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창작의 향기
  • 소설·수필

☞ 舊. 소설/수필   ♨ 맞춤법검사기

 

 

모든 저작권은 해당작가에게 있습니다.무단인용이나 표절을 금합니다

 
작성일 : 18-01-13 01:12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65  
오래된 기억

윤재석

아주 오래된 일이다.
어느 여름날 아버지의 등에 업혀 모정에 간 기억이 있다.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고 더욱 뚜렷이 살아나는 추억이다.

아버지는 나를 자주 업어 주셨다.
양팔을 쭉 펴고 두 손은 깍지를 낀 자세로 나를 업어 주셨다.
나는 바지를 입지 않은 채 아버지 등에 업힌 걸로 기억되니,
내 나이 네댓 살 정도였으리라.
내 두 발을 아버지의 깍지 낀 손바닥에 얹어 놓고 다리를 쭉 펴고
일어섰으며, 두 팔은 아버지의 목을 부둥켜안았었다.
두 다리를 펴고 일어선 자세이지만 무섭거나 두려움은 느끼지 못했다.
오늘 하루뿐이 아니라 자주 업어 준 때문이리라.

아버지와의 대화는 기억에 없다. 나이가 어려도 아빠라는 호칭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도 나에게 무슨 말을 했을 텐데 기억이 없다.
기억에 남았다면 아버지와의 대화 목록 1호가 되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마음속으로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면, 내가 살아가는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등에 업혀 한약방을 찾아 간 일이 있다.
배꼽 아래에 종기가 나서 치료를 하러 갔었다.
어릴 때 본 아버지의 등은 매우 널찍하고 든든했었다.
종기를 치료하려면 농(고름)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농을 빼내는 방법으로 종기 부위를 대패 침(수술 칼)으로 찢어서
고름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고름을 짜낼 때의 고통이 어찌나 심했는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다.
고름을 제거한 뒤 농을 빨아내는 고약을 발라주어야 한다.
지금은 자주 쓰는 약이 아니지만, 그때는 종기 치료에 유명했었다.
종기 치료의 환부가 얼마나 컸던지 지금도 흉터 자국이 남아 있다.

초등학교 등교 길에 아버지가 업어주신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이니 1952년의 일쯤이다.
그 때는 시냇물을 건너는 마을은 시냇가에 노다리(징검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다.
아버지께서는 여름철에 비가 와서 큰물이 들면 업어서 건네주셨다.
장마가 지거나 물이 많으면 건너다니기에 몹시 불편했었다.
홍수가 나면 아예 건너지 못한 일도 있었다.
교통이 두절되어서 학교에 갈 수 없어 결석을 하게 된다.
초등학교 1학년 뒤로는 아버지께서 업어준 일이 없다.
자기 일은 스스로 판단해서 해결하라는 가르침이었나보다.
겨울이면 징검다리가 얼어서 미끄러워 잘못하면 냇가에 빠질 수 있었다.
혼자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진 일도 있다.
지금은 다리가 놓여있어서 여름철 큰비가 내려도 별 걱정 없이
마을 앞 냇가를 건너다닌다.
이제는 양말을 벗을 일도 빠질 일도 없다.
아버지 등에 업혀 사랑을 받던 어린 내가 이제 손자를 업어주는
노인이 되었다. 세월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손자를 업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네 명의 손녀 손자가 있다.
내 등에 업힌 손자들도 나처럼 나이 들면 할아버지가 업어주었던
추억을 남겨 주고 싶어서다.
우리 집에 오면 가끔 업어 준다.
그래야 저희들도 모이면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손자들도 이제는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아버지 등에서 컸으면서 아들을 업어준 일은 기억에 없다.
우리 아들딸들은 아버지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공부 잘해라’, ‘착하게 커라’라는 주문만 있었으니 재미있는
아버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육아방법도 생활에 따라 변하는가 보다.
요즈음은 어린 아기를 업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모습이 흔치 않다.
외출할 때 보면 유모차에 태우고 다닌다.
어쩌다 아기를 업은 사람을 보면 그 모습이 예쁘다.
내가 아버지의 등에 업혀 아버지의 목을 꽉 잡고
지내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살을 비벼야 사랑이 더욱 커진단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팔을 끼거나 손을 꼭 잡고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살을 맞대야 사랑이 생기는 게 아닐까.
아버지는 교훈으로 자식을 키우고, 어머니는 젖으로 아기를
기름으로써 사랑의 정을 다진다.
아버지 등에 업혀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 어머니의 젖을 먹다가
젖꼭지를 입에 문채 잠든 아기의 모습이 보고 싶다.
부모와 자식간은 혈육의 정과 사랑으로 다져졌기에 하늘처럼 끝이 없고
바다처럼 넓으며 땅처럼 두터우리라.

아버지는 36세에 나를 낳았다.
늦은 연세에 아들을 얻은 셈이다.
귀여운 마음으로 등에 업어 키워 주셨을 것이다.
내 나이 19살, 결혼하기 전에 돌아 가셨다.
자식 사랑에는 인자하고 훈육에는 엄하시던 아버지이셨다.
이제는 생각뿐 만나 뵐 수가 없다.
아버지의 사진은 지금도 내 방에 모셔져 있다.
어머니와 며느리, 손자들과 찍은 사진이 아버지 사진 틀 속에 들어 있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두 손을 깍지 끼고 업어주시던 그 모습이
항상 떠오른다.
저고리만 입고 바지는 입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다시 한 번 더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인사를 드리고 싶다.
아버지께서 웃으시는 얼굴이 보고 싶다.
아버지께서 깍지 낀 손으로 업어주시던 모습은 내가 날숨만을
내 쉴 때까지 기억되려니 싶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897 죽마고우(竹馬故友)/임두환 김용호 01-17 53
896 어머니/송영수 김용호 01-17 44
895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시몬이 01-16 66
894 떠나는 슬픔 혀비맘 01-16 62
893 그래도 독도를 탐내는가/김재환 김용호 01-15 44
892 추억의 흑백사진/임두환 김용호 01-15 44
891 휴매인 음악거리 01-14 48
890 기쁨을 주는 스마트폰/신팔복 김용호 01-14 48
889 나의 개똥철학/윤재석 김용호 01-14 54
888 오래된 기억/윤재석 김용호 01-13 66
887 좋고 타령/박희종 김용호 01-13 48
886 21개비의 도스토예프스키 童心初박찬일 01-12 52
885 된장찌개의 사연 시몬이 01-12 68
884 빗소리. 혜안임세규 01-11 68
883 가는 세월/신팔복 김용호 01-11 79
882 사랑과 희망을 준 두 여자/윤재석 김용호 01-11 59
881 금연. (1) 혜안임세규 01-10 57
880 개화 도일운 01-10 71
879 대나무/김재환 김용호 01-10 57
878 금 수저와 흙 수저 김용호 01-10 56
877 레고 블록방. 혜안임세규 01-09 60
876 금반지/신팔복 김용호 01-09 52
875 두 분의 어머니/윤재석 김용호 01-09 57
874 말 많은 내 인생 베드로(김용환) 01-08 79
873 내 친구 동진이. 혜안임세규 01-08 72
872 공중 철과 도롱태/윤재석 김용호 01-08 60
871 금물결 은물결/김재환 김용호 01-08 63
870 남산. 혜안임세규 01-07 67
869 채송화2/이용미 김용호 01-07 64
868 추억의 시래기 밥/임두환 김용호 01-07 68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