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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8 12:00
 글쓴이 : old man
조회 : 72  


藝家를 찾아서
조각가 김복진·비평가 김기진 후손들

암흑시대 빛났던 두 형제의 예술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김복진은 현대조각의 개척자, 김기진은 계급문학의 이론가이자 논객
⊙ 김복진, 탁월한 근대미학의 소유자였으나 마흔에 요절 … 아내와 자식은 행방불명
⊙ 김기진, 일제 말 독립자금 운반하다 체포 … 출옥 후 한 달 뒤 광복
⊙ 김기진, 6·25 때 ‘인민재판’으로 구사일생 …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




20세기 초 한국예술사에 김복진(金復鎭·1901~1940) 김기진(金基鎭·1903~1985) 형제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문학, 미술(조각), 연극, 예술비평에서 민족의 예술혼을 드높였다. 형은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동생은 《조선일보》·《매일신보》 사회부장과 《중외일보》 학예부장으로 재직하는 등 언론인 족적도 뚜렷하다.

충북 청원 태생인 정관(井觀) 김복진은 현대조각의 개척자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서양화가가 고희동(高羲東)이라면, 최초의 조각가는 단연 김복진이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본존 불상, 충북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이 그의 솜씨다. 도산 안창호(安昌浩)가 서거하자 제자(이국전·李國銓)로 하여금 도산의 데드마스크를 뜨게 했다가 일경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마흔의 나이에 병사했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두 살 터울인 팔봉(八峰) 김기진은 형과 함께 한국 신극운동의 횃불인 ‘토월회’를 조직하고 한때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학의 이론가이자 논객으로 활약했다. ‘카프(KAPF)’ 동인 박영희와 벌인 ‘내용·형식 논쟁’은 문학비평사에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다. 6·25 당시 북한 인민군 치하 서울에서 ‘인민재판’에 회부돼 가사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동란 중 육군 종군작가가 되어 전선을 누볐으며 이승만의 자유당 말기에는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예술원 회원으로 종신 추대됐으며 1985년 노환으로 사망했다. 《한국일보》는 그의 아호를 딴 ‘팔봉 비평문학상’을 제정, 매년 시상하고 있다.

두 예인(藝人)의 후손을 수소문했으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고향인 충북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에는 친인척이 살고 있지 않았다. 팔봉리 이장은 “안동 김씨 후손이 한 명 살았는데 30년 전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소식이 끊어졌다”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6·25 당시 김복진의 아내와 딸이 행방불명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김복진은 숙명여자고보 교사와 교장을 지낸 허하백(許河伯·1909~?)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맏딸(김산용)은 3살 때 사망했고, 김복진의 사망 직후 태어난 둘째딸(김상미)은 소식이 끊어졌다. 아내 허하백은 좌익계열의 여성 정치인이자 교육자였으나 6·25 때 월북했다는 설, 9·28 수복 당시 좌익활동 혐의로 국군에 총살당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도쿄미술학교 시절, 김복진이 소녀를 모델로 〈조선 소녀의 좌상〉이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1925년 2월경이다.


김기진은 도쿄 유학시절 성악을 공부하던 강명희(姜明希·1983년 작고)와 결혼해 3남1녀를 낳았다. 장남 김인한(金仁漢·1988년 작고)은 《동아일보》 교열부 기자로 재직했으며 1975년 강제 해직된 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일을 맡았고, 《한겨레》 신문 창간에 관여했다고 한다. 아내 공석희(孔錫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었다.

장녀 김복희(金福姬·1928~)는 이화여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줄리어드 음악학교, 컬럼비아대 음대에서 수학했다. 1950년 한국 초연 오페라 〈카르멘〉으로 데뷔했다. 일제 때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애국지사 백남훈(白南薰)의 아들 백선기(白善基·2006년 작고)와 결혼해 1남1녀를 낳았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주 맥클린에 살고 있다.

차남 김승한(金昇漢·1987년 작고)은 6·25 당시 참전한 뒤 육군 장교로 재직하다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다고 전해진다. 아내 김성순(金聖淳)과 사이에 2남1녀를 두었다.

삼남 김용한(金龍漢·1933~)은 미국 오클라호마 주 필립스주립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여론조사기관인 AC닐슨 코리아 사장과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아내 최석희(崔錫姬)와 결혼, 슬하에 1남1녀를 낳았다.

김복진은 미술, 김기진은 문학을 택한 이유


김복진의 1924년작 〈여인입상〉과 1940년작 〈소년〉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사는 김기진의 딸 복희(90)씨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문학과지성사 대표인 인하대 홍정선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홍 교수는 전7권의 《김팔봉문학전집》을 발간했고 ‘팔봉 비평문학상 운영위원회’ 간사를 맡아 후손을 대신해 시상하고 있다.

김 여사와 직접 만날 순 없었지만 다섯 차례 이상 통화하며 집안과 가족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음성은 때로 흔들렸고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

“아버지의 일생은 딸인 제가 보기에도 걷잡을 수 없는 탁류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힘겹게 사신 삶이었어요. 역류가 흘러들면 그것을 막으려 하셨고 때로 그 물에 휩쓸리면서도 누군가를 구해 보려 몸부림치셨어요. 일제 말엽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조국해방의 방법론으로 펴셨던 것, 친일(親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신 것도 이 탁류를 역행하려던 몸부림이셨어요.”

김기진이 일제 강점기 문학비평가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계급문학에 관여했던 일과 1944년 조선문인보국회에서 활동한 전력을 의식한 말이었다.

— 형(김복진)은 미술, 동생(김기진)은 문학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

“1920년 두 분이 도쿄로 떠나셨는데 큰아버지(김복진)는 에노(上野)미술학교에, 아버지는 릿교(立敎)대 영문학부에 입학하셨죠. 그때는 자신의 재간(才幹)을 불사르려는 심정이셨던 것 같아요.

큰아버지는 조소, 아버지가 문학을 택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가 남기신 글이 있어요. 그 글에 이런 표현이 나와요. ‘우리 형제의 전공 분야 선택기준이 무엇이었더냐 하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오래오래 살아남는 길을 택하는 일이다.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 떠난 다음에도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글이요, 그림이요, 조각이요, 건축물이 아닌가’ 하고 쓰셨어요.”

김복진은 1924년 일본 제전(제국미술전람회)에 조소 〈여인입상〉을 출품, 조선인 중 처음으로 입선했다. 당시 국내는 물론 일본 미술계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2년 뒤인 1926년 선전(조선미술전람회)과 제전에 출품, 나란히 특선과 입선을 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근대미학의 소유자였다.

— 김복진은 7년간 옥살이를 했고 불혹의 나이에 요절했는데, 사인은 뭔가요.

“큰아버지가 수감된 기간은 5년8개월입니다. 사상범으로 제가 태어나던 해(1928년) 잡혀가 1934년 출옥하셨어요. 제가 일곱 살 때 어느 추운 겨울, 아버지가 절 서대문형무소로 데리고 가셨어요. 새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만기출소하시던 큰아버지를 상면했어요.

이런 일도 떠오릅니다. 출옥 후 두 분이 잡지 《청년조선》을 창간하셨는데 그해 12월 다시 일경에 체포되셨어요. 두 분을 굴비처럼 포승줄에 묶어 끌고 갈 때 대문 밖에서 할머니께 나란히 큰절을 하셨죠. 일경이 어머니(강명희)를 구둣발로 짓밟기까지 했어요. 다행스럽게 얼마 안 있어 풀려나셨습니다.

큰아버지는 큰딸을 ‘보보(寶寶)’라 부르며 무척 사랑했어요. 안타깝게도 보보가 장티푸스로 3살 때 죽자 (김복진도) 한 달 뒤 돌아가셨어요. 큰아버지도 감염되신 것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면 1934년 출옥 후 돌아가시기까지 조각가로 활동한 기간은 5년에 불과해요. 그러나 유작 30여 점은 6·25 때 화재로 모두 불타 버렸습니다. 안타까워요.”

김복진,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기진의 가족들.
뒷줄이 장남 인한, 앞줄 왼쪽부터 3남 용한, 팔봉 부부, 차남 승한.(1954년경)


• 김복진의 아내 허하백은 어떤 분이셨고 이후 어떻게 됐나요.

“두 분은 소설가 박화성(朴花城)의 소개로 만나 1935년 결혼하셨죠. 큰어머니 허하백은 숙명여고보 교사셨는데 저도 그 학교를 나왔어요. 2학년 때 저를 가르치셨고 나중 교장도 하셨다고 해요.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못 뵀는데 이북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6·25 때 ‘인민재판’을 받았잖아요. 그때 아버지를 수소문하며 사방을 헤맬 때 큰어머니가 ‘여성과학자동맹 위원장’으로 북에서 내려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을지로입구에서 종로로 가다 보면 개성인삼이란 간판을 단 건물 2층에 (큰어머니) 사무실이 있었는데 제가 찾아가 간청을 했어요. 아버지를 찾아 달라고요. 뜻밖에도 큰어머니는 ‘인민의 적이니 찾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서웠어요.

나중 부산으로 피란 갔을 때 여류 문인 조경희(趙慶熙)·노천명(盧天命) 선생을 뵈었더니 큰어머니 말씀을 하시며 이북에 협력한 혐의로 총살당했을 것이라 하셨어요.”

김복희 여사는 1993년 국가보훈처에 큰아버지 김복진을 독립유공자로 신청했다. 당시 《조선총독부통치사》에 실린 김복진의 공판기록과 판결문을 첨부했다. 시인 구상(具常) 선생과 윤석중(尹石重) 선생이 자신의 일처럼 도왔고 직접 탄원서도 제출했다고 한다.

“직계가족이 없으신 큰아버지 … 유작마저 6·25 때 모두 불탔잖아요. 큰아버지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고 싶었고 결국 돌아가신 지 51년 만인 199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으셨어요.”

각종 참고·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5년간의 기다림 끝에 이뤄 냈다. 김 여사가 나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기진은 《중외일보》 학예부장으로 있던 1928년 형 김복진이 검거되자 이듬해 5월 퇴사했다. 생계를 위해 정어리 기름 짜는 공장을 시작했다가 폭삭 망했다. 심지어 금광에 뛰어들었고 명동에서 증권시장을 기웃거렸으며, 배재학당 교장이던 아펜젤러의 도움으로 인쇄소를 인수받아 ‘애지사(愛智社)’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김 여사의 말이다.

“큰아버지가 잡혀가시고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든 집안을 이끄셔야 했어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가 네 분이나 계셨어요. 할아버지가 삼형제 중 막내셨는데, 첫째 둘째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 되신 두 분 할머니를 아버지가 부양하셨어요. 친할아버지와 할머니, 서(庶)할머니까지 책임지셨으니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웠을 겁니다. 저는 어릴 때 우리 집에 할머니가 왜 네 분인지 이해할 수 없었죠. 한 방에 10여 명이 함께 잤던 기억도 잊을 수 없고요. 그 시절 아버지가 친일활동을 하신 게 마음 아프지만, 집안 사정상 어떤 식으로든 직업을 가져야 하셨죠. 요즘 사람들이 그때를 안 살았으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팔봉은 정어리 공장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1930년 1월부터 114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해조음(海潮音)〉이라는 해양소설을 연재했다. 그리고 그해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언론계에 복귀했다. 1934년 김기진은 ‘2차 카프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38년 5월 《매일신보》에 다시 입사해 사회부장으로 재직했다.

해방 직전인 1944년 김기진은 조선문인보국회 상무이사가 되어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와 중국 상하이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한 일도 있다.

김 여사의 말이다.

김기진이 하고 싶었던 출판의 꿈, ‘애지사(愛智社)’


김기진의 딸 김복희 여사. 소프라노 가수로 1950~60년대 프리마돈나로 활약했다.


“남편(백선기)이 예일대 A·폭스 교수가 쓴 《약소국의 위력(威力)》(1974년 刊)이란 책을 번역한 일이 있어요. 그 책을 보면 1940년대 초 이미 일본은 패망하고 있었고 지식인들도 더러 그 사실을 인식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역시 일본이 패망하리라는 사실을 아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춘원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가 일본 돈으로 100만원을 구하셨어요. 요즘 돈으로 몇억 원일 겁니다. 먼저 20만원을 국내로 송금했지만 나머지 돈을 운반하려다 일본 헌병대에 잡히고 마셨어요. 평양으로 압송되셨는데 출옥 후 한 달쯤 지나 해방이 됐어요. 아버지가 평양에서 해방을 맞았다면 남쪽으로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아버지의 운명이었나 봐요.”

광복 후 김기진은 좌우익 양쪽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나 같은 친일을 한 사람은 조용히 자숙하겠다”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김 여사는 기자에게 1976년 4월 18일 자 《독서신문》에 실린 팔봉의 참회록 〈남길 만한 것은 없다〉를 소개해 주었다. 그 참회록의 일부분을 인용해 본다.

〈… 8·15 이후 여운형씨의 ‘건국준비위’에서 뒷방 일을 맡아 일하던 박석윤(朴錫胤)이가 한국전력회사 중역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을 때 어느 날 내가 이 방에 잠깐 들렀더니 총독부 보안과장으로 있던 야기(八木)가 “팔봉씨는 북경에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나오신 일이 이제 와서는 유익하게 됐습니다. 친일하지 않은 증거가 되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해방 후에 내가 일본인한테서 최초로 들은 말이었기 때문에 기억되는 말인데, 물론 그의 말도 일면은 진실은 되지만 나의 의도는 딴 곳에 있을망정 내가 남겨 놓은 친일문자에 대한 수치감은 어찌할 것인가? …〉

팔봉은 광복 후 출판·인쇄업에 뛰어들었다. 애지사의 직원 수가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큰 꿈이 있으셨어요. 러·일·중·독·프·영·이태리어 등 일곱 나라 말로 책을 출간하려고 자모(字母) 인쇄활자를 많이 준비해 놓으셨어요. 좋은 책을 보급해 (국민을) 계몽하고 싶으셨어요. 하지만 해방 직후 시인 김소운(金素雲)씨가 발행한 《만화행진》이라는 주간신문을 외상으로 인쇄하다 큰 손해를 봤어요. 떼를 쓰고 인쇄를 부탁하니 거절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빚을 많이 지셨죠. 종업원들 월급 날이 되면 전전긍긍하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6·25 때 애지사가 화재로 소실됐는데 불탄 자리에 납으로 된 활자가 수북이 쌓였던 장면이 떠올라요. 운이 없었던 겁니다. 아니, 운이 있었어요. 개화기 때 일본에 가서 공부하시고 처음엔 시를 쓰다 소설을 쓰시고 문학평론가로 널리 알려졌으니 운이 좋으셨던 것이죠.”

‘인민재판’ 그 뒷이야기


1950년 7월 2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자행된 인민재판.
양복을 입은 이가 팔봉(八峯) 김기진이다.


팔봉이 6·25 당시 겪었던 ‘인민재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해방 후 팔봉은 5년간 좌우에 가담하지 않아 ‘설마 내게 무슨 위험한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인민군에 붙들려 광장의 군중 속에서 즉결처분을 받았다.

기자는 국회도서관에서 팔봉이 쓴 수필 〈인민재판〉(《세대(世代)》1966년 7월호), 〈나의 인민재판과 허수아비〉(《새길》1963년 6월호)를 읽었다. 부분 인용하면 이렇다.

〈… 판사의 사형선고가 있은 지 약 1분 후에 군중을 향하여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오. 죄인 김팔봉 악질한테 사형을 집행하는 일에 찬성인가? 반대인가? 의사를 발표하시오”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사회자의 말이 떨어진 후 군중들은 아무런 반향을 보이지 않았다. (중략) 사회자의 독촉하는 말이 떨어진 지 약 10초가량 지난 뒤에는 한 놈이 박수를 치니까 그것을 신호로 해서 좌측과 우측과 전면에서 약 오륙십 명의 박수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내 앞에 있던 군중의 십분지 일가량이 사형선고에 찬성을 표시한 것밖에 안 된다. 그랬건만 나는 그 박수소리가 난 지 1분가량 후에 “총탄도 아까우니 때려 죽여라!” 하는 호령소리와 함께 몽둥이로 대가리를 맞아 터져 가지고 피를 분수처럼 쏟으면서 거꾸러졌다.(후략) 〉 (《세대》1966년 7월호, p52~53)

김 여사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6·25 당시 저는 가회동 친구 집에서 지냈어요. 우리 집은 전차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친구 집은 조용했고 피아노가 있었거든요. 7월 1일 밤에 아버지가 잡혀가셨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이튿날부터 아버지를 찾아 다녔어요. 나중 아버지 말씀이, 인민재판을 당한 뒤 눈을 뜨니 어떤 이가 ‘댁에 가시겠습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그때 벽에 걸린 달력에 ‘6’이란 숫자가 걸려 있었다고 해요. 날마다 한 장씩 뜯는 일일(一日)달력이었나 봐요. 하지만 곧 기절하셨고 다시 깼더니 벽에 ‘7’이라고 적힌 숫자가 눈에 들어왔지만 또 혼절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튿날 ‘8’이란 숫자를 보고서야 혼자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애지사가 을지로3가 국도극장 건너편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맨발로 집에 오셨어요.

아버지 말씀이, 인민군과 그 앞잡이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땅에 박고 두 다리를 거꾸로 매단 채 태평로에서 광화문까지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옷은 물론이고 살이 다 해어질 정도로 끌고 다녔고 뒤통수엔 뼈가 보일 정도였어요. 맨발에다, 입속 금니까지 누군가 빼 갔다고 해요.

동생 혈액형이 O형이어서 급히 수혈을 했는데 어떤 분이 페니실린 한 박스를 갖다 줘 살아날 수 있었어요. 더는 집에 모실 수 없어 아버지와 가까우셨던 문학평론가 최재서(崔載瑞) 선생 집(후암동)에 잠시 모셨다가 여운형씨와 가까운 댁(돈암동)에 숨어 계셨어요. 그러다 9·28 수복을 맞았죠. 아버지가 혼절했다가 다시 깨어나는 과정을 반복할 때 누군가 곁에 있었을 텐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하니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어요.”


박정희 대통령과 김기진.


이후 김기진은 대구에서 종군작가로 입대, 1953년까지 주로 ‘전선문학’에 해당하는 글을 썼다. 자유당 말기에는 민권수호투쟁위원회에 참가,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고 1960년 《경향신문》 주필, 61년 펜클럽한국본부 부위원장, 69년 소아마비아동보육협회장, 72년 문인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또 역사소설 《통일천하》(1954년), 《군웅(群雄)》(55년), 《성군(星群)》(64년)을 신문에 장기 연재하면서 필봉을 이어 갔다. 그에게 금성화랑 무공훈장, 국민훈장 동백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생의 후반기 문학활동이 전반기 문학의 순수함과 치열함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김기진 선생의 말년은 어떠셨나요.

“아버지는 수유리 산장에서 사셨는데 ‘인간문제연구소’라는 연구기관을 세우려 하셨어요. 인간이 경애하고, 의를 갖추며 사양하고, 분별할 줄 아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실천궁행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싶으셨어요. 하지만 우리 4남매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고 유업도 잇지 못했어요. 정말이지 가슴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올해 아흔인 김복희 여사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외경과 연민이 섞인 감정이었다.

“아버지는 생전 저를 끔찍이 사랑하고 아껴 주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사랑 덕에 성격이 비교적 솔직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날, 참으로 많은 꿈을 지니고 사셨어요. 어느 만큼이나 이룩하셨는지는 저로선 판단할 수도 없는 일이고 신(神)만이 알 수 있는 결산표일 겁니다.”⊙
   

김복희 여사는 
 
1950~60년대 프리마돈나로 활약 
                               .  
김복희 여사는 이화여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6·25 발발하기 직전인 1950 1 서울 시공관에서 오페라 〈카르멘〉에서 카르멘 역을 맡아 국내 초연하기도 그녀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소프라노 가수로 활동했다.
 
  “
시절, 좋은 저음 목소리를 가진 이가 적고 어딜 가나 죄다 군가만 부르던 시절이었다. 어머니(강명희) 성악을 배우셔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숙명여자고보 시절, 태평양전쟁이 발발해 일본군이 교정에 천막을 치고 주둔했다. 어느 위문공연을 하는데 학교에서 독창을 권했다. 당시 〈높은 고원의 달〉이란 영화의 주제곡을 불렀다. 교장 선생이 눈여겨보시고 아버지를 따로 불러우에노 음악학교진학을 권하셨다. 하지만 당시 도쿄에 미군이 폭격하는 상황이어서 유학을 갔다. 학교를 졸업하고 5개월 광복을 맞았다.
 
 
작곡가 현제명 선생이 이화여대 성악과 진학을 권하셨고, 김자경 선생을 소개해 주셨다. 2주간 〈봉선화〉를 열심히 배워 성악과에 합격했다.”
 
 
이후 남편 백선기를 따라 도미,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마리온 프레셀 교수의 개인 장학생으로 뽑혀 성악 지도를 받았다. 1960 귀국, 국립오페라단에서낙랑공주 조반니’, ‘루치아 람메르모어(Lucia di Lammermore)’ 등에 출연, 프리마돈나로 활약했다.    
 
 
슬하에 11녀를 두었는데 교육학 박사인 백수정(白修晶)씨는 현재 워싱턴에서 ESOL 평가 상담자로 재직 중이다. 사위는 워싱턴내셔널심포니의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우(金鉉祐). 아들 백충현(白忠鉉)씨는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ETS(교육평가원) 재무담당 상무로 일하고 있다. 며느리는 김애경(金愛瓊).




1950~60년대 활동할 당시 소프라노 김복희.




출 처 : 월간조선 2017년 5월호


* 김복희님의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www.feelpoem.com/board/bbs/board.php?bo_table=m41&wr_id=14661&page=7
* 문인 김팔봉(본명:김기진)님의 따님 김복희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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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width="100%" border="0" cellspacing="0" cellpadding="0"> <tbody><tr><td><BR> <BR> <b><font color="blue">藝家를 찾아서</font></b><BR> <center><b><font color="darkblue" size="4">조각가 김복진·비평가 김기진 후손들</font></b><BR><br> <b><font color="darkcyan" size="5">암흑시대 빛났던 두 형제의 예술혼</font></b></center><BR> <BR>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BR> <BR> <b><font face="굴림" size="3">⊙ 김복진은 현대조각의 개척자, 김기진은 계급문학의 이론가이자 논객<BR> ⊙ 김복진, 탁월한 근대미학의 소유자였으나 마흔에 요절 … 아내와 자식은 행방불명<BR> ⊙ 김기진, 일제 말 독립자금 운반하다 체포 … 출옥 후 한 달 뒤 광복<BR> ⊙ 김기진, 6·25 때 ‘인민재판’으로 구사일생 … 반독재 투쟁에 앞장서</font></b><BR> <BR> <center><BR> <img width="540" src="http://cfile202.uf.daum.net/image/262A0C4C59446FC415681B"></center><BR> <font face=굴림 size=3> 20세기 초 한국예술사에 김복진(金復鎭·1901~1940) 김기진(金基鎭·1903~1985) 형제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문학, 미술(조각), 연극, 예술비평에서 민족의 예술혼을 드높였다. 형은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 동생은 《조선일보》·《매일신보》 사회부장과 《중외일보》 학예부장으로 재직하는 등 언론인 족적도 뚜렷하다. <BR> <BR> 충북 청원 태생인 정관(井觀) 김복진은 현대조각의 개척자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서양화가가 고희동(高羲東)이라면, 최초의 조각가는 단연 김복진이다. 김제 금산사 미륵전 본존 불상, 충북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이 그의 솜씨다. 도산 안창호(安昌浩)가 서거하자 제자(이국전·李國銓)로 하여금 도산의 데드마스크를 뜨게 했다가 일경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마흔의 나이에 병사했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BR> <BR> 두 살 터울인 팔봉(八峰) 김기진은 형과 함께 한국 신극운동의 횃불인 ‘토월회’를 조직하고 한때 프롤레타리아 계급문학의 이론가이자 논객으로 활약했다. ‘카프(KAPF)’ 동인 박영희와 벌인 ‘내용·형식 논쟁’은 문학비평사에 가장 뜨거운 논쟁 중 하나다. 6·25 당시 북한 인민군 치하 서울에서 ‘인민재판’에 회부돼 가사상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동란 중 육군 종군작가가 되어 전선을 누볐으며 이승만의 자유당 말기에는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다. 예술원 회원으로 종신 추대됐으며 1985년 노환으로 사망했다. 《한국일보》는 그의 아호를 딴 ‘팔봉 비평문학상’을 제정, 매년 시상하고 있다.<BR> <BR> 두 예인(藝人)의 후손을 수소문했으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고향인 충북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에는 친인척이 살고 있지 않았다. 팔봉리 이장은 “안동 김씨 후손이 한 명 살았는데 30년 전 경기도 포천으로 이사 가는 바람에 소식이 끊어졌다”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6·25 당시 김복진의 아내와 딸이 행방불명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BR> <BR> 김복진은 숙명여자고보 교사와 교장을 지낸 허하백(許河伯·1909~?)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맏딸(김산용)은 3살 때 사망했고, 김복진의 사망 직후 태어난 둘째딸(김상미)은 소식이 끊어졌다. 아내 허하백은 좌익계열의 여성 정치인이자 교육자였으나 6·25 때 월북했다는 설, 9·28 수복 당시 좌익활동 혐의로 국군에 총살당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BR> <BR> <center><img width="540" src="http://cfile222.uf.daum.net/image/21277647594470781F9A71"><BR> <font face="굴림" size="2">도쿄미술학교 시절, 김복진이 소녀를 모델로 〈조선 소녀의 좌상〉이란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1925년 2월경이다.</font></center><BR> <BR> 김기진은 도쿄 유학시절 성악을 공부하던 강명희(姜明希·1983년 작고)와 결혼해 3남1녀를 낳았다. 장남 김인한(金仁漢·1988년 작고)은 《동아일보》 교열부 기자로 재직했으며 1975년 강제 해직된 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일을 맡았고, 《한겨레》 신문 창간에 관여했다고 한다. 아내 공석희(孔錫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었다.<BR> <BR> 장녀 김복희(金福姬·1928~)는 이화여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줄리어드 음악학교, 컬럼비아대 음대에서 수학했다. 1950년 한국 초연 오페라 〈카르멘〉으로 데뷔했다. 일제 때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한 애국지사 백남훈(白南薰)의 아들 백선기(白善基·2006년 작고)와 결혼해 1남1녀를 낳았다. 현재 미국 버지니아 주 맥클린에 살고 있다. <BR> <BR> 차남 김승한(金昇漢·1987년 작고)은 6·25 당시 참전한 뒤 육군 장교로 재직하다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다고 전해진다. 아내 김성순(金聖淳)과 사이에 2남1녀를 두었다.<BR> <BR> 삼남 김용한(金龍漢·1933~)은 미국 오클라호마 주 필립스주립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여론조사기관인 AC닐슨 코리아 사장과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 초대회장을 지냈다. 아내 최석희(崔錫姬)와 결혼, 슬하에 1남1녀를 낳았다. <BR> <BR> <b><font color="blue"> 김복진은 미술, 김기진은 문학을 택한 이유</font></b> <BR> <BR> <center><img src="http://cfile218.uf.daum.net/image/212CD04D594470A6131F11"><BR> <font face="굴림" size="2">김복진의 1924년작 〈여인입상〉과 1940년작 〈소년〉</font></center><BR> <BR> 미국 버지니아 주에 사는 김기진의 딸 복희(90)씨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문학과지성사 대표인 인하대 홍정선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홍 교수는 전7권의 《김팔봉문학전집》을 발간했고 ‘팔봉 비평문학상 운영위원회’ 간사를 맡아 후손을 대신해 시상하고 있다. <BR> <BR> 김 여사와 직접 만날 순 없었지만 다섯 차례 이상 통화하며 집안과 가족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음성은 때로 흔들렸고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 <BR> <BR> “아버지의 일생은 딸인 제가 보기에도 걷잡을 수 없는 탁류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힘겹게 사신 삶이었어요. 역류가 흘러들면 그것을 막으려 하셨고 때로 그 물에 휩쓸리면서도 누군가를 구해 보려 몸부림치셨어요. 일제 말엽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을 조국해방의 방법론으로 펴셨던 것, 친일(親日)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신 것도 이 탁류를 역행하려던 몸부림이셨어요.” <BR> <BR> 김기진이 일제 강점기 문학비평가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계급문학에 관여했던 일과 1944년 조선문인보국회에서 활동한 전력을 의식한 말이었다. <BR> <BR> <b> &#8212; 형(김복진)은 미술, 동생(김기진)은 문학을 택한 이유는 뭔가요.</b><BR> <BR> “1920년 두 분이 도쿄로 떠나셨는데 큰아버지(김복진)는 에노(上野)미술학교에, 아버지는 릿교(立敎)대 영문학부에 입학하셨죠. 그때는 자신의 재간(才幹)을 불사르려는 심정이셨던 것 같아요. <BR> <BR> 큰아버지는 조소, 아버지가 문학을 택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가 남기신 글이 있어요. 그 글에 이런 표현이 나와요. ‘우리 형제의 전공 분야 선택기준이 무엇이었더냐 하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오래오래 살아남는 길을 택하는 일이다. 사람이 세상에 왔다가 떠난 다음에도 가장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글이요, 그림이요, 조각이요, 건축물이 아닌가’ 하고 쓰셨어요.”<BR> <BR> 김복진은 1924년 일본 제전(제국미술전람회)에 조소 〈여인입상〉을 출품, 조선인 중 처음으로 입선했다. 당시 국내는 물론 일본 미술계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2년 뒤인 1926년 선전(조선미술전람회)과 제전에 출품, 나란히 특선과 입선을 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근대미학의 소유자였다. <BR> <BR> <b> &#8212; 김복진은 7년간 옥살이를 했고 불혹의 나이에 요절했는데, 사인은 뭔가요. </b><BR> <BR> “큰아버지가 수감된 기간은 5년8개월입니다. 사상범으로 제가 태어나던 해(1928년) 잡혀가 1934년 출옥하셨어요. 제가 일곱 살 때 어느 추운 겨울, 아버지가 절 서대문형무소로 데리고 가셨어요. 새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만기출소하시던 큰아버지를 상면했어요.<BR> <BR> 이런 일도 떠오릅니다. 출옥 후 두 분이 잡지 《청년조선》을 창간하셨는데 그해 12월 다시 일경에 체포되셨어요. 두 분을 굴비처럼 포승줄에 묶어 끌고 갈 때 대문 밖에서 할머니께 나란히 큰절을 하셨죠. 일경이 어머니(강명희)를 구둣발로 짓밟기까지 했어요. 다행스럽게 얼마 안 있어 풀려나셨습니다. <BR> <BR> 큰아버지는 큰딸을 ‘보보(寶寶)’라 부르며 무척 사랑했어요. 안타깝게도 보보가 장티푸스로 3살 때 죽자 (김복진도) 한 달 뒤 돌아가셨어요. 큰아버지도 감염되신 것이죠. 곰곰이 생각해 보면 1934년 출옥 후 돌아가시기까지 조각가로 활동한 기간은 5년에 불과해요. 그러나 유작 30여 점은 6·25 때 화재로 모두 불타 버렸습니다. 안타까워요.”<BR> <BR> <b><font color="blue"> 김복진,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font></b><BR> <BR> <center><img width="540" src="http://cfile207.uf.daum.net/image/227EDC4B594470D0230C07"><BR> <font face="굴림" size="2">김기진의 가족들.<BR> 뒷줄이 장남 인한, 앞줄 왼쪽부터 3남 용한, 팔봉 부부, 차남 승한.(1954년경)</font></center><BR> <BR> <b>&#8226; 김복진의 아내 허하백은 어떤 분이셨고 이후 어떻게 됐나요.</b><BR> <BR> “두 분은 소설가 박화성(朴花城)의 소개로 만나 1935년 결혼하셨죠. 큰어머니 허하백은 숙명여고보 교사셨는데 저도 그 학교를 나왔어요. 2학년 때 저를 가르치셨고 나중 교장도 하셨다고 해요.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못 뵀는데 이북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BR> <BR> 아버지가 6·25 때 ‘인민재판’을 받았잖아요. 그때 아버지를 수소문하며 사방을 헤맬 때 큰어머니가 ‘여성과학자동맹 위원장’으로 북에서 내려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을지로입구에서 종로로 가다 보면 개성인삼이란 간판을 단 건물 2층에 (큰어머니) 사무실이 있었는데 제가 찾아가 간청을 했어요. 아버지를 찾아 달라고요. 뜻밖에도 큰어머니는 ‘인민의 적이니 찾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무서웠어요. <BR> <BR> 나중 부산으로 피란 갔을 때 여류 문인 조경희(趙慶熙)·노천명(盧天命) 선생을 뵈었더니 큰어머니 말씀을 하시며 이북에 협력한 혐의로 총살당했을 것이라 하셨어요.” <BR> <BR> 김복희 여사는 1993년 국가보훈처에 큰아버지 김복진을 독립유공자로 신청했다. 당시 《조선총독부통치사》에 실린 김복진의 공판기록과 판결문을 첨부했다. 시인 구상(具常) 선생과 윤석중(尹石重) 선생이 자신의 일처럼 도왔고 직접 탄원서도 제출했다고 한다. <BR> <BR> “직계가족이 없으신 큰아버지 … 유작마저 6·25 때 모두 불탔잖아요. 큰아버지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고 싶었고 결국 돌아가신 지 51년 만인 199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으셨어요.”<BR> <BR> 각종 참고·소명 자료를 제출하고 5년간의 기다림 끝에 이뤄 냈다. 김 여사가 나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BR> <BR> 김기진은 《중외일보》 학예부장으로 있던 1928년 형 김복진이 검거되자 이듬해 5월 퇴사했다. 생계를 위해 정어리 기름 짜는 공장을 시작했다가 폭삭 망했다. 심지어 금광에 뛰어들었고 명동에서 증권시장을 기웃거렸으며, 배재학당 교장이던 아펜젤러의 도움으로 인쇄소를 인수받아 ‘애지사(愛智社)’라는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았다. 김 여사의 말이다. <BR> <BR> “큰아버지가 잡혀가시고 아버지는 어떤 식으로든 집안을 이끄셔야 했어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가 네 분이나 계셨어요. 할아버지가 삼형제 중 막내셨는데, 첫째 둘째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혼자 되신 두 분 할머니를 아버지가 부양하셨어요. 친할아버지와 할머니, 서(庶)할머니까지 책임지셨으니 아버지의 어깨가 무거웠을 겁니다. 저는 어릴 때 우리 집에 할머니가 왜 네 분인지 이해할 수 없었죠. 한 방에 10여 명이 함께 잤던 기억도 잊을 수 없고요. 그 시절 아버지가 친일활동을 하신 게 마음 아프지만, 집안 사정상 어떤 식으로든 직업을 가져야 하셨죠. 요즘 사람들이 그때를 안 살았으니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BR> <BR> 팔봉은 정어리 공장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1930년 1월부터 114회에 걸쳐 《조선일보》에 〈해조음(海潮音)〉이라는 해양소설을 연재했다. 그리고 그해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언론계에 복귀했다. 1934년 김기진은 ‘2차 카프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38년 5월 《매일신보》에 다시 입사해 사회부장으로 재직했다. <BR> <BR> 해방 직전인 1944년 김기진은 조선문인보국회 상무이사가 되어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와 중국 상하이 대동아문학자대회에 참가한 일도 있다. <BR> <BR> 김 여사의 말이다.<BR> <BR> <b><font color="blue">김기진이 하고 싶었던 출판의 꿈, ‘애지사(愛智社)’</font></b><BR> <BR> <center><img src="http://cfile209.uf.daum.net/image/220AE44E594470FC1521BF"><BR> <font face="굴림" size="2">김기진의 딸 김복희 여사. 소프라노 가수로 1950~60년대 프리마돈나로 활약했다.</font></center><BR> <BR> “남편(백선기)이 예일대 A·폭스 교수가 쓴 《약소국의 위력(威力)》(1974년 刊)이란 책을 번역한 일이 있어요. 그 책을 보면 1940년대 초 이미 일본은 패망하고 있었고 지식인들도 더러 그 사실을 인식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역시 일본이 패망하리라는 사실을 아셨을 겁니다. 아버지는 춘원과 함께 중국 상하이로 가 일본 돈으로 100만원을 구하셨어요. 요즘 돈으로 몇억 원일 겁니다. 먼저 20만원을 국내로 송금했지만 나머지 돈을 운반하려다 일본 헌병대에 잡히고 마셨어요. 평양으로 압송되셨는데 출옥 후 한 달쯤 지나 해방이 됐어요. 아버지가 평양에서 해방을 맞았다면 남쪽으로 오기 힘들었을 겁니다. 아버지의 운명이었나 봐요.” <BR> <BR> 광복 후 김기진은 좌우익 양쪽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나 같은 친일을 한 사람은 조용히 자숙하겠다”며 거절했다고 전해진다.<BR> <BR> 김 여사는 기자에게 1976년 4월 18일 자 《독서신문》에 실린 팔봉의 참회록 〈남길 만한 것은 없다〉를 소개해 주었다. 그 참회록의 일부분을 인용해 본다. <BR> <BR> 〈… 8·15 이후 여운형씨의 ‘건국준비위’에서 뒷방 일을 맡아 일하던 박석윤(朴錫胤)이가 한국전력회사 중역실에 사무실을 차리고 있을 때 어느 날 내가 이 방에 잠깐 들렀더니 총독부 보안과장으로 있던 야기(八木)가 “팔봉씨는 북경에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나오신 일이 이제 와서는 유익하게 됐습니다. 친일하지 않은 증거가 되니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해방 후에 내가 일본인한테서 최초로 들은 말이었기 때문에 기억되는 말인데, 물론 그의 말도 일면은 진실은 되지만 나의 의도는 딴 곳에 있을망정 내가 남겨 놓은 친일문자에 대한 수치감은 어찌할 것인가? …〉<BR> <BR> 팔봉은 광복 후 출판·인쇄업에 뛰어들었다. 애지사의 직원 수가 100명이 넘었다고 한다.<BR> <BR> “아버지는 큰 꿈이 있으셨어요. 러·일·중·독·프·영·이태리어 등 일곱 나라 말로 책을 출간하려고 자모(字母) 인쇄활자를 많이 준비해 놓으셨어요. 좋은 책을 보급해 (국민을) 계몽하고 싶으셨어요. 하지만 해방 직후 시인 김소운(金素雲)씨가 발행한 《만화행진》이라는 주간신문을 외상으로 인쇄하다 큰 손해를 봤어요. 떼를 쓰고 인쇄를 부탁하니 거절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빚을 많이 지셨죠. 종업원들 월급 날이 되면 전전긍긍하시던 모습이 떠올라요. <BR> <BR> 6·25 때 애지사가 화재로 소실됐는데 불탄 자리에 납으로 된 활자가 수북이 쌓였던 장면이 떠올라요. 운이 없었던 겁니다. 아니, 운이 있었어요. 개화기 때 일본에 가서 공부하시고 처음엔 시를 쓰다 소설을 쓰시고 문학평론가로 널리 알려졌으니 운이 좋으셨던 것이죠.”<BR> <BR> <b><font color="blue"> ‘인민재판’ 그 뒷이야기</font></b><BR> <BR> <center><img width="540" src="http://cfile237.uf.daum.net/image/2716834C5944712D15EFC0"><BR> <font face="굴림" size="2">1950년 7월 2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자행된 인민재판.<BR> 양복을 입은 이가 팔봉(八峯) 김기진이다.</font></center><BR> <BR> 팔봉이 6·25 당시 겪었던 ‘인민재판’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해방 후 팔봉은 5년간 좌우에 가담하지 않아 ‘설마 내게 무슨 위험한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두문불출했다. 그러나 인민군에 붙들려 광장의 군중 속에서 즉결처분을 받았다. <BR> <BR> 기자는 국회도서관에서 팔봉이 쓴 수필 〈인민재판〉(《세대(世代)》1966년 7월호), 〈나의 인민재판과 허수아비〉(《새길》1963년 6월호)를 읽었다. 부분 인용하면 이렇다.<BR> <BR> 〈… 판사의 사형선고가 있은 지 약 1분 후에 군중을 향하여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오. 죄인 김팔봉 악질한테 사형을 집행하는 일에 찬성인가? 반대인가? 의사를 발표하시오” 이렇게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 사회자의 말이 떨어진 후 군중들은 아무런 반향을 보이지 않았다. (중략) 사회자의 독촉하는 말이 떨어진 지 약 10초가량 지난 뒤에는 한 놈이 박수를 치니까 그것을 신호로 해서 좌측과 우측과 전면에서 약 오륙십 명의 박수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내 앞에 있던 군중의 십분지 일가량이 사형선고에 찬성을 표시한 것밖에 안 된다. 그랬건만 나는 그 박수소리가 난 지 1분가량 후에 “총탄도 아까우니 때려 죽여라!” 하는 호령소리와 함께 몽둥이로 대가리를 맞아 터져 가지고 피를 분수처럼 쏟으면서 거꾸러졌다.(후략) 〉 (《세대》1966년 7월호, p52~53)<BR> <BR> 김 여사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BR> <BR> “6·25 당시 저는 가회동 친구 집에서 지냈어요. 우리 집은 전차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친구 집은 조용했고 피아노가 있었거든요. 7월 1일 밤에 아버지가 잡혀가셨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이튿날부터 아버지를 찾아 다녔어요. 나중 아버지 말씀이, 인민재판을 당한 뒤 눈을 뜨니 어떤 이가 ‘댁에 가시겠습니까’ 하고 묻더랍니다. 그때 벽에 걸린 달력에 ‘6’이란 숫자가 걸려 있었다고 해요. 날마다 한 장씩 뜯는 일일(一日)달력이었나 봐요. 하지만 곧 기절하셨고 다시 깼더니 벽에 ‘7’이라고 적힌 숫자가 눈에 들어왔지만 또 혼절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튿날 ‘8’이란 숫자를 보고서야 혼자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애지사가 을지로3가 국도극장 건너편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맨발로 집에 오셨어요.<BR> <BR> 아버지 말씀이, 인민군과 그 앞잡이들이 아버지의 머리를 땅에 박고 두 다리를 거꾸로 매단 채 태평로에서 광화문까지 끌고 다녔다고 합니다. 옷은 물론이고 살이 다 해어질 정도로 끌고 다녔고 뒤통수엔 뼈가 보일 정도였어요. 맨발에다, 입속 금니까지 누군가 빼 갔다고 해요. <BR> <BR> 동생 혈액형이 O형이어서 급히 수혈을 했는데 어떤 분이 페니실린 한 박스를 갖다 줘 살아날 수 있었어요. 더는 집에 모실 수 없어 아버지와 가까우셨던 문학평론가 최재서(崔載瑞) 선생 집(후암동)에 잠시 모셨다가 여운형씨와 가까운 댁(돈암동)에 숨어 계셨어요. 그러다 9·28 수복을 맞았죠. 아버지가 혼절했다가 다시 깨어나는 과정을 반복할 때 누군가 곁에 있었을 텐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하니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없어요.” <BR> <BR> <center><img width="540" src="http://cfile232.uf.daum.net/image/26699A4C59447153121F9F"><BR> <font face="굴림" size="2">박정희 대통령과 김기진.</font></center><BR> <BR> 이후 김기진은 대구에서 종군작가로 입대, 1953년까지 주로 ‘전선문학’에 해당하는 글을 썼다. 자유당 말기에는 민권수호투쟁위원회에 참가,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고 1960년 《경향신문》 주필, 61년 펜클럽한국본부 부위원장, 69년 소아마비아동보육협회장, 72년 문인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또 역사소설 《통일천하》(1954년), 《군웅(群雄)》(55년), 《성군(星群)》(64년)을 신문에 장기 연재하면서 필봉을 이어 갔다. 그에게 금성화랑 무공훈장, 국민훈장 동백장이 수여됐다. 그러나 생의 후반기 문학활동이 전반기 문학의 순수함과 치열함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BR> <BR> <b> &#8212; 김기진 선생의 말년은 어떠셨나요.</b><BR> <BR> “아버지는 수유리 산장에서 사셨는데 ‘인간문제연구소’라는 연구기관을 세우려 하셨어요. 인간이 경애하고, 의를 갖추며 사양하고, 분별할 줄 아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실천궁행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싶으셨어요. 하지만 우리 4남매가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고 유업도 잇지 못했어요. 정말이지 가슴이 아파 죽을 것 같아요.” <BR> <BR> 올해 아흔인 김복희 여사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여전히 움켜쥐고 있었다. 외경과 연민이 섞인 감정이었다. <BR> <BR> “아버지는 생전 저를 끔찍이 사랑하고 아껴 주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사랑 덕에 성격이 비교적 솔직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도 자연스레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날, 참으로 많은 꿈을 지니고 사셨어요. 어느 만큼이나 이룩하셨는지는 저로선 판단할 수도 없는 일이고 신(神)만이 알 수 있는 결산표일 겁니다.”⊙<BR> <font color="#222222">&nbsp;&nbsp;&nbsp;<BR> <!-- } SE3-TEXT --></font><BR> <div class="se_component se_table default"><div class="se_sectionArea se_align-left"><div class="se_editArea"><div class="se_table_wrap" id="SEDOC-1497662824181-1818607666_table_0" data-attachment-id=""><div class="se_table_innerWrap"><table class="se_table_col" style="width: 100%;"><tbody><tr><td class="se_cell se_align-left" style="padding: 11.25pt; border: 1pt inset rgb(210, 210, 210); border-image: none; width: 100%; height: 572px; background-color: rgb(255, 255, 255);" rowspan="1" colspan="1"><div class="se_cellArea"><b><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김복희</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b><b><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여사는</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b><span style="color: rgb(34, 34, 34);">&nbsp; <BR> &nbsp; </span><b><span style="color: black;">1950~60</span></b><b><span lang="KO" style="color: black;">년대</span><span lang="KO" style="color: black;"> </span></b><b><span lang="KO" style="color: black;">프리마돈나로</span><span lang="KO" style="color: black;"> </span></b><b><span lang="KO" style="color: black;">활약</span></b><span style="color: rgb(34, 34, 34);">&nbsp; </span><BR>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span style="color: rgb(47, 115, 186);">. <a href="http://58.120.226.147/tracker/adiStory/clk.php?aHR0cDovL3N0b2NrbGluay5jYWZlMjQuY29tL2V2ZW50X2ltZy8/YWQ9YWRpc3RvcnkjOTU2NCMzOTMjMTc0IzEjQQ==" target="_blank"><span><span style="color: rgb(79, 79, 79);" ;="">&nbsp;</span></span></a></span><BR> <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김복희</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여사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이화여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음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성악과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졸업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6·25</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발발하기</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직전인</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1950</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년</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1</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서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시공관에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오페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카르멘〉에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카르멘</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역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맡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국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초연하기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그녀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한국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미국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오가며</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소프라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가수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활동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BR> &nbsp; <BR> &nbsp;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시절</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좋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저음</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목소리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가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이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적고</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어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가나</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죄다</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군가만</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부르던</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시절이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어머니</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강명희</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성악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배우셔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영향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받았다고</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생각한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숙명여자고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시절</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태평양전쟁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발발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일본군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교정에</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천막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치고</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주둔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어느</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날</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위문공연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하는데</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학교에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독창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권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당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높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고원의</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달〉이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영화의</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주제곡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불렀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교장</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선생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눈여겨보시고</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아버지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따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불러</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우에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음악학교</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진학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권하셨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하지만</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당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도쿄에</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미군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폭격하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상황이어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유학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못</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갔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학교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졸업하고</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5</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개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뒤</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광복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맞았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BR> <span style="color: rgb(34, 34, 34);"> &nbsp; <BR> &nbsp;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작곡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현제명</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선생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이화여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성악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진학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권하셨고</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김자경</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선생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소개해</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주셨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2</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주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봉선화〉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열심히</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배워</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성악과에</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합격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BR> &nbsp; <BR> &nbsp;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이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남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백선기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따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도미</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줄리어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음악학교에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마리온</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프레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교수의</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개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장학생으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뽑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성악</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지도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받았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1960</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귀국</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국립오페라단에서</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낙랑공주</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와</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돈</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조반니</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루치아</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람메르모어</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Lucia di Lammermore)’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등에</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출연</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프리마돈나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활약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 &nbsp;&nbsp;<span style="color: rgb(34, 34, 34);">&nbsp;</span> <span style="color: rgb(34, 34, 34);"><BR> &nbsp; <BR> &nbsp;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슬하에</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1</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남</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1</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녀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두었는데</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교육학</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박사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백수정</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白修晶</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씨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현재</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워싱턴에서</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ESOL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평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및</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상담자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재직</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중이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사위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워싱턴내셔널심포니의</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바이올리니스트</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김현우</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金鉉祐</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씨</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아들</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백충현</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白忠鉉</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씨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뉴저지</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주</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프린스턴에서</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ETS(</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교육평가원</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재무담당</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상무로</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일하고</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있다</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며느리는</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 </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김애경</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金愛瓊</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span><span lang="KO" style="color: rgb(34, 34, 34);">씨</span><span style="color: rgb(34, 34, 34);">. </span><BR> </div> </td></tr></tbody></table></div></div></div></div></div> <BR> <BR> <BR> <center><img src="http://cfile228.uf.daum.net/image/266E904E59447189382F78"><BR> <font face="굴림" size="2">1950~60년대 활동할 당시 소프라노 김복희.</font></center><BR> <BR> <BR> <BR> 출 처 : 월간조선 2017년 5월호<BR> <BR> <BR> * 김복희님의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BR><br> <A href=http://www.feelpoem.com/board/bbs/board.php?bo_table=m41&wr_id=14661&page=7 target=_blank>http://www.feelpoem.com/board/bbs/board.php?bo_table=m41&wr_id=14661&page=7</A><br> * 문인 김팔봉(본명:김기진)님의 따님 김복희님 이야기 <BR> <BR></font> <BR> <BR> <BR> </td></tr></tbody></table><BR>

kgs7158 17-06-18 12:40
 
고맙습니다
귀한자료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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