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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4 10:0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667  

산수유나무
 
    이선영 



처음부터 그는 나의 눈길을 끌었다
키가 크고 가느스름한 이파리들이 마주보며 가지를 벋어올리고 있는 그 나무는
주위의 나무들과 다르게 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기 위해 잠시 서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산수유나무라고 했다
11월의 마지막 남은 가을이었다
산수유나무를 지나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이를테면 천년 전에도
내가 그 나무에 내 영혼의 한 번뜩임을 걸어두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되풀이될 산수유나무와 나의 조우이리라는 것을
영혼의 흔들림을 억누른 채 그저 묵묵히 지나치게 돼 있는 산수유나무와 나의 정해진 거리라는 것을


산수유나무를 두고 왔다 아니
산수유나무를 뿌리째 담아들고 왔다 그 후로 나는
산수유나무의 여자가 되었다


다음 생에도 나는 감탄하며 그의 앞을 지나치리라

 

- 이선영 시집 일찍 늙으매 꽃꿈(창작과비평사, 2003) 중에서

 

 



이선영.jpg

 

1964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
19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 가엾은 비눗갑들』 『글자 속에 나를 구겨넣는다』
『평범에 바치다』 『일찍 늙으매 꽃꿈』『포도알이 남기는 미래』
『하우부리 쇠똥구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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