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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27 08:25
 글쓴이 : 라라리베
조회 : 694  

1.

 

꽃집을 차렸더니

 

   신명

 

 

꽃처럼 살고 싶어 꽃집을 차렸더니

꽃닮은 사람 될까 꽃집을 차렸더니

꽃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만 찾아오네

 

꽃 사는 사람들은 미움도 꽃이 되지

꽃 파는 사람들은 눈물도 꽃이 되지

꽃하고

살다가 보니 나도 꽃이 되었다네

 

 

 

2.

 

그리움이 묻습니다

  

    신명

 

 

정든 산에 오르니 나무가 물어봅니다

 

“왜 이렇게 안 보였어요

  나를 잊은 거예요

 

 걱정하지 마

 사람들도 너처럼 볼 수 없다고 잊지는 않아

 내 마음속엔 항상 네가 있었단다“

 

 

시들은 꽃이 또 침울하게 물어봅니다

 

“난 기다리다 시들어버렸어요

  나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나요

 

 넌 그대로도 예뻐 주름진 얼굴도 감동을 주듯이

 정말 빛나는 것은 시간을 품은 것이야

 너의 아름다운 모습은 항상 기억 속에 있단다“

 

 

꽃잎이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말합니다

 

“나는 이제 형체도 없어요

  비바람에 찢어지고 발에 밟혀서 상처뿐이에요

  아무 쓸모도 없어졌다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네가 발끝에 스치면 나는 그리움에 빠져들지

 

 너의 눈물은 나의 슬픔을 덜어준단다

 너는 마지막 흔적까지 귀한 존재야“

 

 

산길을 돌아 나오자

바람결에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그제야

나는 뺨에 붙은 꽃잎을

살며시 떼어 내었습니다

 

 

3.

 

진달래꽃 (시속의 시)

 

  신명

 

 

진달래가 사랑에 빠졌나 봐

햇살 품에 안겨 바람을

반주 삼아 춤을 추고 있어

 

눈이 멀 것 같아 진홍빛 꽃잎으로

하늘이 물들고 내 가슴을 물들이고

섬섬옥수 여인네 속옷 자락도

 

무수히 흔들리는 꽃잎

산산이 부서지는 억겁의 정한이여!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산이 되고

호수가 되어라 구름처럼 흘러라

하늘로 흐르고 흘러 임 계신 곳까지도

 

나풀거리는 자태 그리도 애달파

걸음걸음 즈려 밟고 가시라고

아름 따다 뿌리었을까

 

한잎 한잎 깔아 놓은 꽃길 따라

내 님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었겠지

 

아! 나 몰래

옷깃 풀어 품으셨을까 사무치는 인연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살아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이리도 고운 세상

살아 있음이 정겨운 세상

 

내가 진달래인지 진달래꽃이 나인지

 

   

     인용시 출처 (김소월 : 진달래꽃)

 

 

 

* 1번 시는 시조의 운율을 따른 시입니다

* 2번 시는 어른을 위한 동시의 의도를 담은 시입니다

* 3번 시는 바람에 흔들리는 진달래꽃을 보고 다른 시를 대입시켜 그려 본 시입니다


라라리베 18-01-27 08:49
 
1, 2, 3번  제가 아주 오래전 습작 초창기 시들입니다

1번은 제가 한참 시조에 빠졌을 때,
2번은 동시처럼 순수하고 투명한 느낌을 살리려 의도적으로 쉽게 서술했구요
3번은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느낌에 맞춰 옛스러운 분위기를 살린 시입니다

위의 시들은 우수창작시에는 못올라갔으나 
영상으로 만들어서 지인들께 보여드린 적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의의로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읽으신 분들은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과 글과 친한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은 시를 가끔 읽기만 하는 일반적인 독자들입니다

제가 드리는 질문의 요지는
나름 잘쓴 시나 인정을 받은 시도 한두편 보여준적이 있는데
다들 어렵다는 반응이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는

제가 시인을 위한 시를 쓰는 것은 아닌가
은유와 적당한 난해를 가미한 것들이 겉 멋에 치중해
사랑도 자꾸 덧칠하면 퇴색되는 것처럼
일반적인 독자들이 공유해야 할 감동을 빼앗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억에 오래 남는 시들은
서술이 가급적 쉬우면서 보편적인 감동을 주는 시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시를 그려내는 관점에서도 봐도
예를 들어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나 신경림 시인의 갈대등
그런 시들이 표현해 내기에는 더 어려운 것 같구요

물론 시대적 흐름이나 개인적인 취향, 특성도 있고
너무 단편적인 느낌이 아닌 읽을수록 깊이있는 사유를 담은 시가
좋은 시라는 것은 알지만 기준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의견을 청취하고 싶습니다
좋은 비평과 고견 부탁드립니다
활연 18-01-27 17:30
 
글에 대한 제1의 독자는 자기 자신이고 이후로 타인이겠지요.
오래전 우리는 주정주의 문학을 환호한 때가 있었지요. 글 또한 감정의 산물이니까,
잘 쓴 글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점차 시가 진화하면서
감정을 부정하고(아마도 화자의 감정이 아니라 독자의 감정을 유발한다는 목적이라면)
화자가 어떤 감각으로 환기하느냐에 주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시에 내재한 감정이 많을수록, 독자는 건조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시가 건조한데 독자가 여러 각도의 감정이 유발된다면, 오히려 창작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나 생각을 하지요.
독자는 참 다양합니다. 시를 쓰고 읽는 이유도 다양할 테고.
그래서 수없이 양산되는 글들이, 천편일률; 고만고만한 정서의 피력이라면
정신을 싸매고 시간을 낭비해서 뭔가 적을 이유의 희소성은 덜 하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자아비판이나 자기반성이 없다면 글은 성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요.
누구나 하는 생각을 뻔하게 드러내는 게, 여러 사람과 공유되는 게 많다, 는 식은
마치 광고 카피 같은 것이거나,
이발소 명작(키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마음을 드러내서 마음을 얻는 것, 혹은 공감이나 감동이나 이런 요소는
예술이 두루, 얻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습작기에는,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겠다는 의욕이 없다면 소위, 쓰는 척
시인인 척, 감정이나 감각을 답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전 좋은 시인들을 다 부정할 수는 없지만,
당대의 시각에서, 당대의 흐름과 절곡을 그 마디들을 관통 혹은 관철하지 않고
막연히 수구적이라면, 그것은 창작물을 내놓는 것보다 필사에 가깝겠지요.
예전에 좋은 시들은 그 이전의 시대에 비춰보면, 낯설고 새로운
감각이었을 것입니다. 수천 년 동안, 시가 무엇인가를 무를 때 뚜렷한 답이 없었습니다.
답이 있었다면, 시 쓰는 일은 한심한 일이 되었겠지요.
창작물은 개인으로부터 비롯하지만, 타자에게로 전이되고 또 감전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화자의 감정이 아니라, 이생의 모서리에서 빚어내는 한 개인의
뛰어난 감각이기를 바라지요. 시는 수없이 자기부정과 반성을 통해서 발을 뻗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를 무력화시키는 첫 번째 무기는,
시는 대충 그런 식이야!, 라는 야합이 아닐까요. 왜 이발소 명작은,
훌륭한 그림인데 몇천 원에 살 수 있고, 원본은 수억의 가치를 가지는지.
아마도 그것은 저승에서 이승으로 올 때 내지르는 첫울음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울면서 와서, 울며 가는 짧은 시간이지만,
창작물들은 그 수명이 참 오래될 수도 있겠지요. 쓴 자가 사라져도 살아서 꿈틀거릴 테니까요.
이를테면, 나는 서정적인 시들이 너무 좋아,
라고 했을 때 상대적으로 은유나 상징이나 온갖 기교가 난무하는 것들은 안 순수해!
라는 인식이라면,
세상엔 하얀 것과 까만 것 정도만 있어도 되겠지요. 불빛도 인공적이고 호사롭고,
그렇다면 예술은 인간의 인식 영역의 확장이라고 봤을 때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만 모아놓은 동물원이거나 예쁜 식물원이 되지는 않을까요.
편협이 예술의 목을 죈다고 생각 합니다.
가령, 나는 자장면이 좋아, 그것은 흰색과 검은색의 단순하고 절묘한 조화야, 그래서
죽도록 자장면만 먹을 거야, 라고 하면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 사람이
특이한 취향을 가졌구나 하고 말 일이니까요. 우리가 단순화하거나 요약하면서, 호오를 가린다면
여타의 노력들은 쉽게, 흑백에 갇히겠지요.
이곳은 비평과 토론을 위한 장이라기에, 과거의 좋은 시들을 찬송하고 모방하는 것도
좋지만, 미래를 향한, 혹은 당대의 뼈와 속살을, 지금까지 성장한 작법으로
혹은 지금을 뛰어넘는 작법으로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복잡하게 이해하는 걸 싫어하지요.
그래서 종국엔 거의 퇴행해서, 유아기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것이 순리이지만,
어쩌면 창작은, 노련함보다는 도발을,
도전을 더 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감정의 과잉공유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에 의해, 의식이나 생각이 더 풍족해지고, 삶의 정곡을 더욱 확연히 드러내고
이런 것들도 기대할 수 있겠지요.
좋은 시인들도, 노회하면 거의 감정을 노출하며 마치 도 닦은 고승처럼 쓰다가,
시대에 밀리곤 하는데, 과거로 돌아가는 지향이 아니라, 후학들이
이맘때의 첨단에 취해, 새로운 눈을 뜨는 창작. 그것은 단 한 편이라도 수명이
백년을 넘겠지요. 문청들이 노회한 논리를 건성으로 듣는 이유는 아마도
감각의 차이일 것입니다. 문청의 미래가 무조건 좋다는 뜻이 아니라, 젊은 시가
밀고 나가는 힘이 시의 토양을 풍부하게 하고, 또 새로운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요. 과거를 돌아보면 다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망각은 생존을 위해서 오래전을
효과적으로 전지하는 능력을 갖췄으니까요. 망각을 추억으로 대체하는 경우는 많지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흔히 쓰이는 말
'그리움'의 실체를 모르겠더군요. 그리움이 느껴지지 않는 그리움, 이 말의 빈도가
많아서도 그럴 테지만, 이맘때는 지난 것의 아픔은 버리고 추억으로 생각하자, 그때는
좋았어, 라는 식의 그리움으로 읽을 때가 많고, 그 절절함이 그냥 단어에 갇혀, 전혀
그립지 않는 상황을 본 탓도 있지만. 그 추상명상의 뜻은 아직도 저에겐
추상적이고 막연한 단어로 느껴지더군요. 아마도 청년들에게 그립다는 말은, 예전의
잘잘못에 대한 뼈아픈 기억들일 것입니다. 아 그때의 시행착오가 참 아프다 식으로...
막연히 아름다워라, 는 좋은 시절에 대한 기억, 다 지났을 때 안도감, 추억,
뭐 이런 기분이겠지만, 단어로 그리움이 생기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늘.
참 멋진 단어지만, 그 단어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립다고 하는 말의 명사형; 그리움.
덧칠, 겉멋, 이 말들은 좀 더 심사숙고해서, 그 진의에 대해 고민하거나 스스로 질문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 식만 좋아! 라면 더 덧붙일 말이 없지만, 보편적인 감동을 자아내는 수단은
지천입니다. 시조차, 그런 상업적이거나, 대량생산의 시 쓰기이거나, 소가 지나간 곳에
남은 배설물이거나,
자기류를 고집하는 게, 쓰는 사람의 최초 혹은 최후의 자존심일 수도 있지만,
다양하고 넓은 시문학의 범주를, 내 식 아니면 다 똥이야는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싸구려 감동은 참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 한 편 읽는 것보다
영화관엘 가면 거의 초속으로 감동이 생기기도 하지요. 시가 도대체 뭔지,
어떤 기능인지, 저도 새삼 생각을 모아봐야겠습니다.
이상은, 이상한 저의 생각들이었습니다.
라라리베 18-01-27 19:30
 
이 글을 읽으며 먼저 드는 생각은
활연님의 깊이를 제가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시에 대한 철학이나 출발점이 활연님 시에 대한 이해를
도와 주는 것 같아 기뻤습니다

우선 겉멋과 덧칠 이런 것은 저에 대한 자아 성찰을 하고 싶어
저 스스로 질책하는 물음입니다

절대 시문학의 다양성을 무시하거나 어떤 카테고리만 옳다고
고집하는 뜻으로 적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힙니다

혹시 초심을 잃는 것은 아닌가
어떤 타성에 빠져드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들 말이죠
왜 시를 쓰고자 하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탑을 쌓아 가고 있는지
그 탑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보여주려 하는지
제 속에서 끝없이 솟아 나오는 갈증을 푸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매너리즘에 빠져 대다수의 사람을 충족시켜야 하는건지
소수이지만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 볼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도발이나 독창적인 실험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왜 라는 질문에 갇혀 있다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분명 제가 예전에 쓴 시보다는 안 보이던 것이 조금은 보이는
지금 저의 모습이 낫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지만
방향은 잘 잡고 있나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저도 활연님의 이상한? 생각에 많은 부분 동감하며

대중성과 독창성, 도발과 도전
리리시즘을 시대 감각에 맞게 추적해 가는 방법
사유의 깊이를 더해 수명은 길지만 노화되지 않은 감동을
끌어내기 위한 고민을 더 해봐야겠습니다 

누구라도 활연님의 시를 접하기 전에
시인님의 글을 먼저 읽는다면 시인님의 시에 담긴 고뇌의 깊이를
헤아리는데 답을 줄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좋아하는 고흐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활연 시인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인님의 답변 읽기 전에 크로키라는 시를 먼저 보았는데
  예전보다 울림이 있었고 무척 좋았습니다
  지금 가서 다시 한번 정독해 보려고 합니다
  조금은 더 내 것으로 가져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라라리베 18-01-28 08:55
 
답글에 제가 빠트린 것이 있네요
그리움에 대한 저의 생각
저는 그리움 보다는 "보고싶다" 라는 말을 훠얼씬
좋아합니다
그립다는 말을 쓸 경우는 그 감정이 피상적이고
이제는 멀리 떠나서 어쩔 수 없는 포기나 회한도 좀 섞여 있고
막연히 떠오르는 추억 같은 것
여러 가지의 감정이 하나로 뭉뚱그러져 물같이
버무러져 있을 때는 그 느낌이 오더라구요
그럴 때 가끔 쓰긴하는데 좀 식상하다 그럴까
모호한 느낌 때문에 많이 꺼려하는 편이었고
또 좋은 선생님의 말씀에 깨달음도 있고 해서
그 이후론 한번도 가까이 한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분위기에 충실 한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딱히 다른 말은 생각이 나질 않네요
아무튼 활연님이 피력하신 생각들이
저와 많이 부합되는게 사실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로 많은 것을 얻어갑니다
미소.. 18-01-29 13:24
 
진달래꽃 (시속의 시)

 신명




진달래가 사랑에 빠졌나 봐
햇살 품에 안겨 바람을
반주 삼아 춤을 추고 있어// 1연 (화자가 마주한 현상, 햇볕아래서 바람에 흔들리는 진달래꽃을 햇살과 사랑에 빠져 춤을 춘다는 첫 연으로서 독자의 시선을 잡기에 성공한 연이라 하겠다 그러나 어디선가 한 번 쯤 접했던 것 같은 감이 아쉽다)

눈이 멀 것 같아 진홍빛 꽃잎으로
하늘이 물들고 내 가슴을 물들이고
섬섬옥수 여인네 속옷 자락도// 2연 (3연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진달래꽃 빛에 취한 상태를 그저 나열하기보다는 진달래 진홍빛에 화자가 먼저 설레도록 빠져든 감정을 김소월 시인님의 시와 일체화시켜서 화자가 그리움을 회상하는 고리로 연을 재구성해보는 것은 어떨까 권해본다)

무수히 흔들리는 꽃잎 →(일상어가 아닌 시적 표현이 요구된다)
산산이 부서지는 억겁의 정한이여!// 3연 (작가가 시 제목처럼 작가의 시 속에 김소월의 시의 부분을 삽입한 것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1연에서는 진달래꽃이 햇살에 안겨 춤을 췄는데, 이별을 유추할 수 있는 문맥이거나 암시하는 장치 없이 비약적으로 건너 뛰어 3연에서 억겁의 정한을 절규하고 있어서 읽기에 따라서는 각 연이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2연에 조금 변화를 준다면 이질적인 3연의 절규가 필연적(타당성)이 되어 두 연의 분열이 해소될 것 같다)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산이 되고
호수가 되어라 구름처럼 흘러라
하늘로 흐르고 흘러 임 계신 곳까지도//4연 (4연은 진달래꽃이 온 세상을 덮기를 바라는 화자의 감정이 절제되지 않은 격한 어조가 되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더는 진달래꽃에 무엇이 되고 흐르라고 명령까지 하고 있는데 화자가 진달래꽃에서 받은 모든 서정과 정서의 강렬함이 어조에서 느껴지는 만큼 새로운 시적 산물로 생산되지 않아서 아쉽다
아마도 화자가 진달래꽃에서 느낀 근원적 감정을 안이 한 이미지 거나 내면에서 우러나지 않은 것을 작위적으로 처리한 것이 아닐까 하는 혐의가 일어난다

나풀거리는 자태 그리도 애달파
걸음걸음 즈려 밟고 가시라고
아름 따다 뿌리었을까// 5연 (1연에서 진달래꽃이 햇살에 안겨서 춤을 췄다고 했으므로 인연인 햇살이 밟고 가도록 핀(뿌려진) 진달래꽃으로 독자에게 읽힌다)

한잎 한잎 깔아 놓은 꽃길 따라
내 님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었겠지// 6연(화자의 인연도 햇살이 밟고 간 그 진달래꽃을 밟고 갔을 것이라는 추측을 화자가 유도하는 대로 독자도 수용한다)

아! 나 몰래
옷깃 풀어 품으셨을까 사무치는 인연// 7연 (내 인연이 다른 인연을 화자 몰래 품었을까 의심하는 의미로서 앞 4연 3행의 '임 계신 곳까지도'와 6연의 2행에서 추측성이지만 '가시었겠지'에서 볼 수 있듯이 인연이 이미 화자를 떠난 상태인데 '나 몰래'라는 표현을 왜 썼을까 의아하게 읽힌다. 이별한 상태인데 굳이 '몰래' 품을 이유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한용운의 임의 침묵 '임은 갔지만은 나는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가 떠올랐다. 그렇다하더라도 맞는 어휘인지는 작가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살아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8연

이리도 고운 세상
살아 있음이 정겨운 세상// 9연 (8연과 9연은 앞 연에서 임과 이별을 했기 때문에 발생됐던 격한 그리움이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린 진달래꽃 찬가로 끝났다. 1연과 2연의 이유이겠다. 그리고 8연의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의 '아이러니'적 표현이 이 시에선 '사실'적인 표현으로서 눈물을 흘릴 필요가 없어져버린 연으로 전환되었다
시적 조건의 애매성으로 읽히기도 한다

화자의 진달래꽃에 대한 감정과 김소월 시인님의 시 진달래에서 선험 된 감정의 충돌이 시적 분열을 일으켰다는 총체적인 평으로 마무리 한다

내가 진달래인지 진달래꽃이 나인지// 10연  (진달래꽃에 동화된 화자의 심상을 드러낸 표현으로서 화자가 어느 정도로 진달래 꽃에 빠져들었는지를 환기시키기에 적합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 라라리베 시인님, 잘 계시지요? ^^
라라리베 시인님의 다른 시들에 비해서 이 시만 구상이 덜 곰삭은 상태로 시상을 전개한 부분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돼서 감평을 시도해 봤습니다. ^^

'시'뿐만 아니라 다른 문학도 그렇겠지만 자기 실력만큼만 볼 수 있다고 하네요
그렇지만 여기 올린 감평 실력이 제 실력의 전부는 아닙니다
부족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감평을 더 잘 할 수 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로 감평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세요 ^^

농담, 죄송합니다 ^^
삼생이 18-02-04 00:46
 
이 위 시인님들 께서 아주 읽기도 싫게 길게 설명을 해 주셨는데

아마 쓰신 분 기분 상하지 않게 배려해 주시는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데요.

이 시대의 문학가들 중에서 자존심 상처받지 않은 사람 있나요? 승승장구 하는 문학가는 없다라고 봅니다.

내정 하게 지적 할 는 해야 그 습작가가 발전 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신명 님 시 3편 잘 읽어 보았습니다.

결론은 흔이 볼 수 있는 아마추어 즉 취미로 자기 위로적인 습작 글로 보입니다.

무엇이 잘못 되었냐고 지적해 주라고 하면 그것은 고문입니다.

평소에 시집은 읽어 보시는 지 묻고 싶습니다.

.
     
활연 18-02-05 17:15
 
표현 장애나 사회성 장애를 앓는 분 같군요.
나는 대단한데 너는 왜 이 지경이냐,
이런 논리라면 그 허언증이 가증스럽기만 하겠지요.
구체적인 언술을 통해 비평이나 토론은 얼마든지 수용하나,
자신의 잣대를 마구 휘두르는 행위 혹은,
자기 감정을 이기지 못해, 앞뒤 없이 뇌까리는 말은
이곳의 취지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도리어, 평소 자신의 말을 돌아보는지 묻고 싶습니다.
참 오래도록, 자기반성이 없는 파문,
가능하다면 이런 허랑한 짓 말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논거를 통해 무엇이 잘못 되었냐,
그런 지적은 가능하겠습니다.
이곳은 아마추어가 맨몸을 드러내고, 비판도 수용하는 곳이지만,
삼생이님도 '자기 위로적인' 노력을 통해
올바르게 의사를 개진하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네요.
이런 투의 댓글을 상습적으로 다는 자이고
개인적으로 참 느자구없는 인간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오랜 세월, 사회적 적응이 어렵더라도, 남을
폄하하는 짓보다,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대고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자숙하는 좀 더 성숙한 모습이길 바랍니다.
닉 세탁해서 여기저기 누비는 짓도 좀 식상하고.
님과 같은 사람 때문에 오래전 홍역을 앓았었는데,
거울 앞에 서서, 깊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있으면 좋을 것인데, 교묘한 말로,
타자를 기만하는 행위는 그쳤으면 좋겠네요.
혹시라도 관심병이거나, 자아 통제가 안 되는 중에도
비평을 하려거든, 적절한 논리와 맥락을 갖추길 바랍니다.
(내가 쓴 댓글 또한 삼생이님이 쓴 어법과 유사한 분위기이므로 나도
반성을 좀 해야겠군요.)
전재형 18-03-29 01:52
 
시인을 위한 시 가 아니라서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막 시 의 세상에 발길을 담은 저로써는 이해하기도 감정이 이입되기까지도
다른 시들에 비해 쉽게 다가 갈 수있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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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풍경1 (3) 형식2 06-17 344
267 짝달리기 (3) 형식2 06-14 259
266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스탠드옷걸이 (2) 형식2 06-13 201
265 광화문에서 (2) 형식2 06-07 214
264 이어폰 속에 뱀이 산다 (5) 형식2 06-04 258
263 할머니 겨드랑이에선 온수 냄새가 난다 (4) 형식2 06-01 204
262 하늘에서 지우개가 떨어진다 (4) 형식2 05-31 237
261 콜라의 내력 형식2 05-24 148
260 손톱깎기 (2) 형식2 05-22 252
259 철새 날갯짓 (1) 先存 권성종 05-18 221
258 미아(퇴고) (2) 형식2 05-11 231
257 방문 (2) 형식2 05-09 263
256 12월 (2) 형식2 05-07 199
255 종이책 (2) 형식2 05-03 202
254 여름 (3) 형식2 05-01 254
253 통지서-한 발 물러서서 볼 것 (4) 형식2 04-23 344
252 저녁에 (1) 일하자 04-21 251
251 시인이 뭣이 길래 (3) modory 04-21 377
250 위로-눈물엔 뿌리가 있다 (3) 형식2 04-19 271
249 반신욕 (3) 형식2 04-17 246
248 반쪽 인간 (2) 형식2 04-16 229
247 (3) 형식2 04-15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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