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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5 08:00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37  
지팡이

임두환

‘지팡이’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게다.
지팡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걸을 때나 서 있을 때 몸을
의지하기 위하여 짚는 막대기’라고 풀이되어 있다.
우리주변에서는 이를 비유하여 ‘민중의 지팡이’, ‘초록의 지팡이’ 등
우리에게 버팀목이 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대부분 연로하신 분들이었지만, 중절모를 쓰고 모양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요즘은 100세시대를 살고 있어서 그런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이 눈에 띄질 않는다.
간혹 유모차를 앞세우거나 환자용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노약자가 있을 뿐이다.

지팡이는 ‘단장(短杖)’과 ‘행장(行杖)’으로 나뉜다.
단장은 짧으며 손잡이가 있는 것이고, 행장은 길면서
손잡이가 없는 것을 말한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명아주지팡이를 만들어 어느 노인정에
기증하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명아주지팡이를 손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불진화대로 선발되어 전주수목원 근처에서
근무할 때였다.
업무특성상 관내를 순찰하는 일이 일상(日常)이어서 하루에
1만보 이상을 걸어야 했다.
2월 중순쯤이었을까?
순찰을 하다 보니 길가 묵정밭이 보였다.
묵정밭에는 대부분 개망초가 자리를 잡는 게 보통인데, 그곳에는
뜻밖에도 내가 찾던 명아주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명아주는 밭이나 빈터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잡풀이다.
환경에 맞으면 키가 1-2m까지 자라는데, 봄에는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하고, 생즙은 일사병과 독충에 물렸을 때 쓰인다.
명아주는 건위, 강장, 해열, 살균해독의 효능이 있어 잎과 줄기를 말려
민간요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을철, 곧고 크게 자란 명아주를 골라 가공하면 명아주지팡이가 된다.
이게 바로 지팡이 중에서도 제일 존경 받는 청려장(靑藜杖)이다.
비록, 나무가 아니라 일년생잡초지만 재질이 가벼우면서도
단단하고 질겨서 지팡이재료로 제격이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했던가? 지팡이를 만들기로 했다.
청려장을 만들려면 가을철에 줄기를 자르지 않고 뿌리 채 뽑아야 한다.
뿌리부위와 지상으로 성장하는 경계점에 울퉁불퉁한 옹이가 있어,
이 부분을 잘 가공해 놓으면 용(龍)의 형상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안타깝게도 겨울이 지나서 봄철이 되고 보니 뿌리가 썩었다.
어쩔 수 없이 톱으로 밑동을 잘라야 했다.
뿌리 채 작품을 만들었더라면 멋진 단장(短杖)이 되었을 텐데,
손잡이 없는 ‘행장(行杖)’으로 태어난 게 아쉬웠다.

지팡이를 다듬다보니 지나온 세월이 뇌리(腦裏)를 스쳤다.
금 수저 복을 타지 못하고 흑 수저로 태어났으니, 이 세상 무엇이
호락호락했겠는가?
나 홀로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산비탈을 걷는 기분이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명아주는 흑 수저일까?
금수저일까?
저 비탈진 언덕배기에 있지 않고, 묵정 밭에서 자랐기에 나와
인연이 된 것이다.
명아주 역시, 험한 세상을 이겨왔는지 뼈아픈 고통을 겪은 듯했다.
마디마디 굳어진 옹이가 나의 생애를 말해주는 듯 애처로워 보였다.

지팡이 하나를 만드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대충 만들려면 반나절, 공(功)을 들이면 이틀 정도면 충분하다.
전문가들이야 많은 절차를 거치겠지만 나는 쉬운 쪽을 택했다.
칼로 옹이를 다듬고 껍질을 벗긴 뒤, 사포(沙布)로 문질러
매끈하게 하고서 니스 칠을 해놓으니 그런 대로 흡족했다.
지팡이의 백미(白眉)는 옹이에 있다. 울퉁불퉁하게 돋은 옹이를
어떻게 다듬느냐가 남모르는 기술이다.

명아주로 만든 청려장은 효자가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청려장은 섬세한 가공과정을 거쳐 만든 것으로, 옛날에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명아주는 중국에서부터 지팡이로 사용되어,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에
들어왔다고 한다.
중국 후한 때 유향이란 선비가 어두운 밤에 흉측스런 노인이 나타나자
명아주지팡이로 땅바닥을 내리쳤는데, 뜻밖에 파란 불빛이 발광하여
사귀를 물리쳤다는 일화(逸話)가 있다.
중국 명(明)나라 때 이시진(李時珍)이 저술한 의서(醫書)〈본초강목>에서도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이 안 걸리고, 중풍이 걸렸던
사람도 쉽게 낫는다.’며 청려장을 강조했다.

조선시대에는 나이 50이 되면 지팡이를 본인이 만들어 짚지 않고
자식들이 만들어 드렸다고 한다.

“나이 50이 되면 자식이 아버지께 바치는 가장(家杖), 60이 되면
고을에서 바치는 향장(鄕杖), 70이 되면 나라에서 바치는
국장(國杖), 80이 되면 임금이 조장(祖杖)을 선사했다.”

국장 이상의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고을에 나타나면 원님이 직접
맞이했다고 하니, 청려장은 어른이 지니는 존경과
권위의 상징일 수 밖에…….

정말, 요긴하게 쓰이는 게 지팡이다. 옛 어른들은 ‘청려장’이라
일컬어, 그 운치(韻致)를 한결 더했다.

“주인이 집에 있을 땐 말없는 문지기요, 문밖에 나서면 그림자처럼
따르니, 한 집 권속(眷屬)만 못할 게 없고, 충직(忠直)하기로야
어느 자식이 이만하랴?”

요즘 들어 세상이 좋아지다 보니, 등산용 플라스틱지팡이가 판을 치고 있다.
그렇지만 누가 무어라 해도 지팡이 중 제일을 꼽는다면, 명아주로 만든 ‘
청려장(靑藜杖)’이 존경받아 마땅하려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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