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문학가 산책
  • 문학 강좌

(관리자 전용)

☞ 舊. 문학강좌

 
작성일 : 16-02-16 09:3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098  

 시를 쉽게 쓰는 요령 - 김영남

 

8.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시적 표현 얻는 방식 두 가지

 

초보자 시절은 시 쓰는 것에 대하여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설사 알겠다 여겨지더라도 쓰려고 하면 또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상관하지 말고 바로 무조건 끄적거려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여, 바로 끄적거려도 남보다 몇 곱절 빠르게 시적 표현을 얻는 방법 두 가지만 공개할까 합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이 두 가지만이라도 잘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남과 다른 표현을 새롭고 독특하게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을까? 이걸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면 <묘사>는 개념을 알아야 하는데 이걸 또 설명하려면 한 학기 내내 설명해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서 필자의 개발한 용어로 그 방법을 설명할까 합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 뒤집어 생각하고 행동하기 >입니다.

 

시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의 사고와 인식 방향이 주로 한쪽으로 쏠려있습니다. 그러니까 먹고 마시고 행동하고 또 사물을 보고 느끼고 감탄하고 슬퍼하는 방식이 대동소이하고, 우리의 인식구조도 주로 그 쪽으로 익숙해 있습니다. 따라서 그 쪽에서 새로운 표현을 구하려면 지금까지의 방식보다 몇 곱절 노력과 탐구로 새로운 표현을 발견하지 못하면 결코 효과적으로 다가오지 못합니다. 이때는 거꾸로 접근해 보는 겁니다. 남들의 시선이 다 한쪽으로 쏠려있을 때 자기는 거꾸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그러면 남들이 전에 자주 보지 못했던 사고와 행동이니깐 우선 시선을 끌게 되고 새롭게 느껴지게 되는 거죠. 다시 말해서 고스톱도 여지껏 쳐왔던 방식으로 쳐 잘 안 풀릴 땐 거꾸로 치면 의외로 잘 풀리는 이치와 같은 전략이지요.

 

그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떤 시인이 <나는 낭만을 매고 정동진 바다를 보러갔다>로 표현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똑같은 내용이지만 이걸 거꾸로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정동진 바다의 낭만이 나를 유혹했다>, 또는 <정동진 바다의 낭만이 나를 초대했다> 이렇게 되는 거죠. <나는 높은 하늘을 이고 간다>를 거꾸로 표현하면 <높은 하늘이 내 머리를 매달고 간다>. <나는 강물에서 발을 뺍니다> <강물이 내게서 발을 뺍니다>, <나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울이 나를 쳐다본다>가 되는 거죠. 어떻습니까? 똑같은 내용이지만 어떤 게 우리에게 더 참신하게 다가옵니까? 후자이지요. 전자가 설명이라면, 후자는 묘사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묘사란 그 동안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는 인식체계로 대상에 접근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방법을 구사할 때 유의할 점은 시 전편에 걸쳐서 다 이렇게 표현하면 안되요. 전편에 걸쳐서 구사하면 이것 또한 한쪽 체계의 인식구조로 전락하고 굳어지기 때문에 군데군데 양념치듯 구사해야 되요. 특히 첫연 첫구절에 이걸 효과적으로 구사하면 독자들을 아주 매료시킬 수 있습니다. 현 문단에서 이걸 잘 구사하는 시인이 바로 오규원 시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을 쓴 김수영 시인도 이 기법을 즐겨 구사했구요.

 

두 번째 방법은, <주변 소재로 생각하고 행동하기>입니다.

 

이 방법은 필자가 깊이 탐구해 작품에 실제 많이 응용했고 현재도 아주 즐겨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즉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 또는 풍경 내에 있는 주변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입니다. 이걸 잘 활용하면 시가 그림처럼 아주 선명하게 되고 초점도 또렷하게 됨을 금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풍물, 풍경시를 쓸 때 이 방법은 아주 효과적입니.

 

예를 한번 들어봅시다. 가령 어떤 사람이 형광등, 침대, 커튼, 그림 등이 있는 방에 갇혀 한 여자를 그리워하며 책상에 골똘히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그는 책상과 함께/ 한 여자를 침대처럼 그리워한다/ 그의 얼굴은 형광등처럼 창백하지만/ 마음을 커튼처럼 열어 젖히/ 밤늦도록 간절함을 족자처럼 그녀를 향해 내걸고 있다>

 

이렇게 한 남자가 한 여자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방 속에 있는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그 이미지와 초점이 선명하게 되고 할 이야기도 금세 많아지게 됩니다. 대부분이 이걸 잘 모르고 방밖을 벗어나 거창한 소재와 이야기를 자꾸 끌어오려 하다보니깐 시가 초점이 흐려지고 난해해 지게 되는 거죠. 이것만 잘 해도 시가 아주 유창해 집니다.

 

실제로 이 기법 하나만으로도 신춘문예 당선한 필자의 시 한 편을 그 예로 살펴보고 이번 강좌를 마치겠습니다.

 

정동진驛 

 

겨울이 다른 곳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닷가

그 마을에 가면

정동진이라는 억새꽃 같은 간이역이 있다.

계절마다 쓸쓸한 꽃들과 벤치를 내려놓고

가끔 두 칸 열차 가득

조개껍질이 되어버린 몸들을 싣고 떠나는 역.

여기에는 혼자 뒹굴기에 좋은 모래사장이 있고,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과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외로운 방들 위에 영롱한 불빛을 다는

아름다운 천정도 볼 수 있다.

 

강릉에서 20, 7번국도를 따라가면

바닷바람에 철로쪽으로 휘어진 소나무 한 그루와

푸른 깃발로 열차를 세우는 驛舍,

같은 그녀를 만날 수 있다.

 

* 필자는 정동진역 풍경을 그리는데 모두 정동진역 근처에 있는 소재들로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소재들은 실제로 정동진역에 다 있던 것들입니다. 억새꽃, 벤치, 모래사장, 라면집, 소주집, 소나무 등등 그래서 열차가 들어오는 역이니까 겨울이 오는 것도 <겨울이도착>으로 생각했고, 역도 <억세꽃 같은 간이역>으로 표현했고, 라면집도 삼양라면을 끓이는 라면집이 아니라 <해안선을 잡아넣고 끓이는 라면집>이고, 소주집도 <파도를 의자에 않혀 놓/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필자가 실제로 라면집을 묘사해야 하겠는데 구불구불한 주변 소재를 찾으니까 산 능선, 도로, 해안선 등이 보이더라구. 그런데 이중에서 가장 주변 소재에 어울리는 게 바로 해안선이었어요. 그래서 이걸 차용한 겁니다.

또한 마주보고 술잔을 나누는 소주집도 묘사해야겠는데 쓸만한 주변 소재들을 밖을 내다보며 살펴봤더니 배, 수평선, 갈매기, 파도 등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이 소재들이 다 어울리지만 이중에서 파도가 가장 운치 있는 소재로 생각되었어. 그래서 <파도를 의자에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이렇게 주변 소재로 둘러댔더니 읽는 사람마다 다 반하더군요. 만약 이걸 <친구를 앉혀놓고 잔을 주고받기 좋은 소주집이 있다>라고 표현했다고 해 봅시다. 얼마나 평범하고 싱겁겠어요?

 

위의 시는 시의 템포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삽입한 마지막 구절을 제외하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동진역을 벗어나지 않고 철저하게 정동진역 주변 소재로만 생각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래도 신춘문예에까지 당선되고 성공한 시로 여기잖아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25 당신이 모르는,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할 시인 윤동주 이야기 (1) 관리자 04-05 2342
224 요절 시인 기형도(1960~1989) - 금은돌 관리자 03-28 2056
223 '문학'과 '연애' - 김행숙 관리자 03-25 2032
222 시를 잘 쓰는 16가지 방법 - 송수권 (1) 관리자 03-24 2716
221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장옥관 (1) 관리자 03-23 1935
220 우리는 왜 시를 사랑하는가 - 정호승 (2) 관리자 03-22 2084
219 시 창작의 비법은 없다 - 조태일 관리자 03-21 1990
218 상징과 기호학 / 침입과 항쟁 - 변의수 관리자 03-18 1587
217 비평과 해석학적 중독 - 변의수 관리자 03-17 1412
216 내게 시는 너무 써 - 서효인 관리자 03-16 1715
215 詩는 감정의 소산이다 - 장옥관 관리자 03-15 1614
214 시와 공동체 - 나희덕 관리자 03-14 1641
213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장석남 관리자 03-10 1661
212 시인 김수영 - 장석주 관리자 03-09 1652
211 언어를 창조하는 은유 - 강희안 관리자 03-08 1735
210 시의 토대 - 이수명 관리자 03-07 1720
209 詩와 '아바타(Avata)' - 김백겸 관리자 03-04 1618
208 너이면서도 그인 나 - 이은봉 관리자 03-03 1570
207 참된 나 ; 없는 나 - 이은봉 관리자 03-02 1489
206 시 속에서의 나, 가공된 자아 - 이은봉 관리자 02-29 1550
205 언어, 나, 자아발견 - 이은봉 관리자 02-26 1639
204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마종기 관리자 02-25 1622
203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 김명인 (1) 관리자 02-24 1568
202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 천양희 (1) 관리자 02-23 1964
201 침묵하는 연인의 홍조와 열망 - 김백겸 관리자 02-22 1585
200 시, 존재로서의 진리체 - 윤의섭 (1) 관리자 02-19 1684
199 퇴고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 김영남 관리자 02-18 1875
198 시어 선택 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 김영남 관리자 02-17 1900
197 효과적이고 매력적인 시적 표현 얻는 방식 두 가지 - 김영남 관리자 02-16 2099
196 엉뚱하게 제목 붙이는 법 - 김영남 관리자 02-15 1820
195 제목을 효과적으로 잘 붙이는 요령 - 김영남 관리자 02-12 1912
194 시를 쉽게 잘 쓰려면 2중 구조에 눈을 떠라 - 김영남 관리자 02-11 2403
193 시의 길이는 20행 정도가 적당하다 - 김영남 관리자 02-05 2014
192 초보자의 시 습작 방법 - 김영남 관리자 02-04 2233
191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방법 - 김영남 관리자 02-03 1954
190 상상하는 법을 익혀라 - 김영남 관리자 02-02 2269
189 독자 없는 시대에 '불통'이 미덕인가 - 강인한 관리자 02-01 1830
188 가장 오래된 인생과 그 고통…‘공무도하가’에 대한 한 상상-신형철 관리자 01-29 1798
187 새말, 줄임말, 늙은말 - 김병익 관리자 01-28 1853
186 표절에 관하여 - 황현산 관리자 01-27 1832
185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 김 현 관리자 01-26 1818
184 [인문학 속으로] 시인 신경림, 평론가 유종호 관리자 01-21 1876
183 「공무도하記」읽기 : “그대 나를 건너지 마오” - 권영숙 관리자 01-20 1889
182 이 죄악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 황현산 관리자 01-19 1835
181 시와 별 - 서해성 관리자 01-18 2100
180 [에세이 사물 사전] 먹물 - 박후기 관리자 01-15 1902
179 해탈을 위한 해체론 - 강신주 관리자 01-14 2015
178 시의 부활을 위하여 - 이재무 관리자 01-12 2231
177 네루다, 사랑과 혁명의 이중주 - 유성호 관리자 01-11 1905
176 고정희, 그가 남긴 여백 - 박혜란 관리자 01-08 2353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