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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3 14:27
 글쓴이 : 동피랑
조회 : 251  

                                

         

                      바지게

 

   여름을 꾹꾹 눌러 담은 발채가 가풀막 건반을 내려오고 있었다 피아노를 처음 대하는

심정이라면 쿵쾅거리는 가슴 때문에 발을 떼기 힘들 것이다 중심이 리듬에 있다는 말에

아다지오를 살리고 비바체를 죽였다 몇 번 음악이 기우뚱하고 나서야 내림 화음에선 스

타카토 형식이 편하다는 자백을 받았다 오로지 막대기의 전주(前奏)가 박자와 쉼표를

끌었는데 연주가 끝나려면 가장 낮은 옥타브까지 눈알을 굴려야 했다 여름이 쏟아지지 

않도록 나는 가끔 막대기에 삼각형을 받치게 하고 그늘을 찾아 태연자약과 놀았다 비는

스파게티, 소나기라는 면발이 쫄깃쫄깃 흙을 깨울 땐 나도 입하(入夏)에 들었는데 어떤 짐

도 어깨 없이 멜 수 없지만, 등이라는 들녘이 여름을 업고서야 땀의 수고를 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나도 엄마의 들녘에서 포대기를 덮고 자랐다 파종, 파종하다가 씨앗들이 너무

일찍 샛눈을 뜰 것 같아 몇 바지게 마른 닭똥을 부어 안대로 가렸다 어둠과 오래 싸워 본 주

먹이라야 불쑥 내미는 조선 파의 펀치력도 강하다는 걸 배우며 그렇게 나는 바쁘게 한 철을

오르내렸다 산그늘이 길게 머리채를 호수에 담글 무렵 되어서야 여기저기 나무에서 변명들

이 쏟아졌다 이러쿵저러쿵 낙엽이 훈구파니 사림파니 갈피를 못 잡으면 소슬바람이 학파를

갈랐다 어느 길이라도 좋다 아, 바지게란 자신이 지고 가야 할 무게 아니던가 밤마다 나는 한

바지게 칠흑을 지고 집을 나가 아침이면 햇살로 돌아오고


오영록 18-02-13 16:05
 
시제도 좋고 좋네요..// 고민의 흔적이 보여
눈비벼 읽었습니다.
     
동피랑 18-02-14 01:14
 
무언가 잡힐 듯 하면서 안 잡히는 신기루.
다음 퇴고 시 잡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미흡을 매끄럽게 미역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영록 시인님, 즐거운 설날 되세요.
서피랑 18-02-13 16:13
 
지게에서 끄집어내는 사유가 재밌습니다.
피아노, 아다지오, 비바체...에서 훈구파, 사림파까지
과연 동피랑님 이시네요^^

지게에 관해 오래전에 쓴 졸시 한 편 두고 갑니다.

=========================================
지게


해거름 전에 오거라이 어무이 말씀 지게에 태우고
산에 올라
거친 숨소리마다 땀방울 맺히고 허리 잘린 산그늘이
차곡차곡 쌓여갈 쯤
풀벌레소리 산새소리 읍내 학교 간 점순이 얼굴 물어오면
열일곱, 우리 할배
지게 옆에 세워 놓고 살포시 구름 위에 누었겠다
산 하나 흔들흔들 지고 다녔다 하니 못 배워도
힘 하나는 좋았던 거다
우리 할매 이점순여사 치맛자락도 올라타고
어스름에 밤길이 덥석 꼬리를 걸치면 뒤따라오던 달빛도
궁둥이 슬쩍 올렸겠다
겨울 봄 여름 가을 차례로 다녀가고
일곱 남매 눈빛 줄줄이 무겁게 올라탈 적엔
가끔 뒤숭숭한 세상이 두메산골까지 걸어왔겠다
새마을 노랫소리 앉았다 사라지고
셋째 아들 군부대에 울려 퍼진 총성에
폭설이 무릎까지 내렸을 때도
우리 할배 끄덕하지 않았던 것은 워낙 힘이 좋았던 거다
산 하나 들쳐 메면
울분처럼 번지던 노을도 함께 지고
관습처럼 가난한 저녁을 거뜬히 살았던 거다

나무 등에 뿔 달린 저것
어디에 쓰는 거지요?

마당에 놓인 지게에 아이의 궁금증이 올라탄다
아이의 손끝이 어루만지는 가늘고 단단한
당신

그래 뿔이었다
뿔이 힘이었다

<출처-시집 수화기 속의 여자>
동피랑 18-02-14 01:21
 
발악을 하는 것도 악발이라야 하는데 워낙 문학 밑천이 없어 후달리네요.
서피랑님의 지게를 읽고 앞으로 바지게를 어디로 지고 가야 할 지 알겠습니다.
이래서 길라잡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설 연휴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세요.
은영숙 18-02-15 09:16
 
동피랑님
안녕 하십니까? 반갑고 반갑습니다 우리 시인님!
낯 설지 않은 오랜 벗 같은 정겨운 시인님!
늘상 탁월한 시인님의 시를 탐독 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제게 격려와 위로의 마음 보내주신 후의에 감사 드립니다

무술년의 새해 우리의 고유 명절 설날이 왔습니다
가내 다복 하시고 복 주머니 주렁주렁 행복으로 꽃 피우시도록
손모아 기원 합니다
동피랑 시인님!
     
동피랑 18-02-15 19:02
 
인기도 많으신 은영숙님,
열심히 글을 쓰시는 저력 계속 보여주십니다.
세월이 가도 언제나 그렇지만 건강이 최고죠.
설 연휴 풍성하고 즐겁게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안희선 18-02-15 10:15
 
동피랑, 서피랑..

우선은 시가 좋고

하여,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근데 이명윤 시인님은 언제 서피랑으로
닠을 바꾸셨는지..

- 지가 이곳 출입이 뜸하다 보니
동피랑 18-02-15 19:05
 
안희선 시인님 반갑습니다.
서피랑, 자연스러운 필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명윤 시인님이야 두 개의 피랑을 다가져도 손색이 없는 분이죠.
설 연휴 맛있고 즐겁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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