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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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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3 09:43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64  

정선

 

함명춘

 

 

그녀가 나비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안 건 최근의 일이었다

청소원이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날아든 나비를 보고

자신의 방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온 것이다

 

그녀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이었다 다섯 고개는 넘어야

밥풀때기 같은 집 한 채 겨우 볼 수 있는,

지천에 깔린 바람 소리와 맑은 공기를 오디처럼 따먹으며 자랐다

 

입사한 뒤 그녀가 처음 한 일은 잔심부름과 차를 타주는 일이었다

그녀의 들국화 차는 가히 일품이었다

한번 먹으면 하루 내내 온 몸에서 들국화 향내가 떠나질 않았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그녀의 몸에선 들국화 향내가 났다

나이든 직장 상사의 손에서 들국화 향내가 나는 건 분명

또 그녀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증거였다

 

우연히 색깔을 보는 눈과 디자인 감각이 남다르다는 걸 눈치챈

사장이 그녀에게 방한 칸을 마련해 주었다 밤낮없이

그녀가 디자인한 옷들은 매장에 진열되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조금씩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 되어갔다

 

하루는 짓궂은 동료들이 쓰레기 비밀 봉투 가득 잡아 온

나비들을 그녀의 서랍 속에 풀어놓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한 그녀가 서랍을 연 순간

나비 떼가 쏟아져 나와 그녀를 덥쳤다

 

짧은 비명이 이어졌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은

그녀가 신었던 빨간 하이힐과 물방울무늬의 투피스만이

벗겨져 있을 뿐 책상 위엔 뿌리째 뽑힌 들국화 한 그루가 놓여있었다

 

백방으로 찾아보았지만 그녀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누구도 그녀의 방에 들국화를 놓고 나온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들국화는 인근 쓰레기장에 버려졌고 이내 소각되었다

 

아무도 책상 위의 들국화가 그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현대시학, 2017. 5월호

 

 

 

hammyoungchoon-150.jpg

강원도 춘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졸업

1991<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빛을 찾아 나선 나뭇가지』 『무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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