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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8-29 20:12
 글쓴이 : 손계 차영섭
조회 : 280  
   2017년 전반기 유적답사
                                글   차영섭

  1. 개요

     이른 봄날에 유적지 답사는 참으로 흥미를 끄는 일이다. 요즈음은 강수량이 적어서
호수에 저장된 물도 부족하고 하천과 수목들도 목이 타서 갈증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니
나도 목이 탄다. 오늘은 일기예보에 비가 좀 온다고 해서 우산도 준비하고 비를 철철
맞으며 봄 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가슴에서부터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문화원 앞길엔 벌써부터 버스 2대가 기다리고 있고 여느 때처럼 일찍 가보니 나보다
먼저 오신 분들도 많았다. 하늘은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아니하고 문화원 화단엔 철쭉꽃이
피고 있다.

   정시인 오전 8시에 차는 출발하고 우리 일행은 경기 고양지역에 있는 행주산성을
바라보며 이른 길로 달리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인근에 살면서도
행주산성에 가본지도 근 십여 년이 넘었나 보다. 옛 군대 생활하면서 지나치던 상상은
온데간데없고 그 풍경은 도시로 변모하여 보이는 만물이 새 친구로구나!
지워진 추억 속으로 마구 달리며 옛 모습 찾기에 바쁘다. 이런저런 생각에 한 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2. 행주산성  

    행주산성은 사적 제56호.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148-3번지에 위치한다.
한강과 창릉천 일대 평야를 감제 관측하는 군사적 요충지대로서 서울에 이르는 주요 접근로를 통제하고 군사작전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지역이다. 특히 이 산성은 1593년(선조 26년)
권율장군이 2,300여명으로 왜군 3만명을 물리쳐 승리한 대첩으로서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행주대첩으로 유명하다.

   권율 장군 동상은 광화문 앞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을 제막한 김세중 조각가의 작품으로 1986년에 세워졌다. 동상 뒷면에는 전투상황도가 동판으로 설치되어 있다.
권율 장군의 아버지는 선조 영의정이었으며 어머니가 8세 아들에게 비단 옷을 지어 입어라 해도 입지 않고 시장에서 팔아 친구들에게 무명옷 8벌을 나눠주는 우정 깊은 소년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고 벼슬은 46세 때 좀 늦게 시작했다.
의주 목사로 근무하다가 임진왜란 발발로 전라남도 광주 목사로 부임했다.
1,500여 명의 의병을 모집, 훈련 후 한양으로 이동하는 도중, 전주 이치 고개에서 왜군 1만여 명과 싸워 육상전투 최초로 승리의 영광을 차지했다. 권율 장군의 의병군은 화살, 칼,
신기전등으로 싸웠다. 한양으로 온 권율은 행주산성에 진지를 구축했다.
동판에 새겨진 전투상황을 보고 있으니, 424년 전의 행주대첩 전황을 한 눈에 보는 것만 같다. 남편은 의병으로, 부녀자는 지원병으로 도끼와 돌, 창과 자체 제작한 신 무기등으로
신무기로 장비한 왜군을 압도하여 싸웠으니, 이는 우리 군의 정신무장의 덕이 아닌가 싶다. 아낙네들은 긴 치마를 잘라 짧게 덧치마를 만들어 입고는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싸움을 거들었는데, 행주치마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승군들이 자진 참여하여 의병과 협동작전으로 전력을 강화하였다. 승병은 처영 스님이 이끌었으며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대사의 격문(어떤 일을 여러 사람한테 알리어 부추기는 글)을 받고 호남에서 승병을 일으켰다. 권율 장군의 부대를 따라 북쪽으로 가 평양을 비롯한 곳곳에서 일본군과 싸워 공을 세웠고, 행주산성에서 권율 장군과 함께 조선군의 승리를 이끄는 데 큰 몫을 했다. 이는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업신여김을 받던 승려들이 함께하여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더욱 빛이 나는 일이었다. 


0 충장사

      충장사에 이르니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친필로 쓴 충장사란 글씨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떠오르게 한다. 세월은 무상(無常)함을 실감한다.
충장사에 이르는 길가엔 개나리꽃은 지고 새 잎이 나오고 있으며, 백목련은 지고지고 하얗게 그 백의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권율 장군의 영정은 서울대학교 장우성 교수께서 그린 그림으로 살아 계신 듯 젊고도 의젓하시도다! 행주나루터 안마을에 정면3칸, 측면1칸의 규모로 행주기공사가 있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고 1970년 대대적인 행주산성 정화공사 때 이곳에 충장사라 하여 다시 지었다. 매년 3월 14일 행주산성에서는 임진왜란때 왜군을 격파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행주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제례행사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문화 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행주대첩제는 이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제례이다.



0 대첩기념관

  그 다음은 구불구불 올라가니 대첩기념관에 이르다. 임진왜란 행주대첩도를 보며
해설사가 열심히 흥이 나서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해설사가 연구도 많이 하고 소신도 있어
많은 공부가 되었다. 행주산성은 내성과 왜성으로 이중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방어선 벽을 밟으며 걸으니 우리가 싸우는 의병 같다. 기념관 안에는 각종 무기체계가
실물로 그림으로 전시 되어 있다.

   신기전이란 무기는 실로 대단했다. 200발의 화살을 한 번에 쏘는 마치 오늘날 다련장 포 같다.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우리 선조님들의 지혜다. 40연까지 이 진지에 배치하였고
진지엔 구덩이를 파고 목책도 주요 접근로에 설치 운용하였다. 신기전은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주화’를 1448년에 다시 고쳐 만든 로켓 화살이다. 화살에 폭탄을 달아 적 가까이에 가면 터지는 로켓 화살이다. 크기에 따라 대신기전, 중신기전, 소신기전이 있다.


   당시에도 화차가 있었는데 그 지혜가 신비스러울 정도다. 화차는 요즈음으로 말하면 다련장포와 같은데
오직 포탄 대신 화살을 쏜다는 것만 다르다. 신기전기는 1회 발사 무기가 100기인데 사전총통기는 1회 발사무기가 200기이다(1기에 4발씩 총 50기 장착). 화차는 커다란 바퀴가 둘 달린 수레처럼 생겼다. 로켓 모양의 기다란 화살인 신기전을 끼워서 쏘는 ‘신기전기화차’와 작고 짧은 화살이나 탄알을 넣어서 쏘는 ‘총통기화차’가 있다. ‘신기전기화차’는 신기전을 한꺼번에 백 발쯤 쏘는데 날아가는 거리가 200미터가 넘는다. ‘총통기화차’는 화살이나 탄알을 이백 발쯤 쏘는데, 둘 다 100미터가 훨씬 넘게 날아간다.

질러포통은 항아리처럼 생긴 무기인데 화약을 그 안에 넣어 폭발함으로서 위력을 내는 무기다. 지뢰 같기도 하고 수류탄 같기도 하며 월남전에서 경험했던 뷰비츄렙 같은 전술로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 개발했다는 비격진천뢰는  종전의 화기가 적진을 부수는데 효과적이었다면 이 무기는 물체를 폭파시키는 것으로 전투에서 살상력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그 성능은 요즘으로 치자면 수류탄이나 크레모아 같은 대단한 위력을 가진 무기였던 것이다. 쇠공 안에 끝이 뾰족한 마름쇠와 화약을 넣어 만든 시한폭탄이다. 화포에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쏘면 적진으로 빠르게 날아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터진다. 이때 안에 있던 마름쇠가 여기저기로 흩어지면서 그 둘레에 있던 적군들의 몸에 박혀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중완구는 커다란 돌덩이를 쏘는 화포이다. 무게가 20킬로그램쯤 되는 커다란 돌덩이를 600미터 넘게 날릴 수 있고 비격진천뢰도 쏘았다.
승자총통은 쇠막대처럼 생겼으며, 기다란 개머리판 같은 나무를 대고 철환(총알)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쏘았다.
조란환은 새알처럼 생긴 탄알이다. 한번 쏠 때 사백 발쯤 넣었는데, 날아가는 거리가 1킬로미터쯤 되었다고 한다. 이 조란환은 주로 적군을 쓰러뜨리는 데 썼다.



0 대첩비각

   덕양산 정상에 이르니 대첩비각이 세워져 있다.  한강 일대와 서울 일대 그리고 북으로는 일산까지 주요
감제고지로서 전술적으로 보아도 매우 중요한 지형지물이다.  행주대첩에 참여한 군관, 유부녀, 승려 등
모든 의병들을 기리기 위한 충혼비이며 글은 최립 선생님이 지으셨고, 글씨는 한석봉 선생님이 쓰셨다.
오래 되어서 글씨를 못 알아볼 정도로 희석되었으며 복원 작업을 곧 할 것이라 한다.

   대첩비각 바로 옆에는 행주대첩비가 있다. 한문으로 박정희 전대통령께서 쓰셨다.

0  충의정  

   영상교육관이다. 17분 짜리 영상을 보여준다.  

0  소결론

    이상으로 행주산성을 전부 둘러보았다.
  해설사가 열심히 설명을 잘해 주어서 많은 것을 느꼈고 감회가 새로워 큰 보람을 느꼈다.
  왜군 3만 군대에 대항하여 권율 장군은 의병과 부녀자, 승군까지 민관 합동전력을 총 지휘하여 필사즉생의 정
  신으로 싸워서 이겼다.
  왜군은 행주대첩에서 패함으로써 한양에서 철수하여 남쪽지방으로 물러나고 한양을 회복하였다. 

   우리가 오늘 행주대첩을 공부하면서 가슴 뿌듯하고 여기 온 보람을 느낀 것은 교훈으로 삼을 만한 여러 가지를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군관민 혼연 일체가 되어 작은 병력으로 큰 병력을 점,
여러 가지 신무기를 고안하여 실전에 투입했다는 점,
철저한 전략전술과 권율 장군의 탁월한 지휘로 전장을 유리하게 활용했다는 점.
행주산성은 호국정신 함양, 자주국방력 구축, 국민교육 함양의 도장이라는 점,
향토방위 전략의 모델이라는 점 등이다.  


  3. 최영 장군의 묘

     장군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70-2 번지에 있다.  봉분은 단분으로 부인 문화유씨와의 합장묘이며, 화강암 장대석으로 2단의 호석을 두른 전형적인 고려 양식의 방형묘(方形墓)이다.

   육지전, 해전, 홍건적, 왜구, 여진족을 비롯하여 수다한 침략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신 분이다.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 말씀을 잘듣는  효자였다. 11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황금을 돌 같이 알아라고
말씀하셨으며 평생을 청렴하게 사셨다 한다. 이성계에게 참수당할 때 그 부하로 하여금 최영 장군의 창고를 모조리 뒤지도록 하였으나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최영 장군의 참수에 부락민들이 밤낮 사흘을 애도하였다 한다. '나를 아버지 묘 옆에 묻어다오,' 란 최영 장군의 주문에 아버지 최원과 나란히 묘지를 해주었다.  '내가 반듯하다면 내 묘지에 풀이 안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실제 묘에 가보니 간신간신 잔디가 나 있다. 최영 장군의 묘는 덕양구 대자산에 있으며 고양 누리길이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최영장군이 무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오예포에 침입한 왜구의 배 400여 척을 격파한 것을 비롯한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우면서 부터였다.  개경까지 침입한 홍건적을 물리치기도 하고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왜구의 침입을 격퇴하고 반란을 평정하였다.  명이 청령위(鐵嶺衛)를 설치하고 요동에 예속시키려 하자,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개성에서 이성계 일파에게 붙잡혔다. 이후
고양ㆍ마산ㆍ충주 등지에 유배된 뒤,  개성에서 처형되어 이곳에 안장되었다.


        4.  송강 정철

     0 생애
        1536년: 서울 장의동( 현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
         10세 이전 : 큰 누이, 셋째 누이가 왕실과 혼인,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벼슬이
                     내려져 궁중 출입이 자유롭고 쳐러 왕자들과 친교를 쌓았다. 특히
                     훗날 명종인 경원대군과 소꼽 동무로 정분이 두터웠다.
         10세~16세: 인종이 승하하고 명종이 즉위하면서 을사사화가 일어나고 온 집안이
                     참혹한 화를 입었다. 그 후 송강 아버지가 사면되고 지금의 전라도 담양 당지산 기슭으로  가서  우거하였다.
         21세~32세: 율곡 이이와 처음 만났고 26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27세에  별시문과에 장원하였다.
         32세에는 을사사화에 무고하게 연루된 인사들이 석방되고 송강 아버지도 다시 회복되었다.
         45세: 강원도 관찰사를 제수 받고 다시 벼슬길에 나아갔다.
         1954년 사후에 경기도 고양군 새원에 장사했다.

      0 시(詩)

         시비(詩碑)에서,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가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또 다른 시 한 수를 소개 올리면(훈민가 중에서),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꾸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못하면
              말과 소에 깃과 고깔을 씌워 밥 먹이는 것과 뭐가 다르랴.

              
  5. 벽제관지

   조선시대에 중국으로 가는 관서로(의주로, 연행로)에 있던 10여개 역관 가운데 하나로, 사적 144호로 지정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관서이다. 1960년 경까지 객관문이 남아 있었으나 무너지고 현재는 객관의 윤곽과 터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명나라 군을 대파한 장소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양초등학교 길 건녀편에 건물은 불타고 주춪돌만 뼈마냥 앙상하게 흩어져 있다.
육각정자였는데 일본이 훔쳐가서 조선을 정복한 전승기념으로  일본공원에 설치해 놓고 국민에게 교육하고 있다. 고양시에서 정자를 돌려받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통상 정각은 8각형이나 4각형인데 벽제관지만 6각형다. 영조 임금이 여기를 지나 파주쪽으로 가시다가 하도 물이 좋아 발을 담그고 손으로 떠서 마시면서 물맛에
감탄하셨다 한다. 그래서 벽제관지(碧蹄館址)라 명명한다.

  6. 가와지 볍씨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가와지볍씨 박물관에 가보니 생전 처음 본 것이 많아서 관심이 많았다.
노태우 전대통령 때 일산 신도시를 만들며 유물 출토 작업을 했는데 이때 가와지 볍씨외에도 여러가지 유물이 많이 나왔다. 이 유물들을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가와지볍씨는 1991년 6월에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2199-1일대에서 발굴했다.
볍씨 12알을 미국에 위탁, 톰슨연구소로부터 5020년 전 신석기시대 농경문화로 재배한 볍씨란 판정이 나왔다.
당시만해도 벼농사를 지었다는 것은 하나의 혁명이다.
소지경이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떨어진 볍씨인 것이다. 볍씨의 평균길이는 7.03mm, 평균너비는 2.78mm, 장폭비는 2.53mm이다.
(소지경이란 벼와 줄기 부분과 낱알을 연결하는 부분으로서 자연탈립인지, 인위적인 채취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 단서다)

   이 박물관에는 볍씨 외에도 선사시대로부터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석기, 농기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7.  서오릉


    사적 제198호. 5릉은 경릉·창릉·익릉·명릉·홍릉을 일컫는다. 1457년 덕종과 소혜왕후를 경릉에 안장한 이래 1470년 창릉에 예종과 안순왕후, 1681년 익릉에 인경왕후, 1721년 명릉에 숙종과 인현왕후와 인원왕후, 1757년 홍릉에 정성왕후를 안장함으로써 릉의 무리를 이루었다.
이 외에도 순창원에는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를, 수경원에는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를, 대빈묘에는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장씨(장희빈)를 안장했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으로서 죽어서도 짝인데 옆에 홀로 외로이 눈치만 보는 후궁은 세월이 흘러흘러도
신분 때문에 눈물만 자욱하도다.  
릉과 원의 차이는 무인석이 있고 없고 하는 것이라는 것.
죽어서도 신분의 차이가 뚜렷하다는 것.
장희빈의 묘만 홀로 외딴 곳을 바라보고 있으며 정자각도 없으니 산 자와 죽은 자의 차별이 심하구나!
숙종 임금님이 백성을 위하여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밤에 암행을 하시며 백성을 보살펴셨다.
묘석을 운반하며 백성에 피해가 가지 않게 묘도 실물 크기로 줄이고 백성에 눈높이를 맞추셨다.  


  8. 결론

   날씨는 궂었으나 이조 519년의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온 백성이 일심단합한 무장된 정신의 얼을 따라 가노라니 감동이 절로 나네. 지금까지 많은 유적지를 답사하였으나 오늘의 답사가 참 의미 깊었다고 생각 되며 오늘날의 해이된 국민 정신을 개조하기 위하여 본받아야 할 교훈이 지극히 많았다고 생각된다. 특히 행주 산성에서 적은 병력으로  조총으로 무장한 3만 왜군을 격퇴했음은 우리민족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행주마로 돌을 날라다 지원하고 목탁을 놓고 갈쿠리를 들고서 싸움터로 나온 승군들이며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굳은 의지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절로 오늘에 이른게 아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현대전에 못지 않은 당시의 전투진지 구축, 다련장 화포의 전신이었던 신무기의 개발, 각종 부비츄렙의 개발 활용, 혼연일체로 정신무장 등은 본받아 마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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