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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6 09:16
 글쓴이 : 도일운
조회 : 804  





친구


                                                                                                               

“낙이 없어, 사는 것이 허망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던 친구의 목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사는 것이 허망하지 않다고 애써 부인해보지만 마음은 무겁다. 가라앉는 마음처럼 구름도 사람도, 자동차도, 무겁게 안개 속을 흐른다. 

비는 아침부터 질금질금 내리더니 저녁이 되어서도 그칠 줄을 모른다. 멀쩡한 자식을 교통사고로 잃고 휑한 가슴을 의지 처로 삼던 부인마저 지난 달 암으로 떠나보낸 지금의 친구 사정으로 보아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지만 나는 강하게 아니라고 부인했다.

“무슨 소리, 그렇지 않아!” 

단호하게 끊는 내 말에 친구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대신 비 오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의 말을 그토록 강하게 부인했던 것은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허망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젊은 날의 상처가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사는 것이 부질없고 허망하던 때가 있었다. 

한 사람을 무던히도 좋아했지만 잊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슬픔에 두문불출하고 있든 어느 날,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한 얼굴, 백태로 덥힌 혀,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그것을 보고서야 안 되겠다 싶었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허나 이제는 남의 일 같은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날의 감정이 말끔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쩌다 생각이 날 때면 가슴 한편에 남아있던 애수가 살아나 오늘처럼 희미한 물안개로 떠돈다. 하지만 이제는 슬프기보다는 차라리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지 하며 애잔한 행복감마저 느낀다. 흐르는 세월에 빛바래버린 자신의 감정에 실소(失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는 친구의 말처럼 사는 것이 허망할 뿐이었는데도. 

세월은 빠르기도 하다 이리저리 상처를 가리고 덮어가며 사는 세월이 어느새 수십 년이 흘렀으니...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버스정류장. 

우산 속에 몸을 웅크리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길게 늘어진 포장마차에는 몇몇 사람들이 술잔을 놓고 앉아 있다. 꼬치를 굽는 냄새가 허기진 창자를 찾아 나서고 흘러나온 푸른 연기는 갈 곳을 잃고 떠돈다. 힘들게 언덕을 올라 온 버스가 들어오자 사람들은 흐느적대며 오른다. 잠시 미적대던 버스는 툴툴대며 떠나간다. 지금은 저렇게 돌아가지만 저들은 아침이 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올 것이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왜? 왜, 그래야만 하는가? 답을 모르겠다. 그저 생기를 잃고 반복할 뿐이다. 왜 사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저들에게나 나에게나 이미 오래전에 버린 사치스러운 질문이었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또 한바탕 쏟아지려나보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속이라도 시원하게. 


아까부터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에서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성영화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낙이 없어, 사는 것이 허망해……” 하던 친구의 목소리만 귓바퀴를 맴돌았다.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돌아다녀! 친구들도 만나고.” 

부인을 떠나보내고 일체의 외출을 삼가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든 친구에게 내가 쏘아붙이듯이 던진 말이다. 얼마든지 부드러운 말로 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친구의 아픈 마음을 헤아렸어야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후회스럽다. 얼마 전, 그의 부인 영결식장에서 넋을 놓고 영정사진만 바라보고 있든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둘이 있다 홀로 있는 방! 

그것도 오늘 하루가 아니고,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날을…….

그 무거운 적막을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감당해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에게도 그런 용기는 없다. 날마다 어둠속에 홀로 웅크리고 앉아있었을 친구의 모습이 그려진다. 

다시 버스가 왔다. 

몇 사람이 내리더니 친구가 내린다. 시간을 보니 여덟시다. 술이나 한잔 하자고 불러낸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왔다. 그는 알고 있다. 약속한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내가 그를 얼마나 난처하게 만드는 가를,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아무리 늦어도 말없이 기다려줄 것이다. 설사 못 온다 해도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생기 잃은 창백한 얼굴이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다. 나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미소하나 없이 마주치는 시선, 그리고 이내 비켜가는 시선. 

밤보다 깊은 고독의 심연이 서려있을 그의 눈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그 세계가 얼마나 어둡고 음습한가를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무얼 먹지?" 

친구가 오면 따뜻하게 손이라도 잡아주며 맞아주겠다던 조금 전의 생각과는 달리 성의 없이 던지는 말에 

"아무거나……."하고 나오는 맥없는 대답이 땅으로 떨어진다.

흐리는 말끝에 묻어나온 한숨이 가슴을 파고든다. 따듯한 말 한마디를 해주어야 할 텐데 도무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친구를 세워 놓고 잠시 주위를 살폈다. 언덕아래쪽으로 유난히 따뜻한 전등불이 새어 나오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나는 친구를 데리고 그 곳으로 갔다. 비로소 친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미소를 보냈다. 차가운 그의 손이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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