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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작성일 : 17-10-18 09:43
 글쓴이 : 金富會
조회 : 590  
습윤(濕潤)의 계절, 가을

-글, 김부회

콩 꼬투리 속의 콩알 같은/ 강혜경
사랑한다는 것은/ 손은교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김계수

  가을이다. 이번 호의 주제로 습윤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명사로 사용되는 단어 습기가 많은 느낌, 또는 젖어서 축축하다는 말이다. 계절의 절기가 겨울로 갈수록 건조하고 메마른 것이 기상의 척후인데, 돌연 습윤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다소 외람되기도 하고, 당돌하기도 하다, 하지만 가을이 주체가 아닌, 객체로 놓고 화자의 심상을 주체로 바꿔 생각해보면 짐짓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낙엽이 지고, 건조에 쌓인 거리가 어둠을 바삭바삭 무너뜨리고 있을 때, 어쩌면 시를 쓰는 시인의 느낌은 정반대로 축축한 눈시울을 갖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절이 깊어갈수록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적 감응의 수위는 점차 높아질 것이다. 단순히 계절적인 요인과 인자로만 추정하기엔 이 계절이 너무 곱다. 신록의 여름을 뒤로하고 움츠러들게 만드는 차가운 온도, 그 많던 거리 속 사람의 행렬은 바쁘게 움직이는 몇몇을 제외하고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시적 소재는 그 지점에서 출발선을 재정비할 것이며 사유의 깊이는 점층적인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가을에 읊는 시는 노랫말의 형식을 빌려 한 해에 대한 회한과 참회를 숙성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김백겸 시인은 “세계로 던지는 연애편지로서의 시들”이라는 제호의 기고 글에서 “사유 대신 감각 위주로 시들은 일단 독자가 편하다”라고 말했다. 독자가 편하다는 말은 환언하면 시인에게도 편한 것이다. 시적 완성도라는 명제를 차치하고 온전히 “시”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보통의 독자가 감동하는 시가 가장 좋은 시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다. 흔히 시인의 먼저 감동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다소 무미건조하거나 감정의 기복을 글에 드러내지 말라는 말로 시를 정형화하는 이론 역시 대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매우 타당하다. 하지만 계절이 가을이라면 좀 더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 정서순화 측면에 부합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면서 동시에 비어가는 계절이다. 가을은 건조하면서 동시에 숲의 습윤을 닦아내는 계절이다. 철학적 기반을 두고, 삶의 근원을 찾아 헤매는 진중한 시의 홍수 속에서 잠시 나를 내려놓고, 잊힌 유행가 한 자락이 우연히 들리는 차 안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때마침 노을이 붉게 울고 있고 엄습하는 차가운 바람에 차 속 히터를 틀고 차창을 열고 달린다고 가정해 보자. 손 내밀면 쥐어지는 바람이 차갑지만 부드럽다. 바람의 깊이조차 부드럽다. 유행가 한 소절 어디에 숨어있던 내 열병의 시절이 툭 튀어나와 또르르 구른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이제는 잊힌 이름을 불러보는 것이다. 쉰다는 말은 멈춘다는 말이 아니다. 쉰다는 말은 다시 달리기 위해 잠시 멈춘다는 말이다. 그 쉬는 시간에 시인의 달콤한 시 한 줄에서, 시인이 흘렸을 그리움 중에서 한 컷을 떼어 내 눈 속 조리개 앞에 둘 때, 정신적인 안식은 진정한 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두에 언급한 김백겸 시인의 글을 인용해 본다. 그 속에 연애편지의 기능을 멀티 하게 갖춘 우리의 감성에 대한 전혀 낯설지 않은 고백이 담겨 있을 것이다. 

세계를 항해 던지는 연애편지로서의 시들 

김백겸(시인)

*좋은 시란 무엇인가. 주제가 훌륭한 시, 상상력과 비유가 뛰어난 시, 가슴을 울리는 정서의 진폭이 큰 시 등 여러 시야가 있겠지만 결국은 시간에 살아남는 시가 아닐까. 시를 해석하는 주체인 사람도 시간 안에 죽는다. 준거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역사상 위대한 정신(문화적으로 살아있는)의 거울에 내 시를 비추어보는 일이다. 내 시가 백년 후에도 읽혀질까. 시인은 두려운 마음으로 창작에 임해야 한다. 첨단과학이나 사회과학 쪽의 외국서 들을 보면 주제의 장이 바뀔 때마다 유명시인들의 짧은 시들이 인용된다. 시의 암시로서 주제의 방향을 드러내는데 독자는 시의 상상력에 고무된 채 본격적인 주제에 임하게 된다. 이미 암시를 받았으므로 저자의 어려운 주제도 그리 낯설지가 않다. 과거에는 국가의 흥망을 위한 전쟁이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왕들은 日官 을 불러 점을 쳤다. 그 점의 암시 때문에 고난과 역경을 감당하며 대업을 마친다. 점? 당연히 시의 형태로 제시된다. 점이 틀려도 시 속에 있는 다른 암시가 운명을 정당화한다. 프로젝트를 수행한 주체는 실패해도 신의 숭고한 뜻에 따른 영웅이 된다. 그렇게 해서 영웅의 정신과 시의 정신(사실은 신의 정신)은 불멸을 획득한다. 시간이자 거품인 인간이 계속 태어나 도도한 문화의 강을 이루는 한. 

  *시인은 사막이 표상하는 금욕과 은자의 생활을 통해 “신의 얼굴”을 보고 싶은 욕망을 형상화 한다. ‘피라미드’는 이집트인들이 ‘영원으로 가는 배’로 부른 건축물이며 태양신 “라”의 지혜가 들어간 타임머신이다. 시인은 ‘피라미드’의 이미지를 통해 초월을 통해 신에 이르고 싶은 열망을 노래한다. 일상의 속악한 사물에서 聖의 속성을 발견한 시인의 눈은 예언이나 찬양으로 흐르지 않는다. 비밀은 일상의 수면아래 잠겨 있으며 시인은 그 비밀을 은밀한 인식아래 감춘다. 

  *기호가 상징으로 읽혀야 시의 다의적 의미가 성립한다. f(x)라는 함수를 보면 수의 관계가 이세상의 모든 기초라고 주장하는 피타고라스학파를 연상하게 한다.  현상계를 설명하는 연기론의 수학적 해석 같다. x,y,z 축의 삼차원공간에 시간 축을 추가해서 사차원이 되는 인식이 우리의 보통 인식이다(인간의 경험인식이라고 해야 하겠다. 실제의 물리 우주는 매우 다르다. 초끈 이론에 의하면  수학의 11차원이 동원된다).  물리적 계산으로는 정지하고 있는 물체도 시간 축을 따라 운동 한다(상상하기 어렵지만 광속으로 운동한다고 한다. 물체의 위치에너지가 광속의 운동에너지로 변할 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시인의 상상력은 우리의 경험인식을 넘어선 곳까지 미쳐야 이세계의 깊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사유대신 감각위주로 쓴 시들을 보면 일단 독자가 편하다. 안마를 받을 때의 쾌감과 비슷한 느낌이 사유의 몸을 자극하는 것 같다. 독자는 작자의 안마에 정신을 맡기고 즐거운 느낌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사유시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똑같은 밥상에 물린 사람이 다른 별식을 찾는 것과 같다)  아침의 고요와 저녁노을의 정열을 감각적으로 그려내지만 노련한 바둑고수처럼 작가의 계산은 모두 뒤로 숨어있는 시. 시는 사랑에 들떠 할 말이 많은 여자의 말씀과 심장 속의 말씀을 드러내고자 하는 남자의 침묵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시의 암시는 인간의 생의 의지이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아침과 밤이 같고 인간들이 사용하는 가마솥이나 땅 속의 철광석이나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화는 생에 유리한 상황을 선으로 인식하고 찬양한다. 쇠란 인간이 자연을 경작하는 도구의 상징이다. 쇠의 총과 칼이 정복에 나서고 쇠가 고층건물과 다리를 세운다. 시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의식세계에 대비되는 인간정신의 총과 칼이다.

  *시는 시인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연애편지이다. 사랑을 주제로 노래할 때 시인의 무의식은 현실의 연인너머에 있는 대타자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시적 본질은 사랑의 본질과 닮아있다“라는 명제가 성립 한다. 나(에고)를 죽임으로서 타자와 나는 “사랑의 밖이며 안”인 차별의 세계를 극복하고 행복(유토피아)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데 시인은 현실(현상계)에 갇혀 대타자(초월계)를 향한 문을 열거나 닫는 존재이다

  *시인들이 아니마를 보는 작업은 흥미롭다. 시인들의 아니마가 어떤 타입이냐가 시인들의 정서적 안경을 결정한다. 원시적 여성상, 낭만적여성상, 영적여성상, 지혜여성상(칼 융의 분류)이 있으나 주된 심리에너지의 발현일 뿐 네 타입은 같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心魂이란 자아를 초월하는 정신의 자율성이며 신성한 힘(Numinose)이며 강렬함과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다‘(이부영, "아니마와 아니무스"참조))

  *나무를 시의 은유로 보자. 인생의 여름이란 20대 후반에서 40까지 가을은 50대 중반까지로 볼 수 있는데 이 시기는 무성한 잎과 가지와 열매를 위한 시간이므로 욕망과 수확을 위해 바쁜 시간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눈은 아프고 발이 피곤해진다.  벤치에 앉아 무심한 구름과 바람을 바라보는 현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詩라는 복마전을 통과해야 하는 자의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면서도 시인들이 고투하면서 쓴 시의 암시가 만들어내는 풍경의 오솔길을 따라 걷는 일은 즐겁다. 그 안에 ‘내가 걸어온 길’들과 ‘걷고 있는 길’과 ‘걸어가야 할 길’들이 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R.프로스트)'라는 길을 걷는 자의 회한과 함께. 


출처: 웹진 시인광장

모던 포엠 11월호에서는 가을이라는 관점에서 세 편의 시를 감상해 보기로 한다. 이 전의 기고 글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사랑과 계절과 삶과 그리움과 그것을 관조하는 실체적인 관점의 ‘나’에 대한 시를 읽으며 평론이라는 형식에서 벗어나 잠시 쉬었다 가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주면 감사할 일이다. 적어도 지금은 어디에나 앉아도 커피가 생각나는 가을이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놓아둔다.

첫 작품은 김혜경 시인의 [콩 꼬투리 속의 콩알 같은]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이다.

콩 꼬투리 속의 콩알 같은

강혜경

한 사람을 기다리며 숨어 산 세월이다
뒤척임조차도 들키지 않아야 하는, 숨죽여 산 세월이다
목숨보다 귀한 사명을 지닌, 묵묵히 살아온 세월이다
때가 차면 가리라

한 꼭지 돌려 비틀어 가볍게 내려서는 걸
톡이라한다
감동인지 외마디 비명인지가
톡 떨어져 또르르 굴러가 쌓인다
가난한 농부의 손안에
고이 바쳐 올린 봉헌이다
고백이다
속삭임이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랑으로 다가가는
눈부신 섬김이다

생이란 그토록 이별하는 순간이 짧아
한마디로 이별을 정리한다
오래 살던 집을 떠나고
빈집을 태우고서야

뜨락에 별 밤을 그려 넣는다.

콩을 수확하는 가을에 콩과 콩알을 바라보며 사람과 사람의 인과 관계, 삶에 대한 정당성, 사회적인 관계의 당위성까지 세심하게 펼쳐 본 시안이 무척이나 깊다. A = B라는 대입방식을 시의 교본처럼 놓고 세심하게 엮어 내려간 언어의 가닥이 투명 낚싯줄을 보는 듯하다. 가늘지만 무척이나 질긴, 김혜경 시인의 표현 하나하나가 잘 짜인 인생 극본의 시놉시스를 읽는 느낌이라면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작은 콩 한 알에서 시인이 바라본 것은 기다림이다. 이른 봄의 새싹 한 잎에서 출발해 들끓었던 여름의 태양을 이겨내고 속으로 속으로 인내하다 콩잎을 달고 콩 줄기를 달고, 그 속에 앙증맞은 콩알을 알알이 익혀낸 기다림의 세월을 시인을 보았다. 가을 들녘에서, 하지만 그 알곡의 이야기는 들어서고 찬 것에 멈추지 않고 콩이 내어 줄 알곡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한 사람을 기다리며 숨어 산 세월이다
뒤척임조차도 들키지 않아야 하는, 숨죽여 산 세월이다
목숨보다 귀한 사명을 지닌, 묵묵히 살아온 세월이다
때가 차면 가리라

본문에 사명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사명은 맡겨진 임무다. 마땅히 콩이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다. 의무와 책임이라는 말과는 좀 더 다른 어감으로 다가온다. 마치 역사에 대한 사명이라는 것과 운명이라는 것이 혼재된 듯한 어감이다. 콩 한 알에 뭐 그리 대단한 의식이 존재할까? 하다가도 시라는 관점의 비유를 생각해 볼 때 사명이라는 단어 자체가 엄중하게 다가온다. 자연의 섭리 앞에 사명일 것이다. 사람의 사랑이 콩알이라면, 그리움이 콩알이라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라면, 삶 그 자체에 대한 ‘나’의 실존적 의미라면, 등등 사념의 확장을 불러일으키는 단어를 채택함으로써 생에 대한 진중한 시선을 무심한 듯 유도하는 것이다.

가난한 농부의 손안에
고이 바쳐 올린 봉헌이다

또 하나의 단어 ‘봉헌’이다. 삼가 공경하는 마음으로 바친다는 뜻이다. 농부의 손안에 그 손 위에 올려진 콩알은 콩의 봉헌이라는 말로 해석해 본다. 생명과 보답과 가을과 수확이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단어의 감각이 매우 탁월하다. 사명과 봉헌에 담긴 광의의 해석을 다변화된 시각을 갖게 하는 선택이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랑으로 다가가는
눈부신 섬김이다

어쩌면 입으로 말하는 순간부터 사랑은 사랑의 의미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웅얼거리듯 가슴 깊은 곳에 담아두고 쌓아두는 순간부터 사랑이라는 말은 가을과 상호 밀접하게 관계하는 단어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의 ‘섬김’이라는 단어로 문장에 못을 박는다. 다른 어떠한 사유도 시인의 결론 앞에 서면 당위성이 감소할 것이며, 이로 인해 시는 경건이라는 배경을 배후에 담게 되는 것이다. 콩알의 경건은 결구 부분에서 확연하다. 삶의 방향성이 정해지는 것이다.

오래 살던 집을 떠나고
빈집을 태우고서야

뜨락에 별 밤을 그려 넣는다.

집을 떠나고/ 빈집을 태우고/ 그제야 완성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문장이다. 교회 뜨락에 몰래 선 채 엿듣는 황홀한 찬송가를 듣는 기분이라면 시인의 뜻을 과장되게 왜곡하는 것인지 내가 내게 되묻고 싶다.

두 번째 작품은 손은교 시인의 [사랑한다는 것은]이라는 작품이다. 시의 전반은 매우 편안하게 서술되고 있다. 마치 오전 11시에 듣는 클래식 음악 같은 감미로운 선율이다. 이보영 시인의 [커피]라는 작품에서 설탕이 빠진 것이 아닌 설탕이 좀 더 첨가된 느낌

커피

윤보영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네요
아!
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

사랑한다는 것은

손은교

사랑한다는 것은
비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이면
외로움이나 혹은 쓸쓸함을 담아
더욱 진한 커피를 마시자는 뜻이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으로 채울 길 없는 빈 가슴을 만들어
습관적으로 가시로 찌르듯이
아프자 하는 기다림의 뜻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마음 한복판에
결코 아물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자는 뜻이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시각에 망각의 강을 건너
절대로 
서로를 기억하지 말자는 뜻이거나

운명이란 누구의 뜻인지 몰라도
돌아보면 모두 회한이거나 눈물뿐인 이승에서
사랑하며 살라는 운명은 절대로 풀리지 않는
비밀스런 슬픔이란 뜻이다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재를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선택할 소재가 아마 커피일 것이다. 커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사랑이기에. 손은교 시인의 사랑에 대한 정의는 평범하면서도 메이크업을 꼼꼼하게 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누구나 소유하면서도 누구나 다른 색감을 저마다 지니고 있는 단어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마다의 느낌이 다르듯, 사랑의 감정이나 사랑에 대한 체감의 깊이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그 질감이 남달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외로움이나 혹은 쓸쓸함을 담아
더욱 진한 커피를 마시자는 뜻이거나

사랑이라는 단어의 배후는 아름다움을 떠나 홀로라는 말과 남겨진다는 말과 떠남이라는 감정이 혼합된 듯하다. 처연할수록 그 사랑의 농도가 더 짙어진다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응하는 일반의 생각인 듯하다. 해피엔딩의 기쁨보다는 언해피엔딩의 결말이 향수를 자극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 자체가 불완전 인연의 시발점이라는 생태적 한계를 가진 것인지 모르지만 더욱 진한 커피를 마시게 하는 묘한 공능을 갖고 있는 단어가 사랑이다. 시인의 몇 개의 텍스트로 사랑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부여하고 있다. 

/습관적으로 가시로 찌르듯이
아프자 하는 기다림의 뜻이다/

/결코 아물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자는 뜻이거나/

/절대로 
서로를 기억하지 말자는 뜻이거나/

아픈 기다림과 상처를 어루만진다거나 절대로 서로를 기억하지 말자는 것의 반어법 속엔 아프지 않을 기다림과 이내 아물 가벼운 상처와 영원히 잊지 않고 싶다는 감정의 반어를 포용하고 있다. 표면적인 부정은 내면적인 바람의 또 다른 말이라고 생각한다. 시인이 1~4연까지 평이한 서술로 이끌어간 감정의 답은 시의 결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반어적 표현으로 감정을 절제한 것의 의미는 비밀스런 슬픔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너와 나 둘 중 누구도 풀지 못할 비밀, 그것도 슬픔이라는 유전인자를 내포한 비밀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의뭉스럽게도 시인의 인생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에둘러 말하고 있다. 

/운명이란 누구의 뜻인지 몰라도
돌아보면 모두 회한이거나 눈물뿐인 이승에서/

회한이거나 눈물뿐인 삶의 여정 속에서 사랑이야말로 회한을 곰삭게 해주는 매개체이며, 눈물을 거룩한 눈물로 승화시켜주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쉽게 풀어낸 사랑에 대한 개론 같은 시의 형식을 걸친 사랑학 개론을 읽는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작품은 김계수 시인의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라는 다소 음유적인 작품이다.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김계수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거짓말을 하는 법이라서
어떤 남자가 지나갔는지 가을이 다 알기 어렵다.
푸르게 달라붙는 대추의 끈질긴 꽁무니에서
파릇한 밤송이가 석양처럼 익어 갈 때까지
해 질 녘 통영 달아공원이나
삼천포 실안 언덕에 홀로 섰던 남자들만으로
가을이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폭풍과 비바람을 이겨낸 남겨진 풀잎들이
아슴아슴 지는 해에 소리를 아끼는 때
순간 찾아오기도 하는
가을은
말라가는 풀잎에 몸을 걸친 늙은 여치의 울음,
일생을 울고도 함께 돌아갈 짝을 이루지 못하는
귀머거리 귀뚜라미의 하얀 고막 같은 것.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거짓말을 하는 법이라서
어떤 여자가 떠나갔는지 가을이 다 알기 어려워도
밤이슬 툭 떨어지는 가는 풀잎에
제 얼굴을 비쳐 본 사람이라면
가을이 언제 지나가는지는 알 수 있다.

김계수 시인의 시는 감칠맛이 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문장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긍정에서 부정을, 부정에서 긍정을 끌어내는 도치적 언어 구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1~3행에 담긴 시인의 말은 상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을의 자리에 '나' 혹은 '사람'이라는 것을 놓고 생각해 보면 시의 맥락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가을이라서 다만, 가을이라서 가을에 심취한 자신에게 자신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을은 슬프다, 혹은 가을은 아프다. 가을은 내 것이 아니다. 가을은 사람들의 것이다. 나와 관계하지 모든 사람에게 가을이 내미는 승차권은 차표마다 목적지가 다를 것이다. 그것은 단지 가을이기 때문에 방향성의 결정권을 내가 가진다는 것의 다른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각적 표현이라는 말은 손에 쥐어지는 바람의 깊이와 질감과 채색의 다름이 아닐 수 있다. 온전히 나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소산 역시 가을일 것이며, 어쩌면 나는 내 감정의 한 끝에서 내게 기만당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어느 가을 길을 내가 지나갔는지 가을이 모르는 것처럼 가을이 어느 모서리를 지나가는지 나 역시 모를 일이다. 연전에 필자는 '가을 애가'라는 졸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시 소개해 본다.

가을 애가

김부회 

이별 후에야 알게 되는 이별,
모두 그렇듯
(중략)

왔는지도 몰랐는데
갔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자의 졸시 역시 내가 나에게, 가을이 내게, 내가 가을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김계수 시인의 시를 감상하며 그 어느 시점의 기억이 데자뷔 된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어떤 남자가 지나갔는지 가을이 다 알기 어렵다./

/어떤 여자가 떠나갔는지 가을이 다 알기 어려워도/

어떤 계절에 어떤 가을이 지나갔는지 내가 알기도 전에, 가을이 가을에게 거짓말을 하듯 나 역시 가을에게 거짓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밤이슬 툭 떨어지는 가는 풀잎에
제 얼굴을 비쳐 본 사람이라면
가을이 언제 지나가는지는 알 수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가을은 툭 떨어져 구를 것이고, 바스락 부서질 것이며, 가을을 공감하거나 하지 못하거나 어떻든, 세월은 지나가는 것이다. 가을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누가 붙인 이름표인지는 모르지만) 가을이라 부르니 가을일뿐인 어느 한때, 통영의 달아공원을 배회하는 시인의 그림자를 떠올려 본다. 문득, 어딘가에 비친 내 모습에서 가을이구나! 세월이 지나갔구나! 알게 될 때, 세월도 가을도 이미 늙어버린 시간의 부스러기들도 모두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것을 불현듯 느낄 때, 짐짓 시인의 가을은 귀머거리 귀뚜라미의 하얀 고막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본문 전체를 아우르는 

/가을이 
때로는 가을에게 
거짓말을 하는 법이라서/

시인의 이 말이 아슴아슴 몰락하는 가을 속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다. 

세 편의 시를 통해 가을에 젖어보았다. 분명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독자에게 편안한 시는 시인에게도 편안하다. 그것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편안인지 황홀한 편안일지는 독자의 몫이라는 점을 습윤 가득한 이 계절의 지문으로 남겨둔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월간 모던 포엠 2017. 11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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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9 쉰/ 이영광 金富會 02-05 160
1228 늑대보호구역 / 하린 湖巖 02-04 128
1227 일회용 기저귀 / 김진수 李진환 02-02 129
1226 목마른 입술로 / 최예술 湖巖 02-02 190
1225 나는 누구의 구멍일까/김완수 金富會 01-30 174
1224 눈 / 이재훈 湖巖 01-30 204
1223 김진수 시집 (설핏) 해설 金富會 01-29 170
1222 호수공원 / 신용묵 湖巖 01-28 174
1221 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밤 / 김경주 湖巖 01-25 260
1220 내 안의 우물 / 황정숙 湖巖 01-23 262
1219 반 지하/ 이진환 金富會 01-22 209
1218 까치밥 / 이종원 李진환 01-20 220
1217 교행(交行) / 류인서 湖巖 01-20 196
1216 무심(無心)에서 유심(有心)으로[오전 아홉시에서 열시 사이/ 금란 외 2] 金富會 01-18 194
1215 달과 돌 / 이성미 (2) 湖巖 01-18 219
1214 독바위 / 전동균 湖巖 01-16 215
1213 나비 그림에 쓰다/ 허영숙 金富會 01-15 248
1212 슬픈 환생 / 이운진 湖巖 01-14 247
1211 그대 / 이형기 안희선 01-12 355
1210 아시아의 국경/김해자 童心初박찬일 01-11 167
1209 사람에게 묻는다-휴틴 童心初박찬일 01-11 202
1208 만삭 / 김종제 안희선 01-11 217
1207 첫 사랑 / 류 근 湖巖 01-11 307
1206 지상에 없는 잠 / 최문자 湖巖 01-09 267
1205 자동세차 / 김옥성 湖巖 01-06 235
1204 입술 / 강인한 湖巖 01-02 355
1203 모래 위에 두 발자국-네카타(necata) 童心初박찬일 01-01 232
1202 일기예보-이형기 童心初박찬일 12-31 356
1201 죽지 않는 도시-이형기 - 童心初박찬일 12-31 235
1200 너의 날 / 권터 아이히 안희선 12-30 285
1199 자화상 /박형진 강북수유리 12-29 293
1198 주남저수지의 어느 날 / 허만하 湖巖 12-29 274
1197 주제 論 [소금/ 장윤희 외] 金富會 12-28 246
1196 무소유/ 박정원 金富會 12-26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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