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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7 00:54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67  
추억의 시래기 밥

임두환

꽃샘추위가 어느 정도 물러갈 무렵이면 까칠한 입맛을 돋우는
소박한 음식이 있다.
한 그릇에 담긴 맛과 정감으로 기운을 북돋아주는 게 있다면
시래기 밥이 아닌가 싶다.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추 잎을 말린 것으로서 워낙 쓰임새가 많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처마와 뒤뜰이나 앞마당 그늘진 곳에
시래기를 매달아 놓고서 겨울부터 초봄까지 배를 채워주었다.
하루해 긴긴 봄날 뱃속이 빌 때면 어머님께서는 으레, 시래기 밥이나
시래기죽을 내놓으셨다. 배고팠던 시절, 우리 가족을 켜켜이 지켜주었던
일등공신을 꼽는다면 단연코 시래기음식이리라.

시래기는 시래기나물무침. 시래기 비빔밥. 시래기된장국.
시래기 죽. 시래기 전 등을 만들어 먹던 식재료이다.
물고기와도 잘 어울려 물고기매운탕, 고등어 졸임, 추어탕을 끓일 때면
꼭 들어가야 하는 게 시래기였다.

옛날에는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지만 지금에는 웰빙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시래기에는 비타민 A와 C가 풍부하여 항암작용과 면역력을 강화하고,
칼슘? 철분? 미네랄 등이 들어 있어 골다공증과 빈혈예방에도
그만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시래기는 ‘조물주가 우리에게 내려준 보약’이 아닐까?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죽(粥)을 즐겨 먹었다.
한문으로 죽을 풀어보면 활궁(弓)자 가운데 쌀미(米)자가 들어있다.
깊은 뜻은 모르지만, 내 생각으로는 배가 불러야 활을
당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에는 죽 요리가 수십 종이 있는데 곡물을 기본재료로
여러 가지 식품을 섞어서 죽을 쑨다.
쌀 이외의 곡물로 쑨 죽에는 율무죽 ? 녹두죽 ? 팥죽 ? 콩죽 등이 있고,
곡물에다 채소나 나물을 섞어서 쑨 죽에는 시래기죽? 콩나물죽?
방풍죽? 아욱죽? 호박죽 등이 있다.
동물성 식품을 섞어서 쑨 죽에는 바지락 죽 ? 전복죽 ? 생굴 죽 ?
닭죽 ? 어죽 등이 있고, 호도 죽 ? 대추 죽 ? 잣죽 ? 밤죽 등
견과류를 이용한 죽들도 있다.

살림이 넉넉한 집에서는 보양식이었지만, 우리 집처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에게는 배고픔을 달래주던 구세주였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너무도 가난했다.
산골 다랑이논 몇 마지기와 산비탈 밭뙈기가 전부였다.
가축이라고는 소 한 마리와 돼지, 닭 몇 마리였다.
아버지는 남의 일을 하면서도 담배농사에 전념하셨고, 어머니는
비탈 밭을 일구면서도 누에치기에 몰두하셨다.
자식들 일곱 남매를 키우고 가르치느라 허리 펼 틈도 없었으니
얼마나 고달픈 삶이었을까?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다.
그랬으니 먹고 사는 꼴이 오죽했겠는가? 찬밥 한두 덩이를 시래기나
묵은 김치를 듬뿍 넣고서 끓여 놓은 죽으로 온 가족의 배를 채워야 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이란 없었다.

내 나이, 어느 새 일흔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어렸을 적 먹었던 시래기 밥과 시래기음식이 생각난다.
지금에야 웰빙음식이라고 해서 너나 할 것 없이 찾아 나서지만
그때는 살아남기 위해서 먹어야 했다.
어머니는 시래기를 푹 삶아서 줄기껍질을 벗긴 뒤 쫑쫑 썰어서
들기름 국 간장으로 밑간하여 양념이 배게 두었다가 씻은 쌀 위에
올려 밥을 지었다.
밥이 되는 동안 시래기 밥에 넣을 양념장을 만들어 놓았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시래기 밥 위에 고소한 양념장을 넣고
비벼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또 한 가지 추억이라면 시래기나물무침이다.
시래기를 충분히 삶은 뒤 깨끗한 물에 씻어 놓고 된장, 마늘, 들기름,
멸치가루를 넣어 조물조물 버무려 밑간을 한다.
촉촉하게 양념이 스며들면 대파를 썰어 넣고 들깨가루를
약간 뿌려 놓으면 끝이다.
투박하긴 했지만 어찌나 맛이 있던지 지금도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우리가 먹는 밥에도 계급이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라진다.
부처님이 드시는 밥은 ‘잿밥’, 귀신이 먹는 밥은 ‘메’라고 불렀다.
저승사자의 밥은 ‘사잣밥’, 천지신령이 먹는 것은 ‘노구메’,
임금님이 드시는 밥은 ‘수라’, 양반이나 어른이 먹는 밥은 ‘진지’,
하인이 먹으면 ‘입시’, 죄수들이 먹으면 ‘구메밥’이라고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 했던가?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도 배가 불러야 눈 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요즘 세상은 참으로 좋아졌다.
예전 같으면 옻닭이나 쇠고기, 돼지고기였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시래기비빔밥? 콩나물비빔밥? 꽁보리밥 등,
웰빙음식이 있다고 하면 기필코 찾아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미를 그 누가 말릴 것인가.

이 좋은 시대에 우리 모두 팔팔하게 운동하고, 건강식품도 챙겨먹으며,
아프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디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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