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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20 22:12
 글쓴이 : 동하
조회 : 287  
나비의 꿈
 

 
창 밖으로 천둥이 친다 밤은 깊어간다 창문에 드리운 아기자기한 말 그림자들
 말발굽에 침묵이 다그닥다그닥 소리를 낸다 태풍 전야는 고요하다

아침이 밝았어요 내 나이 일곱 살 나들이 갈 생각에 들떠서 번쩍 일어나요 우리 아버지
내 품에 꽃신을 쥐여 주셨어요 꽃신을 꼭 품에 안고 머리를 땋아요 오보록하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만개했죠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신이 걷는 고샅길을 따라, 노루 길을 따라,
논두렁길도 따라 멀리멀리 나들이를 갈 거예요

착하지 자 이리 온 댕기머리를 풀렴 기모노를 입으렴 넌 비록 일본인은 아니지만 이제 일본
인형이야 등에 태엽을 달아줄게


밤이 짙어진다 끼릭끼릭, 태엽을 감는다 딸깍딸깍, 춤을 춘다 다시 태엽을 감는다 눈시울
피멍이 든다 딸깍딸깍 춤을 춘다 창살 사이로 달빛이 든다 딸깍딸깍 우리 아버지 잘있
니? 삐걱삐걱, 아참, 춤을 춰야지 끼릭끼릭, 피멍이 새까맣다
 

태엽장치가 시간을 뺏는다 태엽장치가 뽑힌 자리는 낙인이 된다 꽃신 잃어버리고 돌아온
 낯선 고향, 사람들이 "더러운 년, 더러운 년"하고 낙인에 돌을 던진다 탈을 쓰고 고개를
 숙인다 태엽장치가 뽑힌 인형에게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난다 창 밖으로 비가 후두득 쏟아진다 하얗게 질린 머리를 조
아리며 사시처럼 떨며 두 손을 싹싹 빈다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말 잘 들을게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주름이 진 볼이 바르르 떨린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몸을 뉘어 잠을 청한다 깨어나서 악몽이다 몸을 웅크린다 꿈에 들
어야만 살 수 있다 영원히 잠이 든다

아침이 밝았어요 오보록하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만개했죠 화창한 아침 나는 족두리를 쓰고
 연지곤지 찍고 나비들 따라 서방님 맞으러 가요 봄이 왔나 봐요

우레 같은 사람들 통곡소리 못 듣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갔나 깨어나지 않는 아침 태풍이 몰
아쳐도 그녀의 날개는 젖지 않는다 이승에서 있었던 다 잊고 편히 떠나길, 기도도 못 듣고
 멀리 떠나지도 못해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박제되고 만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18-07-23 17:03:07 창작의 향기에서 복사 됨]

서피랑 18-07-21 09:58
 
2018년 7월 1일 새벽 4시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이란
이름을 남기고 한 할머님이 고향, 통영에서 영면했습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스믈일곱 분 만 남았습니다.
김복득할머니, 세상에 나왔을 때  집안 '복덩이'라며
 '복득'이란 이름을 가졌다 하지요,

시를 읽으며 참 고맙다, 라는 생각입니다.
모두가 현실을, 아픔을, 외면하는 동안...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모처럼 살아있는 언어를
마주하면서 읽는 내내 가슴이 펄럭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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