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작성일 : 17-11-15 12:18
 글쓴이 : 金富會
조회 : 93  
◈다른 각도의 풍경들

-글, 김부회

비스듬히/ 권상진
가을 단상/ 박하경
쓸데없는 일에 관한 단상/손동욱

  가을이라 말하려다 문득, 창밖 단풍이 절정을 지나 쇠락하고 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한 해의 마무리 숫자도 많이 남지 않은 계절, 글감의 소제목을 생각하다 가장 먼저 일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 일상을 잠시 비틀면 또 다른 무엇이 보일까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시는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 이라 가정할 때 우리의 시는 일반적인 현상에 대하여 일반적인 생각을 하는지? 아니면 보다 독특한 자신만의 세계관에 입각한 일반적이지 않은 현상에 대하여 성찰하는 것인지? 잠시 자문하게 된다. 누구나 같은 관점으로 보는 알레고리를 갖고 있다면 시는 개인의 고유성을 잃게 될 것이며 각각의 질감을 상실한 글이 될 것이다. 다양한 소재와 관점을 가진 작품이기에 작품성을 논하게 되는 것이며 창작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것이기에 시를 쓰는 자세는 저마다 다른 각도를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직각이든 예각이든 평면이든 사선이든 어느 위치에서 어느 눈높이에서 현상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시적 현상은 매우 달라질 것이다. 또한, 그런 개인적 관점의 차이가 질적인 시의 창의성을 높이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남희 시인은 [겹눈의 상상력과 시의 명징성]이라는 기고 글에서 시인의 눈이야말로 평면적인 세상을 중층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시인의 눈을 겹눈이라 말했다. 이는 다양한 각도, 위치에서 세상을 본다는 의미일 것이다. 

겹눈의 상상력과 시의 명징성
박남희(시인)

1.잠자리의 눈과 시

잠자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곤충들은 겹눈을 가지고 있다. 수만 개의 작은 눈이 모여서 하나의 눈을 이루고 있는 겹눈은 주로 원거리보다는 근거리를 바라보는데 유리하며, 사물의 선명성보다는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는데 유리하다. 잠자리가 겹눈 뿐 아니라 홑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편향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리라. 만약 인간이 잠자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전문가들은 인간이 잠자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세상은 모자이크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잠자리는 세상을 선명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그 대신 세상의 움직임의 미세한 부분까지 잡아내서 그것들을 관찰하고 주어진 상황에 반응한다. 그렇기 때문에 잠자리는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 인간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이러한 잠자리의 눈을 생각해보면 쉽게 떠오르는 것이 시인의 눈이다. 시인의 눈이야말로 평면적인 세상을 중층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겹눈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잠자리처럼 세상을 모자이크화해서 보는 겹눈이 아니다. 잠자리의 눈은 눈의 구조가 겹눈으로 되어있지만 시인의 눈은 세상을 중층적으로 바라본다는 차원에서의 겹눈이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잠자리의 눈처럼 흐릿하게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선명하게 보려는 노력을 아울러 기울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시에서 사용되는 비유는 언뜻 보면 대상을 흐릿하게 보이게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시에서 비유를 쓰는 목적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설명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려는데 있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본능 중 대상을 선명하게 이해하려는 본능은 매우 강한 본능에 속한다. 시에서 표현의 명징성과 내용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인간의 이러한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좋은 시에는 중층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겹눈과 대상을 명징하게 바라보는 홑눈의 특장이 조화롭게 녹아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다음의 시는 잠자리와 시인의 상관성을 매우 강하게 암시해준다. 

『겹눈의 상상력과 시의 명징성- 박남희」일부 인용

시인이 다양한 각도의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현상을 인식하는 자아의 기반에 이성과 상상이라는 또 하나의 무기를 장착하고 삶에 대한 직관과 통찰의 혜안이며 더욱 더 진화하는 문화의식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지만 개개인의 습관, 배움의 깊이, 성찰의 완성도에 따라 시안은 때론 거시적이거나, 미시적이거나에 독특한 형태를 갖추는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오래전 이어령 문학가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저서에서 작게 만드는 것의 미학을 설파한 적이 있다. 반대로 크게 만드는 것을 미학으로 보는 나라도 존재하는 것이다. 요는 작든, 크든, 우주를 보든, 땅속을 보든 혼재한 모든 것들에 대한 여러 각도의 시선이 시를 보다 풍성하고 웅숭깊은 질감의 시를 엮어내는 것이라는 점이다. 


겹눈과 시적 상상력
-박남희

일반적으로, 세상을 겹눈으로 보는 것이 시인이지만, 그 양태는 시인에 따라서 매우 다르다. 세상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보고 우주적 상상력으로 인간의 삶을 조망해 보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현미경으로 대상을 보듯 세상을 미세하게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시인도 있다. 이 세상에는 큰 것과 작은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단단한 것과 물렁한 것들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서로 상이할 수밖에 없다. 시인은 대상을 본질적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존재이지만, 그 표현 방법은 역설, 아이러니, 반어, 알레고리, 은유. 환유, 대비, 병치 등 무수히 많다. 우선 다음의 시를 읽어보자.

들어갈수록 솔밭에는 솔 내음이 진동했다
용트림 우람할수록 송진 범벅이었다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는
고추 서서 견디느라
뼈가 녹아 살이 녹아 흐른 소나무의 눈물이
한 천년 땅 속에 묻히면 금패錦貝가 되고
또 천년을 견디면 밀화蜜花가 되고
다시 천년을 더 견디면 호박琥珀이 된다고
땅의 숨결 땅의 내음 땅의 체온에
썩고 익고 썩고 익는 세천년을 견디고서야
한없이 가벼웁고 한없이 단단한 보석이 된다고

눈물이 아니면 보석이 될 수 없는, 끝없이 못 견디면 보석이 될 수 없는, 죽은 듯 묻혀야만 보석이 될 수 있는 그 뻔한 이치는 안내인의 믿음이자 학설이지만

뜨건 눈물 그대로가 더욱 보석이고
단명하여 더 아까운
나의 보석은 늘 그랬는데,

-유안진,「사라지고 마는 것」전문(『창작21』2005년 가을호) 

유안진 시인은 요즘 들어 부쩍 인간의 영원성과 유한성에 관심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인용 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히는 시인데, 이 시를 살려주는 것은 마지막 연의 시인의 관점이다. 시인은 안내인을 따라 솔밭에 가서 송진이 수천 년 후에 호박이 되는 과정을 듣는다. 시인에 의하면 송진은 일종의 ‘소나무의 눈물’인데, 이 눈물은 수천 년이 지나서 굳어지면 보석이 된다. 하지만 시인은 눈물이 굳어져서 된 보석의 영원성과 고귀함 보다는, 금방 사라지고 마는 이 세상에서의 뜨거운 눈물보석의 고귀함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시인은 말한다. “뜨건 눈물 그대로가 더욱 보석이고/단명하여 더 아까운/나의 보석은 늘 그랬는데.”라고. 시인의 이러한 태도는 오래 견디고 연단을 받아야 보석이 되고, 그렇게 보석이 된 것이야 말로 귀한 것이라는 형이상학적 정신주의를 넘어, ‘눈물’로 상징되는 현세적 삶의 세목들이야말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지만 ‘보석’ 못지않게 귀한 것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유안진 시인은 이렇듯 세상적인 통념으로서의 보석의 자리에 ‘눈물’이라는 세속적 가치를 환치시킴으로써 견인주의라는 홑눈으로 바라보던 ‘보석’의 가치적 범주를 일상의 자리에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액체로 된 보석인 눈물을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시인의 특권이다. 이 시를 읽는 묘미가 여기에 있다. 

공터에 깨진 거울조각이 쌓여있다
서로 다른 각도로
서로 다른 크기로
주변을 쳐다보는 거울의 망막
계수나무를 감고 올라간 나팔꽃 줄기가 끊어져
꽃봉오리 터뜨린다
커다란 해바라기 얼굴이 조각나
싱싱하게 피어 있다
공터를 서성이던 내가 바닥에 박혀
찢어진 치마 속에 두 다리 감추고 있다
모서리마다 갇혀있는 하늘
긁히며 구름이 간다
바로 옆으로 건너가지 못하는 구름
바로 옆은 가까운 곳이 아니다
한 발짝만 움직여도
금방 다른 빛을 내며
다른 걸 담아내는 거울의 시선
바로 옆을 곁으로 삼지 않는다

-김산옥,「거울조각」전문(『현대시』2005년 11월호) 

위에서 인용한 두 시가 시인의 겹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시는 시적 소재인 ‘거울조각’ 자체가 겹눈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시인은 공터에 버려진 무수한 거울조각을 보면서 그들이 사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각도에 주목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선을 지닌 수많은 거울조각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계수나무를 감고 올라간 나팔꽃도 줄기가 끊어진 채 꽃을 피우는 것으로 보이고, 거울 조각 위에 서있는 시인의 다리 역시 찢어진 치마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하늘을 거침없이 흘러가는 구름이 거울조각 속에서는 바로 옆으로도 건너가지 못하는 단절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 시가 새롭게 읽히는 것은 거울의 겹눈보다는, 깨어진 거울조각이 상징하는 파편화된 현대인의 삶을 감지해 내는 시인의 겹눈에 기인한다. 시인은 삶이라는 공터에 무수히 부서져 산재해있는 파편화된 인간들의 눈을 통해서 왜곡된 세상에서 서로 소통할 수 없는 현대인들의 단절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한 발짝만 움직여도/ 금방 다른 빛을 내며/ 다른 걸 담아내는 거울” 즉 파편화된 개인은 “바로 옆을 곁으로 삼지 않는다.” 이처럼 하나가 될 수 없는 가치관의 극단에 거울조각들은 제각기 반짝거리고 있는 것이다. 

겹눈으로 보는 명징성의 세계
-박남희

이 글의 서두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잠자리의 눈은 겹눈이지만 세상을 명징하게 보아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세상을 겹눈으로 보면서도 명징한 세계를 보고 싶어 한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관념을 감각화 해서 보여주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현상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형이상학적 현상들을 구체적인 사물들을 통해서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중 인간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죽음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승에 사는 인간은 죽음의 세계를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종종 초혼제를 지내거나 여러 가지 종교행위를 통해서 살아생전 그립던 사자(死者)와 만나고 싶어 한다. 다음의 시는 보이지 않는 사자를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그려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녀는 기차를 갈아탄다
한 줌 뼛가루로
굴참나무 밑에 하얗게 뿌려진다
보풀 많던 어머니라는 이름, 흙뿌리가 된다
팔십 년을 세운 몸의 사원을 헐고
다시 팔십년을 큰키나무로 꾸리시려나
옆구리로 싯달타를 낳은 마야부인처럼
옆으로만 누워 꿈을 꾸던 여자
매운 슬픔, 맹물로 삼켰듯
크고 작은 빗방울, 잎으로 잎으로 게워낼 거다
살아 생전 한번도 내비치지 않았던
가슴속 아라비아바다
붉은 열매로 출렁출렁 매달릴 거다
껍질 무거웠던 한 겹 생애
헝겊바람처럼 가볍게 가볍게 풀어놓으며
치익포옥 치익포옥
다음 역까지 흔들흔들 갈 게다
마중나온 옹이들 손붙잡으며
그 여자, 기차를 갈아탄다
굴참나무라는 저 푸른 환승역

-김수우,「수목장 樹木葬」전문(『신생』2005년 가을호) 

수목장은 1999년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새로운 장묘방식이지만, 시신을 화장해 골분을 나무 밑에 묻는 자연친화적인 요소가 호응을 얻으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새로운 장묘문화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시인은 인간이 이 세상에 왔다가 다른 세상으로 가는 죽음의 과정을 수목장이라는 장례행위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준다. 죽은 어머니가 이 세상에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시인은 마치 우리가 한 열차에서 다른 열차로 갈아타듯 환승하는 것이 죽음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이렇듯 환승 모티브야말로 보이지 않는 사후의 세계를 생생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시적 장치인 셈이다. 인용 시에 의하면 시인의 어머니는 “옆구리로 싯달타를 낳은 마야부인처럼/ 옆으로만 누워 꿈을 꾸던 여자”이다. 불교에서 싯달타 즉 석가가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은 난산을 의미하기도 하고 탄생의 신비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어머니가 옆으로 누워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은, 그 아래의 “매운 슬픔. 맹물로 삼켰듯”이라는 구절과 연결시켜 보면 노환이나 긴 병으로 병상에 누워있었다는 것을 추리해 볼 수 있다. 살아생전에는 가슴 속에 감추고 내비치지도 못했던 가슴속의 아라비아바다, 즉 가슴 속에서 출렁거리던 회한이 붉은 열매로 출렁출렁 매달린다는 것은 분명히 축복이다. 시인은 이렇듯 수목장이라는 장례를 통해서 현세보다 더욱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열차를 갈아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보는 것이다. 

시인이 지니고 있는 겹눈은 죽음 저 쪽의 세계도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고감도의 눈이다. 그런데 요즘은 점점 시인의 겹눈이 그 기능을 잃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사물들이 시인의 겹눈을 기피하는 것인지 수 많은 문학잡지를 뒤져도 겹눈의 싱싱한 감각이 살아있는 시를 발견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필자의 부족한 글에 선뜻 승차해준 위의 시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창작 21> 2005년 겨울호 『겹눈의 상상력과 시의 명징성- 박남희」일부 인용

이번 호의 주제어인 다른 각도의 풍경 관점에서 세 편의 시를 선정하였다. 권상진 시인의 [비스듬히]라는 작품을 살펴본다. 정확히 앞만을 응시하고 바라본 것들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볼 때, 그 보는 각도에 따라 현상의 요체와 진리들이 어떻게 보이고 생각되는지에 대한 관점을 매우 진중하게 다룬 좋은 작품이다.

비스듬히

권상진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꼿꼿한 자세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과 사람의 틈

비스듬히 보아야
세상이 만만해 보일 때가 있다
예의처럼 허리를 숙여야 오를 수 있는 산비탈 집들
첫차에 등을 기댄 새벽의 사람들

기대고 싶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
손 내밀고 어깨 주는 것은
언제나 비스듬한 것들

삐딱하다는 것은
홀로 세상에 각을 세우는 일이지만
비스듬하다는 말은
서로의 기울기를 지탱하는 일

더러는 술병을 기울이면서
비스듬히 건네는 말이
술잔 보다 따듯하게 차오를 때가 있다

시제를 비스듬히 라고 붙였다, 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는 말이다. 권상진 시인의 비스듬히 를 살펴보기 전 이해를 돕기 위해 정현종 시인의 비스듬히 를 먼저 소개해 본다. 

비스듬히

정현종

생명을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세상을 산다는 것은 우뚝하게 홀로 오롯이 서서 살 수만은 없는 것이다. 희랍의 철학자의 말은 인용하지 않아도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어울려 산다는 말은 내가 주체가 아닌 객체의 존재 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모두 다 얻으려고 하면 아무도 얻지 못하고 모두 다 주려고 하면 모두 다 가질 수 있다는 말이 있듯 나 스스로 단체나 집단, 혹은 사람과 자연, 삶과 인생, 부과 빈곤, 이 모든 것에서 이끌어가는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될 때 어쩌면 우린 더욱 더 삶에 진솔해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비스듬히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거나, 혹은 내게 비스듬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의 그 기울기로 인하여 세상은 좀 더 따듯하고 안온한 세상일 것 같다. 무엇엔가 기댈 수 있거나, 기대주는 것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인간답다는 이야기라고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요즘처럼 혼자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혼밥, 혼술 등등의 단어가 낯설지 않다. 하지만 혼자라는 단어의 내면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정작 ‘혼자’가 원해서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타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내몰려 등등의 피동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물론 좋아서 하는 ‘혼자’도 많겠지만,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혼자가 아닌 여럿이며 그 여럿이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좋은 질료임도 부인할 수 없다. 권상진 시인은 말하고 있다. 꼿꼿한 자세만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의 내면에 대해, 꼿꼿하다는 것의 풍자에 대해. 연일 매스컴에서 이른바 ‘갑질’에 대한 암울한 뉴스가 많다. 이런 시대에 권상진 시인의 말에 귀 기울여보면 좋을 듯하다. 


몸을 기울여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꼿꼿한 자세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과 사람의 틈

세상과 사람의 틈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바는 매우 크다. 틈은 어쩌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각도의 풍경일 것이다.

비스듬히 보아야
세상이 만만해 보일 때가 있다
예의처럼 허리를 숙여야 오를 수 있는 산비탈 집들
첫차에 등을 기댄 새벽의 사람들

기대고 싶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
손 내밀고 어깨 주는 것은
언제나 비스듬한 것들

기대고 싶은 대상, 목적물은 꼿꼿하지 않다. 제 주장만 앞세우거나 제 계산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 곁에 우리 주변에 수많은 비스듬한 것들에 손 내밀어보자. 그들의 온기는 언제나 따듯할 것이다. 삐딱하다는 것은 각을 세우는 일이라고 한다. 반면에 비스듬하다는 것은 서로의 기울기를 지탱하는 일이라 권상진 시인은 말한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결과가 시에 녹아들어 마음 한 부분에 반성과 새롭게 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 시는 그런 것이다. 난삽한 요설로 비틀어 쥐어짜는 수사의 잔치가 아닌 한 점 한 점, 한 획 한 획 생각의 깊이를 저며낼 때 비로소 시가 생명을 갖고 꿈틀대는 것이다. 독자의 가슴에.

더러는 술병을 기울이면서
비스듬히 건네는 말이
술잔 보다 따듯하게 차오를 때가 있다

두 번째 작품은 박하경 시인의 [가을 단상]이다. 깊은 가을에 어느 시절의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조곤조곤하게 이야기 들려주듯 풀어낸 작품이다. 기고 글의 주제와는 조금 다를 수 있는 작품이지만 박하경 시인의 이야기 속엔 아릿한 삶이 있으며 ‘부부’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좀 더 진솔하게 엮어 놓았다.

가을 단상

박하경

젊은 부부가 나란히 앉아
고구마를 캐고 있다
단발마처럼 짧게 외치는 
가을을 캐내고 있다

채소위에 단비가
고운 빗살무늬를 그리던 날
둘은 마주앉아 고구마 순을 놓았다
이 고구마를 함께 캘 수 있을까
의문부호를 땅에 함께 묻던 날
둘은 서럽게 울었다

달의 수명과 지구의 수명과
알 수 없는 행성의 수명을 놓고
내기를 하던 날
남편은 고무마를 캘 수 없을 거란
재난 신고서를 미리 받았다

고구마는 깊은 땅의
호흡을 흡입해서
젊은 남편에게 수명을 이어주었다
가을은 이렇게
작별을 멈추게 하고
이별을 아프지 않게 봉합한다

자연과 삶이라는 주제를 놓고 생각해 본다. 살면서 무수히 많은 좋은 시절과 그 반대편에 있는 좋지 않은 한때, 좋은 시절엔 좋지 않을 한때를 상상하기 어렵지만 좋지 않는 시절엔 좋은 시절을 꿈꾸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시인의 의도와는 다른 오독일지 모르지만 박하경 시인의 시에서 자연과 삶이라는 아니 생명과 사람의 인식이라는 관점에서 시를 대했다. 

달의 수명과 지구의 수명과
알 수 없는 행성의 수명을 놓고
내기를 하던 날
남편은 고무마를 캘 수 없을 거란
재난 신고서를 미리 받았다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재난신고서에서 상징하거나 의미하는 바는 긍정적이지 않은 신호를 보내주고 있다. 평이하거나 소소한 일상의 범주를 벗어난 어떤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기 마련이다. 달의 수명, 지구의 수명, 행성의 수명이 아닌 그저 일상이라는 범위 내의 행복은 그 행복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좋다. 수열이나 고차방정식 같은 문제풀이가 아닌, 삶 본연의 모습이라 좋다.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인 ‘재난 신고서’와 같은 느닷없는 불행 앞에 사람은 당황하고 혼란스럽기 마련이다. 준비되지 않는 작별과 고통은 준비된 것에 비해 수 배의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통 앞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 역시 현명한 극복수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구마는 깊은 땅의
호흡을 흡입해서
젊은 남편에게 수명을 이어주었다
가을은 이렇게
작별을 멈추게 하고
이별을 아프지 않게 봉합한다

가을과 고구마가 상징하는 것은 계절적이거나 수확물에 대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땅의 호흡을 인공호흡 하듯 남편에게 전해 주는 고구마와 가을이 의미하는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고구마 = 가을이라는 등식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 시적 화자의 심상이 깊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있는 삶이라는 형태의 진리가 곱다. 4연의 5~6행에서 담담한 척, 아니 담담하게 생을 바라보는 젊은 부부의 환상이 머릴 스쳐지나간다. 성철 스님의 일갈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에 함축된 자연스럽게 라는 말은 어쩌면 모든 행복과 고통에 잘 어울리는 평범한 것처럼 보이는 위대한 진리라는 생각을 거둘 수 없다.

마지막 작품은 손동욱 시인의 [쓸데없는 일에 관한 단상]이라는 작품이다. 시를 읽으며 역설적으로 세상에 쓸데없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반어법과도 같은 쓸데없는 일의 내면을 살펴본다.


쓸데없는 일에 관한 단상

손동욱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쓸데없는 수많은 일들
청량리 역까지 갔다가 집으로 가거나
아예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갑자기
쓸데없는 일이면 어쩌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쓸데없는 일 아닌 건 뭐가 있을까
떼돈 벌고 유명해지고 가슴 태우는 사랑을 하고
부귀영화 누리며 흐뭇하게 한평생 잘 살았다고 하자
그래서 뭐?
백성을 잘 먹여 살리거나
위대한 깨달음으로 인류를 구원 하거나
우주의 비밀을 벗겨 한층 더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그래서 뭐?
어제는 태풍에 집채만 한 파도가
하얗게 몰려다니더니
오늘은 석양 붉게 타올라
세상은 날마다 새 그림을 화폭에 펼치는데
누군가 그랬어
내 눈꺼풀 닫으면 세상은 없는 거라고
오늘도 
바람 하나 불어가네
또 낙엽 굴러가네

온 생을 뒤덮는
모든 쓸데없는 일들 중에
지금은 
하나만 할 거야

널 그리워하는
바로 그
쓸데없는 일

어느 날 불현듯 생각해보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것들이 다른 관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반대로 쓸데없는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정작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사고와 생각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현재의 환경, 사건, 난이도에 따라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시시각각 개연성과 의미를 달리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렇다. 죽고 못 살듯하다 세월 지나 다시 조명해 보면 왜 그랬는지? 그땐 왜 그것이 전부였는지? 자조 할 때가 많다. 반대의 경우 뭐 한다고 그것을 잊거나 잃어버렸는지? 되묻게 되는 날, 살아온 날 전부가 온통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떼돈 벌고 유명해지고 가슴 태우는 사랑을 하고/
/부귀영화 누리며 흐뭇하게 한평생 잘 살았다고 하자/
/그래서 뭐?

/백성을 잘 먹여 살리거나/
/위대한 깨달음으로 인류를 구원 하거나/
/우주의 비밀을 벗겨 한층 더 진실에 가까워지거나/
/그래서 뭐?

손동욱 시인이 열거한 사건과 일들은 모두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바로 그때, 그 사건의 현장에서는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답은 담백하다. 그래서 뭐?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고 의뭉스럽게 말하고 있다. 정작 그래서 뭐? 는 분명 아닐진대, 청량이 역까지 갔다가 집으로 가거나 아예 집으로 돌아가는 일까지 그 일상의 일상까지 쓸데없는 일로 느껴지는 날, 시인은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술한 모든 서술의 방향을 부정적이거나 허무하게 다루었다. 에둘러 표현하는 시적 기법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날마다 새 그림을 화폭에 펼치는데
누군가 그랬어
내 눈꺼풀 닫으면 세상은 없는 거라고

날마다 새 그림을 화폭에 펼친다는 세상, 시적 표현이 탁월하고 성찰의 깊이 역시 매우 뛰어나다. 세상과의 단절은 매우 쉽다. 눈을 감으면 된다. 불과 한 꺼풀에 불과한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지금, 이 계절 가을에 가장 쓸 데 있는 일을 시인은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온 생을 뒤덮는
모든 쓸데없는 일들 중에
지금은 
하나만 할 거야

널 그리워하는
바로 그
쓸데없는 일

널 그리워하는 일의 ‘널’은 타인이며 자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움의 대상은 눈꺼풀 밖의 현상이며 눈꺼풀 속의 자아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은, 아니 겨울로 갈수록, 추워질수록, 그리움의 진정성은 기억 속의 존재에 대해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시간의 선도는 기억 속에서 가장 싱싱한 법이다.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시적 구성이 대단히 잘 된 수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다. 시를 쓰기 전 기존 생각의 틀이나 속박, 억제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때로는 위가 아래가 되고 좌가 우가 되는 발상을 해 보자. 그 역발상의 언저리에서 가장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다. 지금 ‘곁’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빛의 광원이 만든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시는 일상을 일상으로 보지 않을 때 시가 되는 법이다. [글- 김부회]

*모던 포엠 2017.12 월호 기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내가 읽은 시 이용안내 조경희 07-07 12537
1169 의자 / 조병화 湖巖 02:30 3
1168 팽이 (1) 童心初박찬일 01:06 4
1167 불면, / 이경림 (2) 湖巖 11-23 96
1166 목련을 읽는 순서 / 이경교 (2) 湖巖 11-21 111
1165 다시 너에게, 너를 위하여 / 박진숙 (2) 안희선 11-20 116
1164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 (2) 강북수유리 11-20 120
1163 계속되는 마지막 / 김 언 金富會 11-20 93
1162 목련 여인숙 /박완호 (2) 문정완 11-19 117
1161 푸른 동거 / 이영애 湖巖 11-18 112
1160 끔찍하고 놀라운 것 / 유안진 안희선 11-17 119
1159 들소를 추억하다 / 조동범 湖巖 11-16 118
1158 홀로 가득한 그리움 / 金善淑 안희선 11-15 156
1157 [다른 각도의 풍경들] 비스듬히/ 권상진외 2 金富會 11-15 94
1156 수화기 속의 여자/이명윤 강북수유리 11-15 99
1155 물가에 목란배를 매어두고 / 허영숙 안희선 11-14 159
1154 찔레 / 이근배 湖巖 11-14 121
1153 한 사람/ 윤준경 金富會 11-13 147
1152 나는 삼류가 좋다/김인자 강북수유리 11-13 128
1151 겨울기도 / 마종기 안희선 11-11 194
1150 꽃의 기억 / 복효근 湖巖 11-11 148
1149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 문향란 안희선 11-10 148
1148 거미의 날개 / 최형심 湖巖 11-09 147
1147 노숙 /김사인 강북수유리 11-08 156
1146 충남 당진 여자 /장정일 강북수유리 11-07 154
1145 농담/ 김중일 金富會 11-06 167
1144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湖巖 11-06 193
1143 어떤 관료/김남주 강북수유리 11-04 136
1142 그믐과 초승 / 이철건 湖巖 11-04 156
1141 견딤의 방식 / 유현서 안희선 11-04 176
1140 때로는 江도 아프다 / 김구식 안희선 11-03 222
1139 하늘의 물고기 / 강인한 湖巖 11-02 176
1138 남해 금산/이성복 강북수유리 10-30 204
1137 받은 편지함 - 강화의 가을 / 허영숙 안희선 10-30 240
1136 새벽 4시와 5시 사이 / 윤성택 金富會 10-30 210
1135 가문비 돛대 / 유인채 湖巖 10-30 147
1134 희망/정희성 강북수유리 10-28 225
1133 가을이 자꾸만 깊어가네 / 김설하 안희선 10-27 309
1132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湖巖 10-27 237
1131 신성 / 배한봉 湖巖 10-25 216
1130 가을하늘 / 김선숙 안희선 10-24 320
1129 거울 / 조용미 湖巖 10-23 298
1128 보고 싶다 / 김선숙 안희선 10-22 304
1127 갈라파고스 템포 / 김옥전 湖巖 10-21 221
1126 입산한 내가 하산한 너에게 / 이기와 안희선 10-19 294
1125 습윤(濕潤)의 계절, 가을[사랑한다는 것은/손은교 외 2] 金富會 10-18 296
1124 無題 / 박재삼 湖巖 10-18 244
1123 石窟庵 / 이원섭 안희선 10-17 243
1122 지난 겨울의 강설(降雪) / 배정웅 안희선 10-16 269
1121 사과/ 이초우 金富會 10-16 294
1120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 / 백무산 湖巖 10-16 358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