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7-09-15 09:00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37  

진열장의

 

임경섭

 

 

누르면 툭하고 떨어지는

아침, 삼푸 통 마지막 남은 몇 방울의 졸음 있는 힘껏 짜낸

김 대리는 네모반듯하게 건물 속으로 들어가

차곡차곡 쌓인다 날마다 김 대리의 자리는 한 블록씩 깊어진다

아래층 이 과장은 한 박스 서류뭉치로 처분되었다지

누군가 음료수를 뽑아 마실 때까지 덜컹 내려앉는 일과,

버려질 것을 아는 이들도 사방으로 설계된 빌딩 속으로

차례대로 몸을 누인다

모든 가계의 비밀은 진열장에 숨어있다

이리저리 굴러다녀야 할 것들을 가득 담아 놓은 과일바구니

모인 것들은 축축한 바닥에 한 번 튕겨보지도 못하고

뿌연 먼지로 내려지는 셔터를 기다려

어둠 속으로 무른 멍 자국을 감춘다

바닥에 떨어지거나 모서리에 부딪쳐 생긴 것보다

서로에게 짓이겨 생긴 멍 자국에서 과일은

더 지독한 향기를 뿜는다

곯은 사람들로 붐비는 퇴근길은 진한 매연 냄새를 풍기고

김 대리는 살구를 고른다 먼지 닦아가며 고르다가 떨어뜨린

살구 한 알 탱탱하게 굴러가는 것을 본다

짓무르지 않은 것들은 저렇게 꿋꿋이 굴러다니는데

쌓여있어 한 쪽으로 절뚝이는 것들아

살구를 주우러 가는 김 대리의 발자국에 통증처럼

저녁이 배고 높은 허공으로 신음처럼 새가 난다

곧지도 않고 함부로 꺾이지도 않는 길을 가는 새의 둥근 비행

그 아래서 김 대리는 둥글게 몸을 말아 살구를 줍는다

 

- 임경섭 시집 죄책감(문학동네, 2014)중에서

 

 

11.jpg

1980년 강원대 원주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8<중앙신문학상> 당선

시집 죄책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40145
1326 발해로 가는 저녁 / 정윤천 관리자 08-20 66
1325 천적 / 김학중 관리자 08-20 80
1324 딱새의 작은 고추 / 김상미 관리자 08-16 349
1323 자정의 심리학자 / 최서진 관리자 08-16 243
1322 뿌리의 생각 / 최금진 관리자 08-14 377
1321 악몽은 밤에 더 번성하죠 / 장석주 관리자 08-14 240
1320 코너 / 정영효 관리자 08-10 347
1319 늪의 입구 / 연왕모 관리자 08-10 318
1318 소라껍질 모텔 / 김효은 관리자 08-08 360
1317 5호선 / 나기철 관리자 08-08 335
1316 닫힌 문 / 백우선 관리자 08-07 403
1315 문어탕 / 김상미 관리자 08-07 279
1314 가정의 행복 / 김 안 관리자 08-06 385
1313 오이에 대한 오해 / 이용헌 관리자 08-06 289
1312 아름다움에 대하여 / 윤제림 관리자 08-03 612
1311 젖다 / 마경덕 관리자 08-03 482
1310 푸른 용수철 / 박현수 관리자 08-02 404
1309 의자들 / 이명윤 관리자 08-02 439
1308 밤 속의 길 / 김해자 관리자 08-01 488
1307 핑크 / 임혜신 관리자 08-01 427
1306 불가능한 호 / 박장호 관리자 07-31 370
1305 햇살 통조림 / 이향지 관리자 07-31 377
1304 사랑의 출처 / 이병률 관리자 07-30 604
1303 낚시터 여자 / 이영광 관리자 07-30 465
1302 측은하고, 반갑고 / 한영옥 관리자 07-27 659
1301 뒤늦게 열어본 서랍 / 최예슬 관리자 07-27 603
1300 총잡이 / 이동호 관리자 07-26 512
1299 가을에 핀 배꽃 / 이만구 관리자 07-26 664
1298 순간의 꽃 / 김용두 관리자 07-24 875
1297 적산가옥 / 신미나 관리자 07-24 609
1296 별을 지나서 / 김영미 관리자 07-23 810
1295 비 개인 날의 오후 / 박미숙 관리자 07-23 700
1294 기상예보 / 김백겸 관리자 07-19 897
1293 모란 / 윤진화 관리자 07-19 885
1292 액자 속 액자 / 한정원 관리자 07-17 898
1291 나는 대기가 불안정한 구름 / 장승진 관리자 07-17 792
1290 드레스 코드 / 박종인 관리자 07-16 759
1289 거미박물관 / 박설희 관리자 07-16 704
1288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류미야 관리자 07-13 1168
1287 별빛 한 짐 / 이원규 관리자 07-13 1042
1286 넙치 / 박성현 관리자 07-12 870
1285 먼지벌레 / 신혜정 관리자 07-12 873
1284 맹점의 각도 / 한성례 관리자 07-11 901
1283 적막 한 채 / 나병춘 관리자 07-11 890
1282 신도. 시도. 모도. / 이 권 관리자 07-10 912
1281 바람의 사어 / 이철우 관리자 07-10 991
1280 안옹근씨를 찾습니다 / 정 호 관리자 07-09 889
1279 풀잎 사랑 / 윤여옥 관리자 07-09 1180
1278 푸른 눈썹의 서(書) / 조경희 관리자 07-06 1113
1277 배낭이 커야 해 / 박형권 관리자 07-06 105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