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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이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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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6회 작성일 18-01-2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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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세지감

이용미

사정없이 내리쬐던 해가 어느덧 뉘엿대는 해거름.
곰티 날망을 헉헉대며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말았다.
오가는 차나 사람이 있을 리 없는 산속 좁은 도로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로 수런수런 북적였다.
연장을 든 버스 기사가 버스 아래로 반듯이 몸을 뉘어 비비적대며
들어가면 수런거림을 멈춘 사람들이 쪼그려 앉아 고개를 갸웃해서
기사의 하는 양을 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 몸을 털고 나온 기사가 운전석에 앉고
부릉부릉 소리가 들리면 우르르 다시 버스에 오르기도 하지만
다시 모두가 내려 끙끙대며 버스를 미는 때도 드물지 않았다.
그렇게 두세 시간 걸리던 길이었다.

요즘은 그 길을 저 멀리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정확하게 구획해서 큰 높낮이 없는 도로는 차안에서 책을 보거나
음료를 마셔도 흔들림이 없다.

며칠 전에는 텅 빈 뒷자리에서 마무리단계에 있던 뜨개 모자까지
여유롭게 마칠 정도였다.
그래 봤자 30분이면 족한 길은 그러나 아홉 개의 터널을 지나게 된다.
읽던 책장을 아홉 번여 닫아야 한다.
시간으로야 5분도 채 안 되지만 그 길이를 더해보면 무려 6km가 넘으니
시오리 길이다.
몰입하는 대목을 읽는 중 터널이 나타나면 왈칵 이는 짜증은 몇 백m에
불과한 그 구간도 지루할 때가 있다.
국도로 달릴 때같이 창 열면 잡힐 것 같은 풍경이 아니라 화면으로
명화 감상하듯 해야 하는 것 또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휙휙 지나는 바깥 풍경에 빠지면 세상만사
부러울 게 없다.
파릇파릇 연둣빛 돌던 설렘은 금새 각양각색 꽃피우는 무릉도원이 되었다가
오색단풍 수채화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무채색 수묵화로 마음을 다독인다.
이런 파노라마가 어디 있는가.

네 개의 터널을 지나 다섯 번째 터널 들어서기 직전 멀지 않은
산 중턱에 중창한 것 같은 사찰 하나 아담하게 서 있다.
그곳엔 맑은 미소의 비구니 스님이 정갈하게 비질한 모양새가
그대로 나타나는 마당이 있고 그 마당에 들어서면 그런 스님이
말간 미소로 반겨줄 것만 같다.
오늘 아침은 그곳에서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공양 시간은 아닐 텐데 낙엽을 태우는 것이었을까.
낙엽 타는 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갓 볶아낸 커피 냄새, 잘 익은 개암 냄새, 정말 이효석이 표현한
그런 냄새가 날까? 커피를 떠올리자 갑자기 목이 말랐다.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미니 물병을 꺼냈다.
어제 볶아서 끓인 수수차 색깔과 맛이 참 좋지만 차가워서
이젠 보온병에 담아서 다녀야겠다.

토요일 완행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청소가 끝나자마자 종례도 못 마치고 부랴부랴 간이 정류장으로 달렸지만,
이미 몸을 비틀기도 어려울 만큼 승객으로 꽉 채워진 버스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심한 흔들림과 좁은 공간에 퍼진 땀 냄새로 구역질과
갈증까지 겹쳐 물 한 잔만 마시면 살 것 같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
삐익~음을 내고 멈춰 섰다.
고장으로 버스에서 꾸역꾸역 밀려 나온 사람들 속에 나도 끼어 나와
도롯가에 쪼그려 앉았다.
강하게 내리쬐던 볕이 시나브로 잦아드는가 싶을 때‘토~오옥’하는 작은
소리가 귓가에 연이어졌다.
무슨 소리일까?
두리번거리는 바로 옆에서 노랑꽃잎 벌어지고 있었다.
달맞이꽃이었다.
어디선가 달맞이꽃 피는 소리라는 문장을 읽었던 것도 같고 들은 것도 같지만,
그 소리와 모습을 직접 듣고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홀린 듯 정신이 팔렸었다.
“학생, 학생” 차가 떠난다며 연거푸 불러대는 소리를 듣고서야
부리나케 고친 버스에 올랐던 것이 엊그제 같다.

관광 철이 지난 요즘 버스의 좌석은 항상 여유롭다.
뒤쯤에 두 좌석을 차지한 채 여유롭게 두 다리를 주욱 뻗고
두꺼운 차창 커튼을 여미고 눈을 감는데 지~익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린다.
사진 보내는 것에 맛들인 친구가 오늘도 꽃 사진을 보냈다.
어? 그 옛날 곰티 날망에서 꼬부리고 들여다보던 달맞이꽃이다.
토~오옥 피는 소리가 날까? 귀에 휴대전화를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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