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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5 22:23
 글쓴이 : 鵲巢
조회 : 64  

鵲巢日記 171105

 

 

     구름 없고 바람 없고 하늘 높은 해 짱짱

     오전 8시 국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한산한 아침, 영대 서편 거리를 본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가지런하게 뻗어 올랐다. 아직 푸른 잎이 붙었다.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고 몸을 움츠리게 할 정도로 날은 선선하다. 따끈한 국 국물이 입에 착 감기는 아침이다. 여유가 별다른 것이 있을까! 이렇게 앉아 따뜻한 밥 한 그릇과 소고깃국 한 그릇은 풍족한 삶이다.

 

 

     언어와 문화

 

     언어는바로문화 한글힘이라

     언어가사라지면 문화도없다

     문화의힘이크면 말의힘도커

     언어와문화는그 운명이같다

 

     밥 한술 뜨는데 모 시인이 생각난다. 밥알은 볍씨다. 수많은 씨앗을 우리는 먹는다. 벼는 한 해를 보내며 우리 인간을 위해서 또 다음 세대를 위해 씨를 남겼다. 우리는 무엇인가? 한해를 사는데 무엇을 남겼고 다음 세대를 위해 한 것은 무엇인가? 밥 한술 뜨는데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한 해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 스친다.

 

     오전, 본점에 앉아 책을 읽었다. 본점 서재 앞에 앉아 옆 창가를 보면 가을 하늘이 보인다. 오늘처럼 맑고 높은 하늘도 보기는 드물 것이다. 윤내* 선생께서 쓰신 한국 열*사 연구를 읽었다. ‘고구려의 다물이념을 읽었다. 우리 민족이 세운 국가 중 고구려만큼 대외 전쟁을 치른 국가도 없을 것이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추모왕(서기전 37~20) 때부터 민중왕(서기 44~47) 때까지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병합하여 지반을 확립한 시기라면 모본왕(48~52) 때부터 미천왕(300~330) 때까지는 오늘날 요서 지역으로 진출한 시기였다. 이 기간에 고구려는 남쪽의 백제나 신라와는 거의 마찰이 없었다. 백제와는 동족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화평을 유지했고, 신라와는 신하 나라 관계를 맺음으로써 갈등의 요인을 없앴다. 고국원왕(331~370) 때부터 남쪽의 백제와 신라를 침공한 시기였다. 이 기간에는 중국에 있었던 나라들에 자주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관계를 유지했다.

     전쟁의 방향을 전환한 고구려는 광개토왕 때(392~412)에 이르러 서쪽으로는 오늘날 요서 밖의 비려, 북쪽으로는 부여와 숙신, 남쪽으로는 백제와 가야, 왜구 등을 침공하여 신하 나라 관계를 맺었으며, 신라는 이미 전부터 신하 나라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때 고구려는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은 물론 그 바깥까지 호령함으로써 겉으로는 고조선과 같은 천하질서가 회복되었다.

     장수왕 때(413~491) 고구려는 명실상부한 천하질서를 이루기 위해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을 직접지배 영역으로 만들 필요를 느끼고 백제와 신라를 병합하기 위한 전쟁에 주력한다. 이때 고구려는 중국에 사신을 자주 파견했다. 그러나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병합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국에 수. 당이라는 거대한 통일제국이 출현하여 이들과 마찰을 빚음으로써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고구려는 대외 전쟁과 외교를 동시에 펼쳤다. 이는 한반도와 만주를 재통합하여 고조선과 같은 강역을 재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다물이라 했다. 다시 말하면 고토회복이다. 지금 말로 바꾸면 아마 통일이겠다. 고구려가 고조선의 천하질서를 재건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들이 고조선의 계승자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영토만의 얘기가 아니라 통치질서와 사상의 재건까지를 의미한다.

 

 

     B-BLOCK

 

     죽은것은편하다 볼수없으니

     아예느낌도없다 그러나삶은

     생산과소비라서 좇고좇기는

     죽음보다견디기 더힘드는일

 

     살아열심히좇자 군사열하듯

     내몸을추스르며 달려나가자

     살아느끼는이일 충분히느껴

     그릇에담아후회 없도록하자

 

 

     오후 2, 교육 상담했다. 임당에서 부동산 집 경영한다. 부부가 함께 왔는데 아내는 부동산 가게를 운영하며 남편은 작년까지만 해도 회사에 다녔다. 기계를 다루었다. 허리가 좋지 않아 퇴직을 감행했다. 그러고 1년 지났다. 남편은 다소 내성적이며 말씀은 여리고 힘은 없어 보였지만 깔끔하고 미남이었다. 아내는 다소 성격이 급하고 외향적이며 긍정적이라 서슴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나이가 아내는 나와 동갑이고 남편은 한 해 아래였다. 커피 배우려고 대구에 모 업체까지 알아보았다고 한다. 우리 커피 교육을 친절히 안내했다. 본 교육도 있지만, 일단 토요커피 문화 강좌를 들어보고 정식으로 밟는 것도 괜찮겠다. 지금 경기가 꽤 좋지 않아 많은 것을 생각한다. 부동산 집도 요 근래는 삼 개월 하다가 문 닫고 간 업체가 꽤 많다며 얘기한다. 부동산만 그런 것도 아니다. 커피 집은 더하다. 이런 와중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커피를 팔 수 있는 능력과 영업방법은 충분한 교육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금시 문 열었다가 운영의 묘미를 모르고 문 닫는 경우가 많아서 하는 말이다. 40대 후반이다. 나의 바른 직업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는 하루였다.

 

     조카 *훈은 나의 책 까치의 하루 鵲巢察記 6’ 모두 읽었다. 읽은 것에 간단한 소감을 들었다. 시와 책과 음악과 경영에 관한 여러 가지 말을 들었다. 음악을 얘기하다가 다니엘 선생께서 지휘한 베토벤의 운명을 함께 감상하기도 했다.

     조카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고모부 일은 언제 해요?’, ‘하루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다. 다음은 일이고

 

     오후 4, *현 선생의 한국 열국사 연구를 읽기 시작했다. ‘읍루, 동옥저, 동예의 사회를 읽었다. 우선 위치를 보면 읍루가 가장 북쪽으로 오늘날 연해주 지역에 동옥저는 오늘 함경남북도 지역에, 동예는 오늘날 함경남도 남부에서 강원도 지역에 걸쳐 있었다.

     이들은 모두 오늘날 요서 지역에 있었던 고조선의 거수국들이 이동하여 세운 나라들인데 읍루는 숙신이, 동옥저는 옥저가, 동예는 예가 이동하여 건국했다. 동옥저는 북옥저와 남옥저로 나뉘어 있었는데 북옥저는 치구루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동예 지역에는 맥족이 집단을 이루고 거주했으므로 동예는 예맥이라고도 불렸고 맥족의 거주지는 맥국이라고도 불렸다. 이들의 건국 연대에 관해서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데 당시 주변의 정치 상황으로 보아 서기전 1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읍루는 서기 6년 이전에 동부여의 신하 나라가 되었으며 북옥저는 서기전 28년에, 동옥저는 서기 56년에 고구려에 병합되었고 동예는 서기 245년 이전에 멸망했다. 모두 단명한 왕조였다.

     읍루, 동옥저, 동예는 비록 단명하기는 했지만 동부여나 고구려 등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사회로서 왕이 통치했던 독립국이었다. 원래 동옥저는 옥저, 동예는 예로서 그들은 고구려와 더불어 고조선의 거수국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어, 음식, 법령, 풍속이 대체로 고구려와 같았다. 단지, 읍루만 조금 달랐다. 한민족과 체형이나 체질은 비슷했다고 하나 그들의 말이나 문화 내용에는 한민족과 다른 점이 많았다. 이 지역은 고조선 영토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례 풍속은 씨족조직의 기초가 되는 가족의식이 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예에서 같은 성끼리 결혼하지 않았던 것도 씨족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자연산물 가운데 붉은 옥과 질 좋은 담비가죽은 외국에 널리 알려진 특산물이었다. 그들은 농경과 더불어 길쌈을 하여 삼베, 명주, 무명배 등을 생산했다. 목화는 고려 때 문익점이 처음으로 한국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열국시대에 동예에서 이미 무명배가 생산되었으므로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목화씨는 그 이전에 지배하던 것보다 생산량이 많은 신품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읍루와 동예에서는 좋은 활과 화살이 생산되었다. 동예 사람들은 호랑이를 신으로 섬겼다는 사실도 알아두자.

 

     저녁에 어머님께 전화했다. 얼마 전에 고장 났던 보일러는 좀 어떤지 물었다. 어머니는 기사가 다녀갔는데 다녀간 이후 방은 절절 끓는다며 요즘은 더워서 문도 좀 열기도 한다는 말씀이었다. 화목 보일러를 넣었다. 보일러 설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장이 났다. 1주일가량 냉방에서 주무셨다. 어머니는 너무 돈 벌려고 애쓰지 말라 한다. 어쩌면 어머님 말씀이 옳다. 인생 팔순은 코앞이고 삶이 이렇게 빨리 왔을 줄은 누가 알았을까! 마음 편히 살아라 한다. 고만고만 돌아가면 아주 잘한 것이다.

     어머님과 대화 나누다가 노자 도덕경이 스쳐 지나간다. 천망회회天網恢恢 소이불실疏而不失이라 했다. 하늘의 도는 넓고 넓어서 드문 듯해도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임당을 산책하며 밤하늘을 보았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도 밝혀 두었듯이 이 지구는 외딴 섬 같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에 위치한 이스터 섬 말이다. 모아이 상처럼 먼 우주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감옥이면 감옥 같다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하늘의 도는 넓고 넓어서 드문 듯해도 잃지 않는다는 말, 드물기는커녕 이렇게 완벽한 짜임도 없는 곳이 이 지구다.

     마음 편히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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