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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14 09:1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579  

가문동 편지

 

정군칠

  

 

낮게 엎드린 집들을 지나 품을 옹송그린 포구에

닻을 내린 배들이 젖은 몸을 말린다

누런 바다가 물결져 올 때마다

헐거워진 몸은 부딪쳐 휘청거리지만

오래된 편지봉투처럼 뜯겨진 배들은

어디론가 귀를 열어둔다

 

저렇게 우리는,

너무 멀지 않은 간격이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살을 맞대고 사는 동안

배의 밑창으로 스며든 붉은 녹처럼

더께진 아픔들이 왜 없었겠나

빛이 다 빠져 나간 바다 위에서

생이 더 빛나는 집어등처럼

마르며 다시 젖는 슬픔 또한 왜 없었겠나

  

리는 어디가 아프기 때문일까

꽃이 되었다가 혹은 짐승의 비명으로 와서는

가슴 언저리를 쓰다듬는 간절함만으로

우리는 또 철벅철벅 물소리를 낼 수 없을까

  

사람으로 다닌 길 위의 흔적들이 흠집이 되는 날

저 밀려나간 방파제가 바다와 내통하듯

나는 등대 아래 한척의 배가 된다

이제사 너에게 귀를 연다

   

- 정군칠 시집 수목한계선(한국문연, 2003)에서

 

 


정군칠 시인.jpg

제주도 중문 출생

1998현대시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수목한계선』 『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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