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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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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전영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6회 작성일 17-08-1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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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증

  

 

  

  외출하려는데 핸드폰에 어머니가 나타났다. 바쁠 때 이런 일이 잦다. 청력을 잃은 구순의 어머니는 전혀 듣지 못하신다. 어머니와 함께 철산역을 향해 걸었다. 시골에 홀로 계시니 얼마나 답답할까. 듣지 못하니 노인당에도 못 가고 텔레비전만이 유일한 벗이다. 전철을 몇 대 보내는 동안 이야기는 끝이 없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들어줄 귀가 필요한 모양이다. 말이 고플 때마다 나를 찾으니 어쩌겠는가. 어느 때는 3시간 동안 전화기를 들고 있기도 한다.

 

  만원 열차에 어머니도 함께 탔다. 옆 사람이 우리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귀에 바짝 붙였다. 대꾸도 하지 않는데 듣지 못하는 어머니는 혼잣말만 계속한다. ‘워따워따, 오메오메’ 소리가 과거와 현재의 문을 여닫을 때마다 장단처럼 끼어든다. 내가 태어났던 유월의 더위와 고추를 달고 나오지 않아 서럽게 울었다는 레퍼토리는 통화 때마다 빼놓지 않는다. 혼수로 보낸 가난한 보따리에 마음 아팠다는, 참 오래된 한스러운 역사가 줄줄이 등장한다.

  어머니 역사(歷史)에서 빠질 수 없는 부록이 있다. 종갓집 외아들에게 시집와서 아들 낳지 못한 죄인으로 살아온 일생이다. 시어머니의 모진 시집살이와 열 번이 넘는 봉제사를 받들던 이야기엔 한숨이 섞인다. 아버지의 바람기와 아들의 한을 풀어 갈 때는 숨찬 목소리에 이슬이 번진다. “내 가슴을 열어보면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라는 말도 등장한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자식들 집집이 걱정거리로 바삭해진 가슴에 찬바람이 지나간다. 동네 애경사까지 등장하여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도 한다.

  그러는 사이 대림역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서 강남역에 내렸다. 한 시간이나 혼자 얘기를 하셨는데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늘 빼놓지 않는 유언 같은 당부다. 어느덧 도착한 강남문화원, 어머니를 전화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전화가 끊긴 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내가 수업하는 내내 어느 허공에 당부하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거짓말 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라.

  하나님께 잘해라.

 

  영화 ‘프리덤’은 100년의 역사를 넘나든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사자 ‘존 뉴턴’이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단다. 흑인 노예 사무엘이 자유를 찾아 도망하는 과정과 노예선 선장인 ‘존 뉴턴’이 영혼의 자유를 찾는 과정을 그렸다.

  흑인 노예 사무엘이 가족과 함께 농장을 탈출한다. 자유를 향한 이들의 행렬은 비밀 조직 ‘지하철도’의 도움으로 북쪽으로 향한다. 악명 높은 노예 사냥꾼 ‘플림튼’의 추적은 계속된다. 사무엘은 자신을 노예로 만든 하나님을 원망한다. 그러던 중 100여 년 전 자신의 조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는다.

  1748년, 노예를 가득 실은 배의 선장 ‘존 뉴턴’은 아프리카 감비아에서 미국을 향해 닻을 올린다. 노예선에서 성숙한 신앙을 가진 흑인 노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항해자와 인간으로서의 신념 사이에서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풍우로 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한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난 뉴턴은 성공회 신부가 된다. 이후에 사무엘의 할아버지가 된 흑인 소년이 뉴턴 곁에 있었다.

탈출하는 내내 사무엘의 어머니는 믿음의 조상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도 사무엘의 입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지 않는다. 국경을 눈앞에 두고 사무엘의 어머니는 뒤쫓던 무리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다. 사무엘의 어머니가 잔소리처럼 남긴 당부도 내 어머니와 똑같았다.

 

  어쨌거나,

  하나님 말씀 앞에 온전하여라.

  하나님은 네 편이다.

 

  나는 어머니의 당부에 얼마나 자유로울까.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하고 이러저러한 핑계로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가. 남을 판단하고 비방하지는 않는가. 하나님 말씀 앞에 얼마나 온전하게 살아가는가. ‘해야 한다’는 벌레에 붙잡혀 내 가족과 이웃을 얼마나 힘들게 했을까. 어머니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내 아이들에겐 무슨 말을 남겨줄까. 나는 행하지 못하면서도 자녀들한테는 좋은 것을 남겨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리라. 나의 어머니와 사무엘의 어머니와 같은, 바람 같은 소망의 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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