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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25 10:5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89  

낯선 선물

 

이선욱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이었어요

연필 치듯 비스듬히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새카맣게 젖은 머리칼이며

낯설고 기쁜 숨소리 마주하고 있었죠

 

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문득 통증 같은 몇 사람 생각이 스쳤지만

그런 식으로 빗물과 눈물을 구별할 사연은

마땅히 생각나지 않더군요

설사 생각난다 해도 어떻게 달리 마주했겠어요

 

숙인 얼굴 아래로는

어둑한 물기가 흘러내리고

어딘가 짙은 기대감이 얼룩진 듯도 했죠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습니다

설핏 남자 같기도 여자 같기도 한 얼굴이었죠

내 눈빛이 빗줄기를 따라 기울자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 하나 건네주더군요

 

크고 작은 흠집으로 가득했지만

곳곳마다 사금 같은 빛들이

얽혀 있는 반지였어요

무엇이냐고 물으니 고개를 가로젓더군요

이상하게도 가로젓는 방향을 따라

안도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얼굴이었죠

더러는 팔순과 청춘의 내력마저

겹치는 표정이었습니다

 

손끝으로 젖은 반지를 매만지며

나는 다시 한 번 정말 나를 알고 있는지

또 이 반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답보다 더 깊숙한 손길로

무작정 내 손을 끌어당기더군요

이렇다 말할 틈도 없이 반지를 끼워주더군요

 

황급히 뿌리치며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지만

물러나는 손길은 어딘가 끈적했고

아무리 힘을 주어도 반지는 빠지지 않았어요

힘이 헛돌 만큼 미끄러웠으니까요

마치 오래 전부터 그랬다는 듯이

단단히 빛나고 있을 뿐이었죠

 

그리고 그때 뿌옇게 번지는 한숨 속에서

너무 처연하게 마주한 얼굴이었어요

진흙처럼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건 퇴적에 지친

진흙의 표정이었어요

 

무언가 되묻고 싶었지만

무엇도 파헤칠 수 없는 얼굴이었죠

빗물인지 눈물인지를 따라

발밑으로 뚝뚝 떨어지고만 있었으니까요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하겠더군요

눈앞에 무력한 힘을 마주할 것만 같았죠

 

부러 반지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손에서 빠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죠

불현듯 몇 가지 생각이 사금빛처럼 스쳤지만

금세 캄캄하게 묻혀버리더군요

 

그러면 아파야 했을까요

무심해야 했을까요

마주한 숨결 산산이 흩어지고

빗소리만 잠잠히 들릴 때까지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 사연이란

끝내 생각나지 않았어요

 

- 이선욱 시집 , , 』(문학동네, 2015)에서

 

 

leeswook.jpg

1983년 대구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09문학동네로 등단

시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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