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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14 00:07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151  

악몽은 밤에 더 번성하죠

 

   장석주

 

 

 한밤중 빈 부엌에서 유령 하나가

조심스럽게 기척을 내요. 가스레인지 불은 꺼졌는데,

냄비마다 국은 끓어 넘쳐요.

어디서 보았더라? 당신의 모호한 얼굴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겠지요. 이 시각 우체국에서는

편지가 날아다니고, 작년에 죽은 자의 시체가

땅속에서 일어나요. 양치류가 자라나는 숲속에

숨은 겨울 스물 몇 개가 발각당할 때

부엌의 냄비에서 끓어 넘치는 것은

은닉된 슬픔이겠지요. 밤은 연옥을 헤매는

유령이 벗어놓은 외투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을 편애하는 나는 당신의 전공자예요.

먼 밤이 성큼 가까워지네요. 한여름 밤

유성이 영원의 가장자리를 스치며 떨어져요.

어디에 연옥이 있나요? 어느 계절이건

깨지지 않은 연애란 있을 수 없어요.

가을의 어떤 문은 열리고, 겨울의 어떤 문은

거칠게 닫쳐요. 밤의 유령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는 증거겠지요.

밤의 짐승은 말할 수 없는 혀를 가졌어요.

그게 짐승이 울부짖음에 집중하는 이유겠지요.

길고양이가 허공을 할퀴며 울 때

동공에 파란 불꽃들이 피어나요. 밤은

흘러넘치고 어디에나 흥건해요.

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이 밤에 연루된 자, 밤의 색골,

밤의 유령, 밤의 광인인가요?

밤이 몇 만 필 검정 비로드 위에 별을 쏟을 때

당신은 밤의 한가운데를 열고

내일 아침 식사 준비를 위해 돌아서지요.

유령과 쥐들은 잠들지 않아요.

새날이 올 때까지 당신과 나는

이 밤을 지키는 상근직원이지요.

  

   -월간시와 표현2018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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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충남 논산 출생

1975월간문학시부문 신인상

1979<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1979<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가작

시집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그리운 나라』 『어둠에 비친다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크고 헐렁한 바지』『일요일과 나쁜 날씨』등

평론집 풍경의 탄생』 『들뢰즈, 카프카,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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