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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9 10:23
 글쓴이 : 물방울 유태경
조회 : 1070  

 

교향악단 지휘자

 

유 태 경

 

 살다 보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곤 한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또 다른 아쉬움이 남곤 한다. 남들은 열심히 살아왔다고 호기를 부리기도 하지만 정작 만족한 삶을 사는 이는 몇이나 되랴. 인생은 한 번 왔다가 어느 땐가는 떠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철인은 인생은 뜬구름이라 했지 싶다.

 

 장모님은 부자집 고명딸로 태어나 방앗간 집 며느리가 되어 칠 남매를 두었다. 그 중 애지중지하던 맏딸은 좋은 조건 다 마다하고 보잘것없는 나를 선택했다. 하지만 나는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내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어쩌다 아파하는 아내의 등에 파스를 붙여주다 보면 장모님이 불현듯 떠오른다. 세월이 약이라 했던가. 나이 칠십이 가까워 겨우 장모님의 걱정을 한다. 언제 철이 들지 모를 일이다.

 

 오늘도 아내에게 안부전화를 드렸느냐고 물었다. 맏사위인 내가 직접 전화하면 장모님이 얼마나 좋아하실까만, 한국에의 전화는 아내 몫으로 남겨놓는다. 장모님을 생각하는 척하지만 정작 나는 입으로만 생색을 내는가 싶다. 그래도 집사람이 필요한 이곳저곳에 직접 운전을 해 주며 챙겨준다. 대리만족일 것이다.

 

 머슴도 힘들어 보따리를 싼다는 일이 바로 방앗간이다. 그러니 방앗간에서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발동기 소리가 얼마나 요란한지 대화하기조차 어렵다. 무거운 볏가마를 옮기는 것보다 왁스를 잔뜩 발라놓은 넓은 피대가 돌고 있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친다. 발동기가 돌아가며 동트는 새벽을 맞이하고, 자정이 되어서야 발동기가 멈춘다. 그것으로 방앗간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음날 시작할 일을 준비하면 쌀겨와 먼지에 눈알만 번들거리는 얼굴과 몸을 씻는 일로 하루가 끝난다.

 

 남편이 죽으면 땅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했다. 남편은 일찍 북망산천으로 떠났고, 큰아들은 10년 전 장모님의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오십 갓 넘은 막내아들은 지금 간암으로 죽음의 문고리를 잡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장모님께도 말 못하고, 충격받아 어찌 되실까 싶어 경기도 양평 산골짜기에 있는 둘째 아들 별장에 모셨다.

 

 오륙 년 전 봄철, 우리 부부가 별장에 간 일이 있었다. 숲이 우거지고 앞을 내려다보니 온 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팔당호수에는 아지랑이가 아물거렸다. 물오리가 노닐고 뱃놀이하며 낚시하는 강태공들도 보였다. 별장 주변의 새들이 반갑게 우리 부부를 맞아주었다. 장모님은 쉴 줄 모르는 습관 때문인지 거동이 불편한 몸으로도 앞마당에다 고추며 상추와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한 편의 시였다. 평화롭기만 한 전원생활이지 싶다.

 

 장모님에겐 이런 생활이 그리 탐탁하지 않은 눈치였다. 거동이 불편하여 지팡이의 도움으로 아는 길도 자꾸 잃어버리곤 했다. 쓸쓸하기만 한 산속을 좋아하실 리 없어 보였다. 차라리 노인들이 모여 사는 양로원이 나을 성싶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어김없이 전화를 하시곤 했다. 한국과 같은 시간으로 짐작하였는가. 한참 잠이 든 새벽녘에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신새벽 벨소리에 그만 잠자리에서 화들짝 깨어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도 지금은 통상의 일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이 혼자 집에 계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마다 똑같은 첫마디가 시작된다. “얘야. 이곳은 창살 없는 감옥이다. 빨리 나를 시골집에 보내달라.” 어머니의 투정인가. 아마도 평생을 생활했던 방앗간 때문이리라.

그런 날이면 나는 눈을 감고 장모님이 운영했던 방앗간에서의 하루를 떠올리곤 한다. 이른 새벽, 발동기가 돌아가며 관악기의 웅장한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송진을 바른 피대가 연결되면서 현악기, 타악기가 베토벤의 5<운명 교향곡>의 연주를 시작했다.

51악장이다. 돌을 걸러내는 넓은 채에 폭포수처럼 벼가 흘러내리면 쌀이 된다. 쌀 떨어지는 소리는, 어느덧 첼로의 청아한 바이올린 소리로 바뀌어 간다. 호른 독주 뒤에 바이올린의 여성적인 주제가 감미롭게 흐른다. 지휘자는 잠시 쌀가마니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벼 퍼 올리는 소리, 벼 쏟아지는 소리, 벼 껍질 벗기는 소리가 발동기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와 먼지가 함께 어울려 하늘에 은하수가 되어 교향곡은 절정을 이룬다. 도정된 쌀이 가마니 속으로 쏟아지면서 제1악장이 끝나고 다음 장으로 연결된다. 지휘자인 장모님은 단원 중 누구 하나라도 실수하면 즉석에서 바로 잡아주곤 했다.

 

 장모님과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가. 오는 길은 순서가 있지만 가는 길은 순서가 없다던가. 장모님이 먼저 장인어른을 찾아 나선다고 하지만 누가 장담할 것인가. 나의 순번이 장모님보다 먼저 될지 누가 알랴. 하지만 장모님의 앞자리에 내가 먼저 서고 싶지는 않다.

 새벽녘, 전화벨이 울린다. “얘야, 시골집에 보내줘.”

서울에 돈 많은 딸도 싫고, 아들 별장도 싫다고 장모님은 고개를 내저으신다. 오직 평생 교향악단을 지휘하던 시골 연주장에 가기를 원하시는가!

나 또한 이제라도 교향악단 지휘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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