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창작의 향기
  • 우수창작시

     (관리자 전용)

☞ 舊. 우수창작시

 

▷창작시방에 올라온 작품에서 선정되며

 미등단작가의 작품은, 월 우수작 및 연말 시마을문학상 선정대상이 됩니다

 우수 창작시 등록을 원하지 않는 경우 '창작의 향기' 운영자에게 쪽지를 주세요^^

(우수 창작시에 옮겨진 작품도 퇴고 및 수정이 가능합니다)

 
작성일 : 18-03-30 00:01
 글쓴이 : 활연
조회 : 443  

묵적墨跡

    활연




     1

  누천년 전 어느 저물녘 이 계곡을 걸었던 것 같다
  돌부리와 나무뿌리 뒤엉킨
  짐승이 산도(産道)로 쓰던 외길
  한나절 더 걸으면
  외로운 영혼들이 깃들어 사는 유곡(幽谷)에 닿을 것 같다

  죽는 일도 그윽해지는 유명(幽冥),
  어둠 한 올을 풀어 가만히 고스란히 물에 젖는 미라
  한 그루 주검의 겉옷
  그 보풀이 풀어져 날릴지
  능선 하나 넘으면 유명을 달리하는 빛과 어둠
  경계를 자발없이 걷다가
  물소리로 닦아낸 현택(玄宅)에서 반나절

  검은 집은 냇물을 부시고 닦아 속연을 잇고
  다시 반나절이면 이우는 방고래 깊은 집
  바랑 하나 지고 죽으러 오는 자들을 위해
  멱길은 미욱스레 컹컹 짖었을지


      2

  해거름녘 나는 부서진 너럭바위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 같다
  검은 피를 짜내 볕에 널어두려 시퍼런 칼날 깊은 소(沼)엔 몇몇 인종들이 멱을 감고
  돌밭은 목등뼈 하나 어긋난 듯 덜컹덜컹 기운다
  검은 그늘은 흰 뼈가 휘도록 닦는 것 같다
  그리하여 물소리가 종을 달고 뛰어내린 물마루 와류를
  그윽한 은거라 부르면 안 되나

  곡적에 박히는 빛살처럼 결연한 살(煞)의 떨림
  그 하나의 힘
  뿌리째 뽑힌 한 됫박 남짓 어둠
  두어 사발 가웃 처량,
  돌계단 마모된 물빛 지고 고택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어둠과 날 선 빛 부서진 돌쩌귀로 여닫는 나날이 기다란 관으로 뻗은, 컴컴한 내륙도 한 계(界)에서 한 경계를 마름 하는 일

  그리하여 날카로운 모서리가 다 뭉그러지면 물의 부서진 면, 희디흰 허구를 깨문 여울은 투명 속으로 투항하는 것
  유계와 멀어서 살과 뼈로 깊어진 늪을,
  발 없는 발들이 허우적거리는 차디찬 적멸을 망각(芒角)이라 부르면 안 되나

  바람의 습속에 따라 계절풍 하나로 뭉쳤다가 풀어져 한 땀 한 땀 누비질할 유명(幽明)

  한바탕 물거울이 차려놓은 곡(谷)으로 냇물 곡소리 우렁우렁 내리치면 바위가 제 눈알을 파는 겁파를 우리가 부른 노래의 변방이라 부르면 안 되나

  능선 깊은 속내엔 유계(幽界)
  그 밖은 시끄러운 벌레 소리

  나는 너라고 믿는 너럭바위에서 붉은 청춘 한 그루와
  낡은 쪽배 한 척 띄웠던 것 같다

  물계단 거친 항력으로 상류에 닿고 싶었다
  그윽하다는 건 우리가 버린 유골이었고 농염에 날리던 유곡이었는데
  한낮의 기후가 흔들리고 먼 대륙붕을 붉은 사슴이 넘었다
  빗돌을 부딪는 빗방울처럼 차디찬 빠롤과 랑그
  문체란 문의 시체러니, 나는 문으로 문을 밀고 유계에 든 적 있다
  흔한 말들의 계절풍들을 다 쓰기에 이른
  무척 발랄하고 후덥지근한 한때라고 믿는바

  후줄근한 배 한 척
  갯가에서 닳고 있는 한동안 멀거나 혹은 가까운
  푸른 너울처럼 몰려온 가시울타리
  우린 한 그루 침묵을 읽으면서 다친 짐승의 발 한 자루를 덮어주면서
  그윽해질지 모르겠다
  부은 목젖이 까끄라기 넘기듯 너무 먼 물소리
  아득히 먼 등불 흔들리듯이
  아슴아슴 어두워지는 노루잠

  혹은 생시 문득 이윽한


      3

  날숨 고요한 그곳
  백 년 동안 몸살을 앓는 나무와
  모로 누워 부서지는 검은 물소리
  수피 깊은 떨림
  아무런 기척 없이 가깝거나 먼
  얼음 자리끼 머리맡을 한참 도는
  물회오리 같은 외로운 영혼들의 집

  널문을 밀어야 물의 유골들
  없는 외가를 다녀온 것 같다

  가쁜 물에 칼날을 달기 위해 미쁜
  날을 긍휼히 여겨 현택(玄宅) 툇마루에 앉아
  어느 수렁을 향해 곤두박질하는 소리의 기슭으로
  그윽해지기는 먼 생
  나는 물컹한 지도를 지리면서
  무장무장 늙어갈 것 같다
  미안한 기색도 없이 토분하고도 끝끝내 무궁할 것 같다

  미초(薇草) 한 그루 완성하는 것과
  묵적(墨跡)을 도는 사이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04-04 15:51:29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최정신 18-03-30 17:27
 
보일듯 만질듯
화자의 유랑 한 때가 유장한 언어로 지은 성곽입니다.
아주 깊게 각인 된 어느 한 때와
곳이 각인 되어 장문의 절경입니다.
흔한 길몫이어도 또한 누구였어도 담을 수 없는 서술입니다.
참 부러운 서술의 성곽입니다. 감사합니다.
터모일 18-03-31 03:22
 
시에 비친 사유를 다 헤아릴 수 없겠지만
두껍고 무거운 심상은 분위기서부터 이미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새순 봄령 기운들이 만발한 천지에 꽃잎 여물 듯,
꽃물 차오르듯, 늘 건안하고 무탈하셔서
오래도록 시마을에서 뵈었으면 하는 바램 놓고 물러갑니다.
생명의 계절만큼이나 거룩하신 시의 족적들
별처럼 빛나는 듯 한, 아름다운 봄날을
활연 샘의 작품들에서 느낍니다.

많이 보고, 느끼고, 담아 둘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활연 18-03-31 13:01
 
시에서 긴 호흡은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지만
사물은 관념이 없지만
자연은 자연일 뿐이지만 그것을 겉옷처럼 입고
뭔가를 생각할 때가 있지요. 습작은
아마도 낯선 길을 자발없이 걷는 일일 것입니다.
두 분
꽃 피는 봄 환히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4110 그림자에 묻다 (13) 한뉘 07-17 180
4109 백어 활연 07-17 131
4108 몽키스패너 (2) 김하윤 07-16 153
4107 그만두기를 그만두기를 (1) 호남정 07-16 130
4106 구두 한 켤레 (2) 도골 07-16 111
4105 장승백이 /추영탑 (4) 추영탑 07-16 95
4104 칠월의 밤별들 그리고 환유(換喩) (2) 泉水 07-16 111
4103 진다 (1) 손준우 07-16 108
4102 구름魚 (6) 책벌레정민기09 07-15 125
4101 시계는 벽에 걸리고 싶다. (6) 스펙트럼 07-15 273
4100 노년의 훈장 박종영 07-15 106
4099 모기향 (1) 강만호 07-14 134
4098 D:\과제\2012년1학기\영상매체의문학적이해\발표자료\ppt수정중\3333\asdfa… (2) 이주원 07-14 221
4097 불곱창 집에서 소의 불춤을 /추영탑 (5) 추영탑 07-14 92
4096 뱃놈의 개 (2) 소드 07-14 173
4095 경계를 깎다 (9) 도골 07-14 125
4094 와온Ⅱ (5) 활연 07-14 224
4093 비오는 날 오후에 (13) 스펙트럼 07-13 218
4092 경계 (3) 주패 07-13 110
4091 어벤져스 (12) 한뉘 07-13 155
4090 몸의 경계에서 (2) 호남정 07-13 102
4089 성,스럽다 (11) 활연 07-13 258
4088 나뭇잎 제언 (6) 달팽이걸음 07-12 142
4087 하여지향 (16) 활연 07-12 317
4086 고독은 깊어 불화구로 (4) 힐링 07-12 139
4085 가을에 앉아 보세요 (10) 대최국 07-12 145
4084 슬픔의 속도 (4) 호남정 07-12 148
4083 잘 풀리는 집 (13) 도골 07-12 157
4082 담벼락에 묻다 (13) 잡초인 07-11 248
4081 부스 (8) 주패 07-11 123
4080 길 위의 식탁 (12) 스펙트럼 07-11 215
4079 도플갱어 (17) 라라리베 07-11 208
4078 능소화 /추영탑 (14) 추영탑 07-11 138
4077 피켓 (18) 한뉘 07-11 148
4076 바람 따라 (3) 泉水 07-11 102
4075 행복한 키 (6) 목헌 07-11 98
4074 한 마리 방아깨비 (4) 맛살이 07-11 107
4073 (2) 호남정 07-11 75
4072 라디오 숲속 (2) 스펙트럼 06-25 165
4071 활연 (7) 활연 07-10 340
4070 입석 (4) 도골 07-10 124
4069 천일 순례 (2) 대최국 07-10 92
4068 소확행 (9) 한뉘 07-09 223
4067 백합 /추영탑 (2) 추영탑 07-09 108
4066 골방 (4) 최경순s 07-09 212
4065 사이시옷 활연 07-09 138
4064 능소화 아무르박 07-08 129
4063 생 한 가운데 서서 (9) 스펙트럼 07-08 226
4062 돌멩이가 돌멩이에게 달팽이걸음 07-08 115
4061 너를 살았다 활연 07-08 178
4060 거울을 깨니 내가 깨진다 달팽이걸음 07-07 100
4059 쉬어가는 그늘 목조주택 07-07 130
4058 시간을 꿰매는 사람 (1) 도골 07-07 185
4057 알지 못하는 앎* 활연 07-07 161
4056 책상의 배꼽 호남정 07-06 103
4055 장마 (2) 라라리베 07-06 263
4054 주머니 속 만다라 활연 07-06 132
4053 설국열차 (14) 스펙트럼 07-06 293
4052 쥐의 습격 (1) 주패 07-05 120
4051 동화(童話) ㅡ 그 많은 미세먼지를 누가 먹어 치웠나 초심자 07-05 96
4050 글쎄? (2) 이장희 07-05 121
4049 도사와 도사 사이 잡초인 07-05 135
4048 당신의 굽이 말없이 닳았다 (6) 시엘06 07-05 187
4047 잡히지 않는 표정 (2) 정석촌 07-05 163
4046 모퉁이 (3) 활연 07-05 237
4045 꽃 봐라 똥이다 (2) 달팽이걸음 07-04 116
4044 목하 (4) 활연 07-04 210
4043 참나무 찬가 도골 07-04 127
4042 나무 벤치 (13) 스펙트럼 07-03 238
4041 개망초 대최국 07-03 97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