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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3 15:37
 글쓴이 : 길벗514
조회 : 71  

그 형은 결국 그 약을 마셔버렸다.

그러나 사실 한 모금도 목을 넘기지는 못했다.

입 안이 타는 듯한 통증때문에 바로 뱉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 여름날부터 늦은 가을까지 방에서 누워있기는 했지만

다행이 그 형은 목숨을 건졌다, 고 생각했었는데...

몇 년후 걸린 암으로 결국 그 형은 사십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약은 그 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고향 마을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있었다.

남태평양 바닷물처럼 진한 비취빛을 띤,

그래서 오히려 더 섬뜩하고 이름조차 뭔가 불길한 느낌을 주던,

그 농약은 '그라목손'이었다.

 

그 때가 1980년 대 초반이었다.

해마다 봄이면 찾아와 추녀 밑에 둥지를 틀던 제비들이 보이지 않았다.

가섶길에 자주 출몰하던 율매기도 보이지 않았다.

뱀을 팔아서 딱지를 사고 하드도 사먹던 아이들은 경제적 타격도 입었다.

봇도랑에 미꾸라지도 보이지 않고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가도 메뚜기 한 마리 뛰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와 제초제와 화학비료가

우리나라 삼천리 방방골골까지 찾아왔다.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쓸수록 생산량도 눈부시게 늘어났다.

다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생산량이 아무리 늘어나도

사람들이 농협에 갚을 빚은 결코 줄어드는 법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도 우리들은 일단 행복하였다.

새콤 매콤한 농약냄새가 산들바람에 뭍어오고, 

개구리나 지렁이 한마리 나타나지 않는 논둑길을 걸어도,

더 이상 배를 곯지는 않았으니까.

 

1980년대는 대체로 암울했지만,

대중 문화에는 새로운 기운이 움트기도 하였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가수 조용필님의 노래가사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심오하기까지 하였다.

"지구 위의 반은 여자, 지구 위의 반은 남자"이므로

"네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네가 있다"는 노래말도 그러하였다.

어디 남녀만 그러하겠는가?

지구 위의 반은 인류, 지구 위의 반은 자연이기도 한 것이리라.

그래서 자연이 있어야 인류가 있기도 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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