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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7 23:00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90  
칠판 앞에서 생긴 일

윤재석

칠판은 전달자 역할을 한다. 칠판을 통해 선생님이나 교수, 명강사들의
학문과 지식을 받아들여 익힌다.
칠판은 초등학교 때부터 사회생활에서까지 항상 옆에서 지식 전달과
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컴퓨터가 생겨나고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칠판의 영역을 대체하려고 한다.
그래도 칠판의 규모나 모양이 다를 뿐 학문과 지식 전달 장소에는 늘 칠판이
자리하고 있다.

칠판을 알기 전에 분판을 알았다. 우리 집에는 이것이 있었다.
가로 40cm 세로 80cm 크기의 나무판자에 아교를 입혀 만들었다.
글씨를 쓰기 위해 만든 학습 도구다.
아버지께서는 여기에 붓으로 숫자를 쓰시고 한자를 쓰셨다.
다 쓰고 나면 분판 닦는 걸레로 깨끗이 지우고 다시 쓰시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분판을 사용했었다.
1∼0을 적어 주시고 한 번 써보라 하면 꼼짝 못하고 썼다.
안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종이에다 써도 잘 안 되는데 미끄러운 분판에 쓰려니 글자는 삐틀삐틀 엉망이었다.
호통을 맞으면 글씨가 더 안 되었다.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그래도 아버지에게서 배운 영향으로 일찍이 1∼0의 수를 익힌 편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칠판이 교실 앞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1학년 때는 칠판을 별로 쓰지 않았다.
저고리 앞에는 명찰과 손수건이 매달려 있었다.
손에는 신주머니가 들려 있을 뿐이었다.
학교와 선생님, 옆 동무 익히기가 먼저였다.
앞의 학생 등에 손을 얹고 뒤따라가면서 선생님 호루라기에 맞추어
놀이가 시작되고, 선생님이 보내주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었다.

6학년이 되니 칠판의 활용도는 말할 수 없이 컸다.
중학교 입학시험 준비가 시작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시간표가 꽉 짜여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올 때 해는 이미 지고 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중학교 입시 준비에 전심전력을 다 하는 때였다.
선생님이 칠판에 가득 써 놓으면 학생은 칠판에 적힌 내용을 처음에서 끝까지
다 외우는 사람만 집으로 보냈다.
외우지 못한 학생은 캄캄해질 무렵에야 집에 보내 주셨다.
이와 같은 교육이 1주일에 2∼3번은 꼭 이루어졌다.
이제야 우리의 앞날을 위해 애쓰신 선생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여학생에게 상처를 주었다.
칠판을 깨끗이 닦고 그 위에 글씨를 쓰고 있는데 여학생이 뛰어갔다.
나는 선생님이 두고 쓰는 매를 들어 그 여학생에게 던졌는데 매가 여학생
뒤통수에 맞아 피가 난 것이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그 자리에 있으면 선생님에게 혼날 것만 같았다.
큰집으로 피했다.
사촌 누님이 오더니 나를 나무랐다.
어쩌다 순자의 머리에서 피를 나게 했느냐고 했다.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가라고 했다.
나는 풀이 죽어 하는 수 없이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을 찾아가 잘못했다며 빌었다.
선생님이 물으셨다.
어쩌다 여학생 머리를 다치게 했느냐고 하셨다.
나는 잘못했다는 말뿐 할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하라며 곧바로 집으로 보내 주셨다.
내일이 소풍 가는 날이니 도시락 준비를 하라며 결석을 하지 말라는
당부까지 하셨다.
다음날 소풍 장소에서 그 여학생을 만났다.
정말 미안했다.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60년 가까이 되는 일이지만 아직도 그 여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다.
그 학생은 전주로 전학을 갔기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언제 만나면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속내를 털어놓고 사과하고 싶은데
만날 수 없어 아쉽다.

“숙자야, 혹시 이 글을 본다면 내 마음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4학년부터 6학년 졸업 때까지 우리를 담당하신 분은 이상만 선생님이셨다.
백운초등학교 26회 동창생이 잊지 못하는 은사님이시다.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하던 때였고, 학교 월사금을 제대로 내지 못하던 시대였다.
난로 나무는 학부모들이 해결하던 때였다.
그래도 감싸주고 가르쳐 주신 은사님이시다.
때로는 회초리를 맞고, 기합으로 운동장 돌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모두 우리를 위해서였지 무슨 미움이 있었겠는가?

“선생님, 선생님이 주신 사랑의 매로 우리는 자랐고, 사회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고희가 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장에 들어오니 이곳에도 칠판이 있었다.
내가 가는 곳은 어디나 칠판이 있었다.
칠판은 의사소통과 전달의 수단이다.
글씨로 써 놓고 말을 하니 신뢰성이 있다.
아침 조회나 지시 사항이 있으면 적어 놓는다.
누구나 오며 가며 보고 이해한다.
말이 없어도 의사소통이 된다.
편리하고 정확한 전달 방법이다.
자연히 칠판을 이용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다.

칠판이 변하고 있다.
넓은 나무판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고 있다.
칠판에 쓰는 분필에서 보드 연필로 바뀌었다.
분필 가루가 날려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보드 연필이 나타났다.
먼지가 나지 않아 좋다. 건강에도 좋고 쓰기도 편리해졌다.

컴퓨터의 등장과 발달이 변화를 몰고 왔다.
변화는 창조를 낳는다 했던가?
칠판도 비켜갈 수 없는가 보다.
컴퓨터에서 파워포인트란 프로그램이 생겼다.
이 프로그램이 칠판을 대신하고 나섰다.
필기할 자료를 이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교육장이나 강의실에서
영상으로 강의한다.
필요한 모든 내용을 입력하면 된다.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영상화면 옆에는 꼭 칠판이 있다.
규모가 작은 이동식 칠판이다.
토론하거나 회의 때는 칠판이 제격인 듯하다.

칠판은 이렇게 우리 옆에 있다.
학교와 직장 등에서 정보와 지식 전달의 중계역을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대해 온 칠판이다.
이제는 변화의 물결 앞에 밀려나는 듯했다.
그래도 아직은 칠판이 친숙하다.
자주 대할 기회가 적어지고 있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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