서 가까운 우 사장 가게에 커피를 드렸다. 우 사장께 전에 받았던 의자의 답례로 책 여러 권을 드렸다.
점장 배 선생께서 전화다. 며칠 전에 컵 가져갔던 손님이 컵을 가져오셨다고 한다. 컵이 너무 예뻐 가져 갔다는데 대표 오실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시는 것을 점장께서 돌려보내셨다. 참! 얼마나 우사인가! 부끄럽고 남사스러운 일이었다. 혼자 운영하는 카페라면 그냥 모른 체 넘어갈 일이다만, 여럿이 있으니 사건을 파헤치는 것도 경찰에 신고한 것도 그 신고에 따라 사죄한 것도 원칙이었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CCTV가 그리 선명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동네 다니는 것도 무섭다고 하더니 꼭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청도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문 형과 함께 했다. 형은 이 집 국밥을 꽤 좋아하셨다. 다시 경산 오는 길, 문 형은 여러 말씀을 하셨는데 순간 언뜻 깨는 말씀에 가슴이 북받쳤다. 세상 떠나도 무언가 남겨야 한다는 말씀과 여태껏 삶의 반성에 대한 뉘우침은 가슴이 먹먹했다. 형은 꼭 해낼 것이다.
論語 述而 16章
子曰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공자께서 이르시길,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신 뒤에 팔을 베고 누웠으니 그 가운데도 즐거움이 있다.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부귀하게 되는 것은 나에게는 뜬구름과 같다.
飯疏食반소사 거친 밥을 먹다. 飯반은 '먹다'라는 뜻의 동사.
飯黍毋以箸.반서무이저. 기장밥을 먹을 때는 젓가락을 쓰지 마라. 禮記·曲禮 上
疏食소사: 밥사, 거친 밥. 보리밥이나 잡곡밥 따위의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밥을 가리킨다.
富且貴부차귀, 부유하고 또한 고귀하다. 且차, 체증(遞增)관계를 표시하는 접속사.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수치심도 있고 감화도 받게 된다. 論語·爲政 3
園中竹운중죽 / 洪亮浩홍량호
靑靑園中竹 雪壓枝半披
莫以枝半披 遂謂節可移
苟無歲寒不改操 安得雪中靑如斯
청청원중죽 설압지반피
막이지반피 수위절가이
구무세한불개조 안득설중청여사
푸른 동산에 대나무 눈에 짓눌려 가지 반쯤 휘었다.
가지 반 휘었다고 하지마라. 절개 꺾었다느니
진실로 한겨울 아니라 지조 지키지 않았다면
눈 속에서도 이와 같이 푸를 수 있을까
시인의 생몰연대는 모르겠다. 내가 가진 이 책은 洪亮浩로 되어 있는데 조회하니 洪良浩가 아닌가 싶다. 홍양호洪良浩라면 1724년 生하여 1802년에 卒하였다. 아무래도 책이 잘못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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