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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07 11:44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54  

 

긍휼

 

 성동혁

 

 

 

그러니까 대체로 시금치를 데치는 저녁

그해 겨울 아비들은 모두 슬펐지요

자녀들은 침통을 쏟으며 집을 나갔고

노을엔 잃어버린 바늘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높은 침엽수처럼

넓은 침엽수처럼

천사들에게도 수목원이 있다면 그곳에서 길 잃은 낙뢰들을 키우자 맘먹었을 것입니다

우체통에 기댄 소년이 붉게 터지건 말건 멀리서

신의 머리카락을 주우며

찬송가를 부르는 노인들

바람은 종종 아무 이유 없이도 겸허하게 붑니다

이유는 바람에게 없고 제게만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시금치를 데치는 저녁

손잡이가 없는 잔을 쉽게 놓치던 저녁

사람이 없어 소리 지르지도 않았던 저녁

깨진 잔을 주우며 붉게 꽂히던 저녁

우산을 잊어 다시 집으로 들어가던 저녁

 



1985년 서울 출생.
2011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 『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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