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작성일 : 18-03-14 15:49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424  

저녁 7, 笑劇

 

  윤예영

 

 

1.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구두를 벗는다

 

  눅신한 피곤을 벗어 버린다

 

  셔츠를 벗는다

 

  미열이 번진다

 

  빌딩옥상에서 내려다보던 풍경이 흩날린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 리어카를 끄는 노인, 길에서 허기를 달래는 사람들 그리고 나무

 

  나무, 나무, 버즘처럼 껍질이 벗겨지는 나무

 

  허리띠를 푼다

 

  바지가 흘러내린다

 

  비늘 같은 오후가 둥치를 타고 흘러내린다

 

  남자,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에 마른 짐승 한 마리가 제 샅을 핥고 있다

 

  남자, 거울에 한 쪽 발을 담근다

 

  불쌍한 짐승이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2.

 

  여자가 남자의 구두에 발을 넣어 본다

 

  하루 종일 무엇을 밟고 다녀 이리 말랑해졌는가

 

  그리고 남자의 흔적을 줍는다

 

  남자의 바지를 입고,

 

  셔츠를 입고,

 

  넥타이와 허리띠를 맨다

 

  여자, 거울 위에 손을 얹는다

 

  잔물결이 인다

 

 

   나무가 가지를 흔든다 푸른 그늘이 춤을 춘다 만화경처럼 빙글빙글 춤춘다 혈관 속에서 풋내나는 수액이비명을 지른다 사람들 속을 걷는다 땀냄새, 오줌냄새, 바람냄새를 헤친다 걷는다 뛴다 뛴다 먼지를 쓰고,햇살을 젖히고, 질긴 불안으로 목을 조르고,조르고, 조르고, 달콤씁쓸,달콤씁쓸, 달콤씁쓸한 



   여자, 검지로 겨울을 겨눈다

 

 

 

 

3.

 

  여자, 첨탑 위에 걸린 태양을 그린다

 

  사랑해서

 

  남자, 나리꽃 한 다발을 그린다

 

  사랑해서

 

  여자, 깨진 질그릇을 그린다

 

  사랑해서

 

  남자, 나리꽃 한 바구니를 그린다

 

  사랑해서

 

  여자, 쓰러지는 숲을 그린다

 

  부질없어

 

  남자, 쓰러지는 숲 위로 날아오르는 새떼를 그린다

 

  사랑해서

 

  여자, 남자를 그린다

 

  절망해서

 

  남자, 여자를 그린다

 

  부끄러워

 

  여자가 거울을 닦는다

 

  거울아 거울아 꽃아 돌멩이야 염통아

 

  남자가 거울을 닦는다

 

  여자야 여자야 여자야

 

 

 

4.

 

  방아쇠를 당긴다

 

  포말이 인다

 

  남자가 흩어진다

 

  여자가 합장을 한다

 

  남자가 흩어진다

 

  여자가 합장을 한다

 

  남자가 흩어진다

 

  여자가 숙이고 또 숙인다

 

  잘게 부서지는 은칠 위로 사람을 닮은 허물이 떠오른다

 

 

- 계간 세계의 문학2018년 겨울호

 

 

yy.jpg

1977년 서울 출생

1998현대문학등단

시집으로 해바라기 연대기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오늘의 시 등록 관련 안내 관리자 07-19 38330
1255 엄마가 들어 있다 / 이수익 관리자 06-18 113
1254 업어준다는 것 / 박서영 관리자 06-18 100
1253 미안해 사랑해 / 신단향 관리자 06-16 223
1252 펜로즈 삼각형 위에 서다 / 강인한 관리자 06-16 149
1251 사바세계 / 이위발 관리자 06-12 445
1250 이모 / 고경숙 관리자 06-12 401
1249 집중 / 서규정 관리자 06-11 456
1248 앵두나무 소네트 / 신정민 관리자 06-11 410
1247 바닷가 사진관 / 서동인 관리자 06-05 894
1246 몸붓 / 안성덕 관리자 06-05 622
1245 심해어 / 진수미 관리자 05-31 939
1244 유리창의 처세술 / 장승규 관리자 05-31 810
1243 가로수 / 박찬세 관리자 05-24 1378
1242 안개, 그 사랑법 / 홍일표 관리자 05-24 1223
1241 꽃이 지는 일 / 배홍배 관리자 05-23 1276
1240 유선형의 꿈 / 곽문연 관리자 05-23 864
1239 봄비 / 정한용 관리자 05-18 1473
1238 탱고를 추다 / 이경교 관리자 05-17 1177
1237 보금자리주택지구 / 이선이 관리자 05-17 980
1236 병상 일기 2 / 이해인 관리자 05-16 1086
1235 위성 / 배영옥 관리자 05-16 1049
1234 어른의 맛 / 김윤이 관리자 05-15 1279
1233 소묘 5 / 이성렬 관리자 05-15 1032
1232 합주 / 정끝별 관리자 05-11 1377
1231 새댁 / 이인철 관리자 05-11 1277
1230 한 걸식자의 비망록 / 권순진 관리자 05-10 1233
1229 구두를 닦다 / 강태승 관리자 05-10 1253
1228 축, 생일 / 신해욱 관리자 05-09 1324
1227 광화문 천막 / 이영주 관리자 05-09 1190
1226 엄마 / 김완하 관리자 05-08 1559
1225 지구 동물원 / 정 영 관리자 05-08 1200
1224 일력 / 마경덕 관리자 05-04 1518
1223 적멸에 앉다 / 장인수 관리자 05-04 1403
1222 봄비 / 정호승 관리자 05-02 2146
1221 드라마 / 이동호 관리자 05-02 1465
1220 의혹 / 서연우 관리자 04-30 1523
1219 녹 / 하상만 관리자 04-30 1464
1218 돌을 웃기다 / 성영희 관리자 04-27 1720
1217 날아라, 십정동 / 김선근 관리자 04-27 1612
1216 봄날의 서재 / 전윤호 관리자 04-26 1662
1215 초록 서체 / 오영록 관리자 04-26 1571
1214 자두나무 정류장 / 박성우 (1) 관리자 04-23 1792
1213 봄비 / 안도현 (1) 관리자 04-23 2316
1212 겹겹, 겹겹의 / 유희경 관리자 04-19 1952
1211 두 음 사이 / 신영배 관리자 04-19 1824
1210 동백 꽃잠 / 장상관 관리자 04-18 1847
1209 뒤란의 석류나무는 이미 늙었으나 / 허영숙 관리자 04-18 1798
1208 벚꽃 십리 / 손순미 관리자 04-17 1958
1207 동백꽃이 떨어지는 이유 / 심강우 관리자 04-17 1846
1206 그런 저녁 / 박제영 관리자 04-16 203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