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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19 16:36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18  

유역에서

 

  장옥근

 

 

서정춘 시인이 사십 년 걸쳐 썼다는 종소리가

지하 수유역에도 가루가루 우는데

수유역 4-4구역 의자에

부러진 삭정이처럼 노인이 누워 있다 마디마디 풀려서

팔과 다리가 축 처지고 눈을 닫아 버렸다

더 가야 하는데 조금 더 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철들지 않을 때부터 달려왔는데,

수유3동 콩나물 놀이터 옆 에미 없는 일곱 살 다섯 살

손주들이 있는 청안빌라 내 집까지 가야만 하는데

짧은 겨울해가 붉게 멈칫거리는 북한산에

검은 까마귀 한 마리 길게 날아간다

단단해져야 할 세월을 한 귀퉁이도 무심으로 넘지 못했으니

가느다란 바지 끝에 찬바람이 스칠 때마다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내 삶 한 켠에 자라나는 올망졸망 다섯

내 새끼들 배를 채워 주기 위해

얼마나 손마디 굵은 시간들을 보냈던가

예기치 않는 곳에서 불쑥 삶의 끝자락을

마주한 그가 지금

어느 날 지하철 창문에 스치듯 비치던

제 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눈을 감은, 벙그러진 입속으로

어머니의 붉은 젖꼭지가 들어온다

 

- 장옥근 시집 눈많은 그늘나비처럼(2017, 문학들)에서

 

 

jok.jpg

전남 구례 출생

전남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13시와 경계로 등단

시집 눈많은 그늘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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