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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전용)

 ☞ 舊. 공모전 당선작

 

주요 언론이나 중견문예지의 문학공모전 수상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작성일 : 18-04-23 11:29
2018년 상반기 <시로여는세상> 신인상 당선작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1056  

2018년 상반기 <시로여는세상> 신인상 당선작

 

그의 해 4

 

김태희

 

 

당신의 흙 위에서 이제 편지를 씁니다.

발바닥에 닿아 있는 부분이 누군가의 이름 같았고

그것은 입으로 부르는 소리처럼 울려

진동이 되어 발바닥을 간지럽힙니다.

 

한쪽 발을 딛고 오래 서 있어 보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람이 부는 날과 떠나던 당신의 날씨가

무거워져 다리를 접고 앉아 있습니다.

발바닥 밑으로 당신이 답장하라 했던 주소가 흘러갑니다.

간지러운 기억이 아쉽게 사라졌고

그해 여름에는 물속에 발을 발목까지밖에

담그지 못했습니다.

물 위로 떠내려가는 친구와 강아지가 자주

이불 위에 찾아 왔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것과 용서를 배웠습니다.

 

당신에게 쓰는 편지의 글씨가 발자국을

닮아 있는 것을 알았지만

편지는 걷는 것처럼 쓰고 싶었습니다.

여름이 지나도 귀에는 매미 소리가 여전했고,

당신의 편지 위에 종종 오줌을 누었습니다.

그 위에 코스모스가 자라면 새 신발을 신은 발로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올라서서 흙이 묻은 발을

탁탁 털어버리면 당신에게 썼던 편지가

맛있는 옥수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주머니에는 당신의 욕심 같은 붉은 펜이

있었고, 당신이 편지를 믿는 동안

당신의 주소를 흙 위에 곱게 뿌립니다.

 

아이의 인형을 가져와 허수아비로 세워 놓고

가을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이른 기침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발과 글씨체가 닮았다는 기억만

담벼락에 적어 놓겠습니다.

 

      

  

우리의 유리 



 

깨진 유리를 읽고 있는 널, 내가 주웠지.

방향은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깨진 것들이 쌓이면 아무 일도 없던

일기의 한 페이지를 깨끗이 찢어 덮었다.

그리고 내가 널 품에 안고

죄에 대하여 이야기 했다.

더러운 손이란 것은 없다.

평범한 날에는 모래 놀이를 하던

네 손을 털어 주었다.

그로부터 나는 자주 손을 베었다.

 

밖에는 넘어지거나 깨지는 것들이 많아졌다.

바람 소리조차 수다스러웠다.

네가 팔을 긁고 있으면, 나는 조금 잘 수 있었다.

이상하고 무서워서 네 손을 꼭 잡는다.

 

버리면 돌아오는 이야기를

너는 노래로 부른다.

깨어있는 귀에 속삭이듯,

속삭임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귀는 깨진 것을 닮아 있었다.

 

너는 턱을 괴고 밖을 본다.

한숨 자고 난 후의 너는 자라있고

읽었던 것들을 잃는다.

더 이상 모래에 손을 대지 않게 되고

나는 해치워 버리고 싶은 책에

이제 간간이 손가락을 베었다.

 

후회는 네가 품에 오지 않아서 없었다.

 

 

        

대화체

       



얇은 말,

우리가 돌을 던져 죽인 이야기

벌써 살이 돋아난 상처를 처음 씻은

우물가에 모여 우리는 이미 죽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까 얇은 말은 대화가 되어

이 우물에 가라앉았다.

우리는 이곳에 모이기 알맞은 독 같았다.

 

생채기를 수집하는 북서쪽의 파열음들

뿌리만 남은 나물을 캐내어 건조시킨 독은

손바닥에 써 놓은 주술로 살아났다.

우물은 손으로 담아 마시기 아직 차가웠고

눈을 오래 감고 있을 때마다

지난밤 꿈이 뺨까지 닿았다.

 

계절은 항상 빠진 눈썹처럼

쉽게 날아가 버렸다.

손 위에 올려진 계절이 웅성거렸다.

우리는 모여 있었고

우물은 항상 먼저 녹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도 들리는 우리의 대화가

새카맣게 타버린다.

밤인 줄 알았다.

너무 긴 대화가 부르는 이름처럼 가볍다.

 

곁눈질로 물 위를 걸어오는 일주일의

처음을 모른 척한다.

얇은 말은 무거운 문장이 되어

우물 바닥에 가라앉았다.

닻처럼 가라앉던 대화가 출렁거리면

낮에 다친 상처가 욱신거린다.

바람 안에는 독이 있었고,

우리는 서서히 죽을 수 있었다.

 

들여다보고 싶을 때면

아무도 없는 우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모든 이야기가 등 뒤로 왔다 떠났다.


 

 

GO

          



추운 방에 누워 잠이 드는 너와

내리는 눈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나는

누가 더 멀리 떠날 수 있는 이방인일까 생각한다.

교환한 꿈의 무게가 너와 나의 티셔츠 밖으로

조금 빠져나와 있다.

우리는 그것이 이토록 가볍다며 웃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지중해와 태평양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새로 산 볼펜의 색깔이 조금씩 진해졌다.

심해처럼,

 

일기를 쓰기 전 감기가 시작되었다.

일기는 충분히 이상해졌다.

갈 수 있는 곳에 가기 전 우리는,

그러니까 너와 나는 덜덜 떨며

얼어 있는 땅위에 이름을 묻었다.

추울수록 선명한 것이 별뿐인 것 같았다.

마지막까지 따뜻한 것이 먹고 싶었다.

 

      

      

요즘의 손

   

 

      

우리는 우리만의 손잡이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손바닥을 닮은 생활만이 바닥에 고스란히 찍혔다.

비가 내리면 몰래 혓바닥을 내밀며 맛을 본다.

세상은 조금씩 맛이 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성장은 비정상이어서, 늙을수록 작아졌다.

한 번도 손가락 자국이 선명한

내 손잡이를 잡을 수 없었다.

 

골목에는 벗어놓은 바지와

미숫가루가 묻은 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나는 여러 번 새벽을 방임했다.

일주일은 꼬박 7일을 채우려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의 자국을 시침질했다.

결국 벽에 걸리긴 좋은 모양의 것이 된다.

 

낮에는 눈이 시렸다.

새것을 가지고 싶어서 담긴 물을 버리고

새 물을 받아 마신다.

닦아서 엎어 놓으면 우리는 다시

그것을 세워 놓았다.

오래 손에 쥐고 있어도

손가락 자국이 남는 것은 없었다.

잡고 싶은 것을 향해 달려들다

주저앉으면 젖은 바닥에

엉덩이는 금방 젖어버렸다.

 

허벅지에는 내일과 나의 이름이

바느질되어 있기도 했다.

가장 초라한 피가 밤새 흘러 앙상한

아침이 되면 급히 마신 미숫가루처럼

신물이 되어 넘어왔다.

문을 열고 나오면 양손이 필요한

일이 많았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손가락질하는

가벼운 것부터 시작했다.

엉덩방아 찧는 일과 물 마시는 일을 위해

문을 열고 나왔다.

양손은 아직 나에게 붙어 있고

바느질이 시작되었다.

손잡이보다 내 손이 더 잘

만들어진 것 같았다.

 

 

 

  

김태희| 1982년 서울 출생.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방송극작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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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 이번 2018년 신인상 본심 심사에는 총 8명의 작품이 올라왔다. 김태희의 그의 해9, 심재운의 자몽이 먹은 세상9, 안창섭의 축제19, 염경섭의 너라는 정체성9, 이소현의 태초의 탄생9, 정원선의 포물선 수업9, 한여름의 스톤 피플9, 허우경의 공손한 세수9편 등이다.

   이 작품들은 일정한 수준을 갖추고 있어서 누구 한 분을 선정해야 한다는 것에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각각 자신의 스타일을 꾸준하게 밀어붙이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신선함과 열정, 패기를 잘 갖추고 있었다. 조금만 더 섬세한 작업들이 동반된다면 앞으로 모두 좋은 시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관습적으로 진행되는 시의 구조나 상투적인 표현에만 머물고 만 이미지들, 산문과 시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애매한 표현들이 시의 전체적인 힘을 약화시키는 작품들이 있었다. 딱딱하고 작위적인 구성이 시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거나, 읽자마자 익숙한 느낌이 들어 그냥 소비되고 마는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또한 빡빡하게 모든 것을 채우는 것이 산문시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산문시는 밀도를 높여서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힘을 보여주는 매혹이 있는 세계인데, 그것이 모든 것을 다 토해냄으로써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것은 김태희와 한여름의 작품들이었다. 한여름의 작품은 흥미로운 세계를 과감하고 감각적인 터치로 그려내고 있어서 주목을 받았다. 유연하게 자신의 상상력을 개진하여 나가는 에너지 또한 인상적이었다. 다만 외부에서 끌어들인 콘텐츠가 감각적으로 스케치된다고 전부 시가 되지는 않는다. 좋은 시들도 있었지만 콘텐츠의 여러 세부들이 스케치에 그치고 만 작품들도 있어서 끝까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김태희의 작품을 만장일치로 뽑았다. 김태희의 작품은 일상과 시적 인식이 묘하게 섞여들면서 특유의 뉘앙스를 발생시킨다. 익숙한 듯하지만 기묘하게 흘러가는 생활의 구멍들은 시인의 슬픔을 조금씩 증대시킨다. 그것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잘 포착하여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매혹이 있다. 그 안으로 스며들어 있는 서정성 또한 주목할 만하다.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고통이 유쾌함으로도 터져 나올 수 있다면 더욱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시는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지만 쓰면 쓸수록 열린 세계로 나가려는 탄성을 숨기지 못한다. 그 탄성의 힘에 자신을 맡겨보는 일은 얼마나 근사한가. 본심에 오른 모든 분들은 기꺼이 그 탄성에 자신을 맡긴 분들이다. 곧 좋은 지면에서 만나 뵙게 되기를 기대한다. 시를 읽고 쓰는 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분명히 달라진다. 우리는 그 길을 가고 있다.

 

   심사위원 : 이영주(), 김중일 시인


                       ⸺《시로여는세상2018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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