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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12 01:24
 글쓴이 : 김용호
조회 : 79  
무논에서 풀을 뽑으며

신팔복

장화를 신고 고무장갑을 끼었다.
중심을 잃어 넘어질까 봐 조심조심 무논으로 들어섰다.
벼 포기 사이로 발을 디디니 논흙에 발이 깊숙이 빠져들었다.
앞으로 걸어갈 때는 발을 빼내기 힘든 진흙이었다.
이쪽저쪽으로 기웃거리며 풀을 찾았다.
마치 황새가 먹이를 찾아 나서는 모양 같았다.
한 걸음씩 옮겨 갈 때마다 공기 방울이 물 위로 뽀글뽀글 솟아올랐다.
지푸라기가 썩어 생기는 기체였다.
허리를 굽히고 냉큼 풀을 잡아당겼다.
뿌리가 아직 깊이 박히지 않아 쉽게 뽑혀서 다행이었다.
미지근한 무논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하나둘 풀을 뽑아 양손에 쥐었다.
미운 풀들이다.
돌돌 말아 논바닥 진흙 속에 푹 쑤셔 넣고 발로 꽉 밟아 수장을 시켰다.
마음이 개운해졌다. ‘
요것들! 어서 썩어서 거름이나 되어라.
내가 원하는 건 너희 같은 잡풀이 아니라 쌀이라는 걸 알아라.’
홀로 중얼거렸다.
농사는 몸과 뚝심으로 하는 것인데 몇 걸음도 안 가서 허리가 아팠다.
일어서서 허리를 펴고 이웃 논을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허수아비처럼 논 가운데 서 있다.
갑자기 외로움이 바람처럼 스쳤다.
흙탕물이 일어나는 자리는 한 뼘인데 나갈 자리는 바다만큼 넓게 보였다.
다시 허리를 굽혀 풀을 뽑았다.

풀을 뽑는데 공식은 없다.
보이는 대로 옮겨 다니며 긁으면 된다.
익숙한 농부는 자신의 능숙한 손놀림으로 논을 매지만, 융통성 없는
나는 길들지 않은 송아지 같다.
혼자 일하니 망정이지 지청구를 듣기 알맞다.
밟은 자리에서 벼 포기가 익사직전이었다.
미안한 생각이 들어 곧 추켜올렸다.
바람에 살랑거렸다.
고맙다고 활짝 웃어 주는 모습 같았다.

어렵고 힘든 게 농사인데, 애초부터 쉽게 생각한 내 탓이었다.
2년 동안은 그럭저럭 농사를 지어서 논두렁은 만들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
모내기를 하고 물꼬도 높였다.
며칠 뒤, 모를 살피러 갔더니 논물이 없었다.
논두렁에 난 구멍으로 물이 다 빠져나가 버렸다.
위 논에서 물을 대고 논두렁의 구멍을 찾아 막았지만, 논바닥에
뿌리를 내린 풀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자라났다.
벼보다 더 빨리 자라려는 생존경쟁이었다.
제초제를 뿌렸어도 물이 닿지 않는 바닥은 풀이 죽지 않았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격이 됐다.

논 가운데로 갈수록 풀이 많았다.
주로 물달개비, 여뀌바늘, 한련초 등이었다.
가끔 자귀풀과 미국가막사리도 보였다.
올챙이도, 거머리도 없는 논이라 옛날처럼 개구리밥이나 생이가래도
보이지 않았다.
거름기가 많은 곳에는 푸른 해캄류가 퍼지고 있었다.

심심함을 달래주려는지,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장단을 맞추듯이 몇 움큼을 금세 뽑아 흙 속에 처넣었다.
옛날에도 뻐꾸기 노래는 농부의 시름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논을 매고, 어머니는 밭을 맸다. 초여름 뙤약볕 아래서
허리 굽혀 일하시며 새끼를 찾는 뻐꾸기 소리에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노부모 잘 봉양하고 자식도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은
희망을 잃지 않으셨을 것이다.
농사를 잘 지어 풍성한 수확이 되길 바랐을 것이고. 흙과 더불어
살았던 순박한 농부의 행복을 그렸을 성싶기도 하다.

요즘 생활비로 따지면 쌀값은 얼마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농사를 지은 쌀을 자녀들에게 보내주면 그 아이들이
얼마나 고마워할까?
끼니때마다 하얀 쌀밥을 맛있게 먹는 손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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