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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7 10:55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 이장욱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80  

 

생활세계에서 춘천 가기

 

   이장욱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진리와 형이상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초중등학교 때는 우주의 신비와 시를 배웠지.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연애도 했는데

또 독재자를 뽑았구나.

 

춘천에는 호수가 있고 산이 있고 깨끗한 길이 있지.

여자와 남자와 개들과 소풍이 있고

할머니도.

인사를 하고 밥도 먹었네.

나는 춘천에 들렀다가 그리스와 신라시대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저는 종교적인 인간이라 매일 기도를 합니다만

고백성사를 한 뒤에 영성체를 모셔야 합니다만

아아, 유물론이 옳았다.

춘천에서 나는 죽어가는 시절의 고독을 떠올리고

사후의 무심을 떠올리고

길거리의 개들과 눈을 맞추었네.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가는 일

그것은 할인마트에 내리는 석양처럼 신비로운 일

낮잠에서 깨어난 오후처럼

비변증법적인 일

열차가 북한강의 긴 교량을 건널 때 옆자리의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대자

바로 그 순간 온몸에 스며드는

정확한 일

 

 

     —《현대문학》2017년 8월호

 

 

1968년 서울 출생
고려대 노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내 잠 속의 모래산』『정오의 희망곡』『생년월일』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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