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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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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4 09:2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280  
 

나무가 오고 있다

 

   조정인

 

나무의 월식(月蝕) 지나 우리는 겨울을 통과했다

 

나무 안에 펼쳐진 백사장으로 물 들어오는 소리 아득한 잔설(殘雪)의 날들 지나

기억의 잠복기를 마친 나무의 미열을 누가 꽃이라 불렀나 우레의 마른 울음이

꽃눈에 닿기 직전, 날개를 퍼덕여 착지한 흰 빛에서 태어나 점차 분홍으로

접어든 시간을 벚꽃이라 불렀나

 

봄날의 대부분을 나무에 기대 보냈다 나무는 방금 도찯한 연푸른 저녁을

흐린 오후에 잇대는 일을 묵묵히 수행해갔다 그것은 망각 속으로 스며든

기억의 회로를 제 몸에 새겨놓는 일 나이테를 되돌리면

현악사중주의 음색이 느리게 풀렸다

 

나무는 그때 초신성을 겪는 한 그루 늙은 별

 

어제는 나무 속으로 사라지는 시간을 따라가 아무 기다림도 없이 전생의

한 때 같은 꽃그늘 아래 우두커니 앉았었는데 어느, 뱀처럼 슬프고 사슴처럼

향기롭던 한 시절을 실은 운구가 나무를 한 바퀴 돌고 나가는 거였다

나무가 저마다의 망각 안에 환하게 깨어 불타는 사월

 

오늘은 벚나무 한 그루를 보내고 왔다 망각을 되짚어 가려는 듯 스스로 일으킨

폭설 속으로 멀어지는 나무 이 거리는 도열해 있는 가로수의

기억과 망각의 힘으로 계절이 발생한다

 

저기, 또 다른 분홍이 기미를 데리고 나무가 오고 있다 행려환자처럼

다리를 절뚝이며 혹독한 기다림으로 가슴의 절반이 사라진

자귀나무 한 그루 

 

 —계간《시와 사람》2017년 가을

 

jojungin-200.jpg

 

1998년 《창작과 비평 》등단
제2회 토지문학제 시부문에서 대상
시집『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장미의 내용』,
동시집 『새가 되고 싶은 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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