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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27 09:48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870  

서봉의 가방


        천서봉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을 넣어야 한다,

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거리는

더 커다란 가방을 사주거나

사물을 차곡차곡 집어넣는 인내를 가르쳤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기억은 집을 놓치고

어느 날, 가방을 뒤집어보면

낡은 공허가 쏟아져, 서봉氏는 잔돌처럼 쓸쓸해졌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가령 흐르는 물이나 한 떼의 구름 따위,

망상에 가득 찬 머리통을 담을 수 있는, 그러니까

서봉氏와 서봉氏의 바깥으로 규정된 실체를

통째로 넣고 다닐 만한 가방을 사러 다녔지만

노을 밑에 진열된 햇살은 너무 구체적이고

한정된 연민을 담아 팔고 있었다.

 
넣을 수 없는 것을 휴대하려는 관념과

이미 오래전 분실된 시간

거기, 서봉氏의 쓸쓸한 가죽 가방이 있다.

오래 노출된 서봉氏는 풍화되거나 낡아가기 쉬워서

바람이나 빗속에선 늘 비린 살내가 풍겼다.

무겁고 질긴 관념을 담고 다니느라

서봉氏의 몸은 자주 아프고

반쯤 벌어진 입은 늘 소문을 향해 슬프게 열려 있다.


- 천서봉 시집 서봉의 가방(문학동네, 2011)에서

 

 

 

 

 

1971년 서울 출생
국민대 건축학과 졸업
2005년 작가세계
로 등단
2008년 문예진흥기금 수혜
시집 『서봉氏의 가방』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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