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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7 00:57
 글쓴이 : 김영채
조회 : 128  

                          운수 좋은 날 / 김영채

 

                                                  

    여름 햇볕이 후덥지근하게 내리쬐는 토요일 오후 친구 여식 예식장에 갔다. 하객들은 많이 붐비지 않았다. 축의금을 접수하고 식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똥채 아니여!”

   뒤를 돌아보니 반갑게 웃는 얼굴. 녀석이었다. 내 이름 보다 김똥채를 더 잘 기억하는 몇 안 되는 깨복쟁이 벗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내 별명 똥채가 어쩐지 반가우면서도 가슴 아픈 기억 속에 머문다.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며 가장 먹고 싶은 개구리참외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돈으로 살수는 없고 손쉽게 얻은 방법은 남의 밭에서 슬그머니 서리를 하면 된다. 어린 시절 서리는 남의 것을 훔쳐 먹기는 해도 장난삼아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 날은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아이가 노랗게 익은 참외 맛을 달콤하게 떠들어댔다. 그런 유혹인지는 몰라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난생처음 참외 서리에 따라 나섰다. 한 낮 여름 햇볕은 뿍뿍 찌는 날씨로 땀방울을 적셨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새가슴마냥 조마조마 하였다. 언덕배기 모퉁이 길로 접어들었다. 키 작은 나무숲길 따라 어느새 참외밭으로 가고 있었다. 우리 다섯 명이 죽은 듯이 조심스럽게 줄지어 가고 있었는데, 웬 쪼그마한 꼬맹이가 우리일행을 힐끔 힐끔 훔쳐보더니 쏜살같이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숨죽여 참외밭으로 조심조심 접근하여 참외를 막 따려는 참이었다. 그 순간 원두막 근처에서 날 벼락같은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가. 참외밭을 지키던 주인에게 들키게 되었다.

    이 작 것들, 어떤 놈들이여!”

    고함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긴 작대기로 땅을 후려치며 쫓아오는 소리에 어린 서리꾼들은 놀라 혼비백산하여 다들 줄행랑을 치며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방향 감각도 모르고 급히 잔솔 숲으로 냅다 뛰다가 그만 웅덩이에 빠졌다. 뭔가 끈적끈적한 죽 같은 것이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아니, 이것이 뭣이여

    부초처럼 떠다니는 부유물이 똥이란 말인가? 내 온몸이 똥물에 빠졌다. 검고 진한 누런 똥구덩이에 갇혀 허우적거렸다. 허우적거릴 때마다 미끈미끈한 구덩이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부유물은 얼굴에도 튀고, 머리에도 튀고 범벅이 되었다. 미끄러지며 걸음을 옮기는데도 힘겨웠다. 질퍽한 물에서 구린내가 진하게 풍겨왔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다가 진녹색으로 보였다. 겨우 풀 섶을 움켜쥐고 나오려는데, 긴 작대기가 내 앞에 뚝 내밀어 왔다. 깜짝 놀랐다.

    ! 이 놈 봐, 후딱 잡어라

   물에 빠진 생쥐마냥 빠져나온 나. 아니 똥물에서 빠져나온 나를 보더니 허연 수염 노인은 어이가 없었는지 밀짚모자를 벗어 부채질하다가 나를 보고 허허 참!’ 쓴 웃음을 지었다.

   어린 작 것들이! 남의 참외 서리는 무슨 서리여, 도작질이지!”

   노인은 한참 혀를 차더니

   그라고 보니께로 너는 부자로 살것다. 똥 벼락을 맞혀도 부자로 사는디, 똥구덩이에 빠졌으니 을마나 부자로 살 것냐. 너는 오늘 똥 맛을 보았으니께로 운수 좋은 날이여.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니단 말여!”

    그러면서 밭에서 개구리참외 두 개를 따서 내게 주고는 후딱 냇가로 가서 멱 감고 집으로 가라고 타일렀다.

   냇가는 잔모래가 유난히 햇빛에 반짝였다. 모래톱 가장자리로 깊게 파인 물결 속으로 온몸을 던졌다. 끈적끈적한 부유물들은 맑은 물결에 씻겨나갔다. 몸을 뒤척이기도 하고, 물속을 뒹굴면서 몸을 박박 씻었다. 맑게 흐르는 물속에 얼굴을 담그는 사이, 흩어지는 모래톱 위로 송사리들이 모여들었다. 내 몸과 옷에서 흘러내린 점액 부유물로 먹이를 섭취하고 있었다.

    또 벌거벗은 몸뚱이에 수백 마리 송사리들이 달려들어 살갗을 쪼아댔다. 아니, 수많은 작은 물고기들이 사방으로 몰려들어 몸에서 부유물로 떨어지는 작은 가루를 쪼아대며 먹고 있다. 먹이를 찾아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이 신기했다. 씻겨가는 배설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맛있는 먹이였다. 운수 없이 웅덩이에 빠져 묻혀온 사람 배설물로 그 수많은 작은 물고기가 먹는다니 생명은 끈질기고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송사리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내 살갗 구석구석을 찾아 쪼듯 입질하는 모습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주는 기쁨을 느꼈다. 나도 한참 허기진 배를 달래듯 개구리참외 두개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맛이 너무 좋았.

    해거름 동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나를 보고 수군수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똥구덩이 사건은 입소문을 타고 구린내 냄새처럼 쉽게 번져나갔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우물가로 끌고 가서는 온몸을 껌정비누로 사정없이 문질러댔다. 살갗이 아팠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꾹꾹 참았다. 말없이 몸을 씻겨주던 어머니는 혼잣말처럼 꾸짖었다.

    아이고메! 니가 서리는 무슨 서리여 이것 아!”

    하시며 꿀밤을 한 대 먹기더니 새 옷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똥채라는 별명은 재미있는 얘깃거리로 살이 붙어 비아냥 같은 웃음과 함께 마을로 학교로 번져갔다.

    조금 전 내 별명을 반갑게 불렀던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나 이 깨복쟁이 서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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