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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6 09:02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886  

몇 겹의 사랑

        

  정  영

 

 

꼬리를 잘라내고 전진하는 도마뱀처럼

생은 툭툭 끊기며 간다

어떤 미련이 두려워 스스로 몸을 끊어내고

죽은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스스럼이 없나

 

한 몸의 사랑이 떠나듯 나를 떠나 보내고

한 몸의 기억이 잊히듯 나를 지우고

한 내가 썩고 또 한 내가 문드러지는 동안

잘라낸 자리마다 파문 같은 골이 진다

이 흉터들은 영혼에 대한 몸의 조공일까

 

거을을 보면 몸을 바꾼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언가 잘려나간 자리만 가만가만 만져보는 것이다

 

심장이 꽃처럼 한 잎 한 잎 지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이렇게 단단히 아프진 않을 텐데

몸을 갈아입으면 또 한 마음이 자라느라

저리는 곳이 많다

 

잘라내도 살아지는 생은 얼마나 진저리쳐지는지

수억 광년을 살다 터져버리는 별들은 모르지

 

흉터가 무늬가 되는 이 긴긴 시간 동안

난 또 어떤 사랑을 하려

어떤 벌을 받으려

 

몇 겹의 생을 빌려 입는 걸까

 

정영 시집 화류(문학과지성사, 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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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서울 출생

2000문학동네등단

시집으로 평일의 고해』 『화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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