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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29 03:18
 글쓴이 : 湖巖
조회 : 292  

여름을 건너간 슬픔 / 최해돈

 

보도블록이 깔린 플라타너스 길을 걸으면,

 

매미의 울음소리가 쩍쩍 갈라진 여름을 엮는다, 젊은 날 죽은

베르테르가 떠오르고, 김수영 시인이 자박자박 지나간다, 콕, 콕, 찍어 먹는 팥빙수가

생각나고, 푸르게 푸르게 빛나던 어린아이의 눈동자가 수채화로 태어난다

 

보도블록의 존재가 재확인 되는 늘어진 오후의 플라타너스의 길을 걸으면,

 

여름인데도 흰 눈이 내리고, 붉은 우체통에 반송되는 당신의 부재가 그리움의 씨앗으로

흩어지고, 조금씩 낡아가는 당신의 페이지가 검은 건반이 있는 피아노에 걸어간다

 

어느 해부터인가,

 

플라타너스 길엔 가을이 오지 않았고, 초겨울의 작은 문턱으로 가는 새떼의 줄을 마른 풀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편서풍 부는 플라타너스 길가엔 틈과 틈 사이를 횡단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중저음으로 전송될 뿐

 

길바닥엔 나뒹그는 먼지와 오가는 사람들의 접힌 슬픔이 훠이훠이 여름을 건너갔다

 

* 최해돈 : 1968년 충북 충주 출생, 2010년 <문학과 의식> 으로 등단

               시집 <아침 6시 45분> 등

 

# 감상

아침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연애편지 같은 시 한 편을 읽는다

화자는 플라타너스 늘어진 보도블록 길을 걸으며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죽음과 시인 김수영을 생각한다

여름인데도 흰 눈이 내린다는 것과 어느 해부터인가 플라타너스 길엔 가을이 오지 않고 초

겨울의 작은 문턱으로 가는 새떼를 마른풀이 바라본다는 것은,  

붉은 우체통에서 반송되는 당신의 부재가 그 만큼 아프고 슬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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