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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8 20:45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190  
술 이야기 3

- 술의 함정 -

신팔복

술을 마시면 이야기가 많아진다.
말수가 적은 사람도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목청을 키운다.
술자리의 이야기는 좋은 안줏거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술맛도 나고 흥겨워진다.
종교나 정치의 이야기는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강한 주장은 상대방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어 싸움으로 번
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서로 웃고 즐길 수 있는 술꾼의 이야기가 제일 좋다.

술을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다. 술독이 빈 것을 확인해야 그만 마시는 거포다.
시골의 한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단다.
모두 취해서 가버리고 혼자 집으로 오는데 깜깜한 거리에서 홀쭉하고
키가 큰 사람을 만났다. 비켜 가려는데 또 길을 막는다.

“너 뭐야!” 대답이 없었다.

“한판 붙어보자는 거냐?” 그래도 대답이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내 한 방이면 너는 온데간데없다고∼오. 어서 비켜.”
괘씸한 생각이 들어 뺨을 때렸다.
그래도 말없이 서 있었다. 화가 더욱 치밀어 양손으로 마구 쳤다.
얼마 뒤에 손이 얼얼하고 끈적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단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전봇대를 치고 있었단다.

우리 동네에서도 장날 술을 드시고 징검다리를 건너오다 도깨비를 만나
밤새도록 산을 헤매고 두루마기가 찢기고 갓이 달아난 어른이 계셨다.
괜히 시비를 걸기에 싸웠다고 했다.
취중 실수가 부끄러워서인지 며칠 동안은 밖에도 나오지 않으셨다.
도깨비장난 같은 술 취한 이야기다.
누구나 술에 취해도 집까지는 잘 찾아간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고 잘 누워 자다 보니 변소였다는 사람도 있고,
한참을 따뜻하게 자다 남의 집 헛간이었다는 것을 안 사람도 있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저런 잊히지 않는 실화(實話)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진안 용담에서 근무할 때 토요일 오후 친구가 찾아왔다.
반가워서 술집으로 갔다.
여름이라서 방에 들어가 냉(冷) 막걸리를 마셨다.
빈 맥주병에 막걸리와 사이다를 넣어 보관한 술인데 마시다 보니
상당한 양이었다.
한참을 마시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무척 더워 취기가 한꺼번에 올라왔다.
학생의 이목도 있고 비척거리는 선생이 보기에 좋지는 않았을 텐데
집에 들어가 쉬라고 타이르는 이웃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다퉜던 일이 있었다.
술 마신 사람은 배설도 빠르다.
저녁이면 전봇대는 으레 실례의 장소다.
한 다리만 들면 된다는 술꾼들의 이야기가 있다.
술 먹은 양반이기 때문이다. 길에 세워둔 큰 트럭은 은폐의 장소로도 좋다.
형은 앞바퀴에, 동생은 뒷바퀴에 시원하게 실례를 하고 얻은 별명이
‘앞바퀴와 뒷바퀴’였다. 술꾼의 의리가 엿보이지 않는가?

전주 버스정류장 부근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진안으로 오는 직행버스를 탔었다.
도중에 소변이 마려워 어찌할 줄 몰랐다.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빵빵한 배를 부여잡고 진안 삼거리에서 내려
집으로 올 땐 허리도 펴지 못하고 걸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런데 또 어느 겨울이었다.
포장집에서 비둘기탕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다.
눈까지 살살 내리니 분위기가 좋았고, 선배의 이야기에 빠져 많이 마시고
장계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장 아가씨에게 혹시 잠이 들면 진안에서 내려달라 부탁했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차가 움직여 깨었는데 이미 진안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밖은 깜깜하고 눈이 내렸다. 차장에게 어디냐며 내려달라고 했다.
무조건 내리고 보니 어느 곳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마침 제자를 만나 암곡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디를 다녀오느냐는 물음에 그냥 얼버무리고 미끄러운 밤길을 걸었다.
반시간이 넘게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왔다.
귀가 얼 정도였다. 부아도 났지만 내가 자초한 일이라 모든 걸 숨기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술과 생활이야기는 너무도 많다.
젊었을 때부터 마신 술이다.
나이가 드니 양은 조금 줄었지만 내 생활엔 항상 술이 따라다닌다.
술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앞으로는 약주(藥酒)로만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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