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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작성일 : 18-08-09 13:26
 글쓴이 : 鵲巢
조회 : 84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 / 문태준

 

 

 

 

     내 어릴 적 어느 날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노랗게 익은 뭉뚝한 노각을 따서 밭에서 막 돌아오셨을 때였습니다

     누나가 빨랫줄에 널어놓은 헐렁하고 지루하고 긴 여름을 걷어 안고 있을 때였습니다

     외할머니는 가슴속에서 맑고 푸르게 차오른 천수(泉水)를 떠내셨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곡식을 까부르듯이 키로 곡식을 까부르듯이 시를 외셨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외할머니의 밭에 자라 오르던 보리순 같은 노래였습니다

     나는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가 울렁출렁하며 마당을 지나 삽작을 나서 뒷산으로 앞개울로 골목으로 하늘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석류꽃이 피어 있었고 뻐꾸기가 울고 있었고 저녁때의 햇빛이 부근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시를 절반쯤 외시곤 당신의 등뒤에 낯선 누군가가 얄궂게 우뚝 서 있기라도 했을 때처럼 소스라치시며

     남세스러워라, 남세스러워라

     당신이 왼 시의 노래를 너른 치마에 주섬주섬 주워 담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시 외는 소리를 몰래 들은 어머니와 누나와 석류꽃과 뻐꾸기와 햇빛과 내가 외할머니의 치마에 그만 함께 폭 싸였습니다

 

 

 

鵲巢感想文

     시를 읽으면 어두컴컴한 골목에 마치 가로등불 하나둘씩 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잠시 잊은 단어, 아니면 잊어가는 단어가 새롭게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늙으면 과거 속에 산다고 하신 선생님 말씀도 스쳐 지나갑니다.

 

     시인은 외할머니 생각에 옛 기억을 더듬어 주옥같은 시를 만들었습니다. 노각(老角)이며 천수(泉水) 참 어려운 단어입니다만, 왜 이리 어려운 단어를 사용했을까! 그건 말이지 옛사람의 정취를 한껏 떠올려보기 위함입니다. 늙어서 빛이 누렇게 된 오이를 노각이라 하며 샘물을 천수라 합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곡식을 까부르는 것과 시를 키로 까부르듯이 외시는 외할머니, 해마다 봄이면 밭에 자라나는 보리순 같은 여리고 힘없는 서민의 노래는 옛사람만이 가졌던 정경입니다.

 

     시인은 외할머니의 삶을 모두 보며 컸습니다. 한때는 뻐꾸기보다 정갈한 목소리이셨고 석류꽃보다 더 붉은 삶의 열정이 있으셨고 햇빛보다 따사로운 눈빛으로 저녁을 안치셨습니다.

 

     가족을 보살피며 늘 등 뒤에서 우리의 안녕을 지켜봐 주셨던 외할머니 혹여, 누가 볼세라 부끄러움도 못내 감췄던 우리의 외할머니, 어머니와 누나와 석류꽃과 뻐꾸기와 햇빛이 따사롭게 내려다보는 우리의 삶을 기원합니다.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여태껏 시를 잘 쓰지 못하는 이유일까요!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지만, 칠곡 어느 골짜기에 가난한 집안으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어머니의 고생을 눈으로 보며 자랐습니다. 생선궤짝 머리이며 동네방네 다니셨던 어머님도 기억나고 비쩍 마른 송아지 한 마리가 마당가에 있었던 것도 기억합니다. 구미 동국방직과 그 외, 여러 방직공장 하청업계에 평생 일만 하셨던 어머님도 기억합니다. 평생 외갓집이라곤 서너 번 다녀왔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몇 번 뵙지도 못한 외할머니지만, 머릿속에는 외할머니가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옛날은 부자였던 집이 지금의 가난한 집안과 비교가 되겠습니까만, 허드레한 한복 차림으로 물 긷고 가마솥에 밥을 안쳤던 외할머니가 저도 생각이 납니다. 우리의 할머니였습니다.

 

     어머님이 자주 찾아 가 뵙지 못한 것은 가난이었습니다. 어머니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입니다만, 서울 대 나오신 외삼촌보다 시를 더 잘 외웁니다. 어머님 말씀이지요. 외삼촌께서 연애편지 쓰시는 데 야야 봉*야 그 뭐시고 가 ~ 시 좀 외워봐라! 그러면 어머니는 줄줄 외웠답니다. 지금도 어머님 곁에 앉아 김소월이나 한용운도 부탁하면 줄줄 외우시는 어머님, 어릴 때 참 신기하게 들었습니다만, 지금은 눈물이 납니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정말이지 따뜻하게 가족을 살피며 후원하며 우리를 지켜봅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생활수준이 좋아졌고 각종 편의시설로 결혼관은 아예 없어진 것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를 기피하는 추세라 그렇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따뜻한 시 한 수를 읽어 오늘, 마음 한 자락이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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