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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27 23:03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105  
어느 고시촌의 할아버지의 겨우살이

홍성일

그 할아버지다.
오른손에 세 개의 초코우유가 담겨진 돌돌 말은
비닐 봉지를 들고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이리 저리 걸어오신다
왼손으로 훌쩍 한번 코를 훔치시고는 들어오는 입구에
걸려 있는 커다란 거울에 힐끗 눈을 돌리신다.
오늘은 연회색 잠바를 입으셨다.
그 속엔 언제나 마찬가지로 하얗다 못해 이제는 아예
누래져 버린 와이셔츠와 점박이 남색 넥타이와
얼마간을 입고 다니셨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 입으신
<마치 옛날 맞춤 정장이 한참 유행했을 때 맞춘 듯한>
빛 바랜 갈색 정장을 입고 계실 것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맞다 그 할아버지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에 하루를 시작하는 이곳 고시촌에서
그 할아버지를 처음 본 건 몇 개월 전
바로 고시 생들을 위해 월식(月食)을 하는 식당 한켠에서였다.
밥그릇 긁는 소리만이 요란한 게 울리는 저녁 시간에 어디선가
가슴을 쥐어짜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리만큼 왜소해 보이는 작은 체구에서 속을 흟어 내는
기침 소리가 밥을 먹고 있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을 모았음엔 당연했다.
그 할아버지 였다.
마치 홑이불만 덮으신 듯 추워 보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할아버지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시키고 남이 있었다.
왜 할아버지는 매일 이곳에서 식사는 하시는 것일까?
칠순이 훨씬 넘어 뵈는 모습이 분명 직장은 다니실 것
같지 않고 근처에 있는 동네 노인정에서 오신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다른 할아버지들은 다 각자 며느리가
해주는 식사를 하러 집에 가시는데 유독 이 할아버지는
집에 가도 반겨 밥상을 차려 줄 며느리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 내막은 그저 나만의 생각 일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할아버지는 점심 저녁을 드실 곳이 없고
또한 좋으나 싫으나 그 빛 바랜 양복을 몇 일이 됐건
입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식사를 하러 자연스레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생길 때쯤
할아버지는 뜨거운 입김으로 훈훈해진 식당 안으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들고 오신 세 개의 초코우유가 들어 있는 비닐 봉지를
식당 한구석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아두고는 줄은 염두 해 두지
않으신 채 근처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학생들이 모두 지나가
줄이 사라질 때쯤을 기다리신다. 혹 누군가가 그렇게 마냥
기다리고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먼저 드시라고
자리를 비껴 줄 양이면 할아버지는 앞니 빠진 모습으로
잔잔한 미소를 보이시며 극구 사양을 하시는 것이다.
" 공부하는 학생들 먼저 먹어야지 나 같은 노인네가 뭘 하는 게
있다고" 언젠가 한 학생이 할아버지에게 빠져 흉해 보이는
앞니에 대해서 여쭈어 본적이 있다.
"아 이빨 틀니 였는데 얼마 전에 빠졌어" 다시 해 넣어야 겠다는
학생의 재차 물음에 텅빈 테이불을 바라보시며
"며느리 가가 해준대" 바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귀찮아서 일까
며느리는 분명 바쁜 것임에 틀림없다.
너무 바쁘기에 할아버지에게 따뜻한 밥을 해 드릴
시간조차 없고 해묵은 양복을 바꾸거나 빨아서
깨끗하게 해 드릴 여유조차 없다.
그리고 가슴을 쥐어 짜내는 할아버지의 괴로운 기침 소리를
들을 여유도 마음도 없다.
요즘 들어 이상하게 할아버지 곁으로 가서 말동무가 되어
식사를 하고 싶어진다.
할아버지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준비하시는 세 개의 초콜렛 우유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고 얼마 전에 장시간의 부재를 끝마치고
제 자리 찾은 틀니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다.
그리고 간혹 그리워 하실런지도 모르는 옛날 호랑이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듣고 싶다.
날씨가 갑지기 추워졌다.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탓으로 오늘은 조금 춥다.
목도리를 하고 나올걸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저녁을 먹으러 김이 올라오는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안경이
희뿌옇게 변해 버린다.
그렇게 잠시 있으려니 멀리서 가슴을 쥐어흔드는
기침 소리가 들린다. 그 할아버지다.
희뿌연 안경 너머로 할아버지를 찾아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안경을 벗으려다 말고 어떤 간절한 바램이 나의 행동을
잠시 멈추게 만든다. '제발' 제발 오늘만큼은 두터운 외투에
두터운 목도리에 항상 입고 계시던 얇은 양복저고리가
아닌 며느리가 새로 사준 두터운 겨울용 양복에 장갑을 끼고
계셨으면' 하는 뿌연 안경 너머로 유난히도 하얗게 보이는
할아버지의 하얀 머리가 더더욱 춥게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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