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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09 00:07
 글쓴이 : 안희선.
조회 : 160  

                                          [주름간 대리석에 관하여 / 안희선]를 읽고

                                                                         

                                                                         - Written by Morningdew -

 

 

 

[주름간 대리석에 관하여]라는 詩題 자체가 흥미롭다.

시의 형식도 특이하다. 시에 대한 감상문 형식으로 쓰여진 듯이 보인다.

하지만, 詩의 全文을 먼저 기술하지 않고, 감상문처럼 써 내려간 詩의

중간에 詩題의 중심이 된 詩, [주름간 대리석]의 全文을 넣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詩를 쓰고자 하는 主된 내용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은,

全文이 삽입된 詩만이 아니라, 그 詩를 쓴 詩人에 대해서도 함께 詩를 쓰고 있다.

이 詩의 첫 귀절, [김종삼 시인은/영원한 수수께끼이다]라는 문장이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그는 왜 죽어서도 시를 쓰는 것일까]

죽은 사람이 어떻게 詩를 쓴다는 말인가?

은유(隱喩)이다. 다음 문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가 남겨놓은 대리석은/왜 주름이 갔는지]

[대리석은 나에게 오직, / 창백한 함성 뿐인 것을]

여기에서의 '나'는 비단, 시인 자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詩를 읽는 독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서의 의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시를 읽는 그 모든

이들, 그(김종삼 시인)의 이 시(주름간 대리석)을 읽는 시인(안희선시인) 자신을

포함한, 시를 읽는 모든 '우리'의 개념으로서의 '나'이다. 형태는 1인칭 단수이지만,

의미는 1인칭 복수로 쓰인 셈이다. 그러한 의미의 '나'에게 있어서 '대리석'이라는

것은, 그저 차가운 물체이고, 함성(대리석이 뭔가 말하고자 한다 하여도, '나'에게는

이제껏 창백한(생생하게 뭔가 말하지 않는 상태를 '창백하다'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함성 뿐이었지만, 김종삼 시인의 [주름간 대리석]이라는 詩가 그 詩를

읽는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되어, 우리들의 마음에 새롭게 詩를 쓰듯이 다가오는 것을

[그는 죽어서도 시를 쓴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하지만, 그에게 / 대리석은 이미 대리석이 아닌 것을]라고 쓴 것은, 우리에게

그저, 창백한 물체로서의 대리석으로만 보이는 그 대리석에 詩를 새겨 넣었으므로, 어떤

의미부여가 된 그 대리석은 더이상 차가운 물체로서의 대리석이 아니라, '주름간' 대리석인 것이다.

 

그럼, 왜 '주름간' 대리석일까?

이 시에 삽입된 [주름간 대리석]의 全文을 보자.

 

한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구조(構造)의
대리석(大理石)

그 마당(寺院) 한구석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았다



 

2연으로 이루어진 짧은 詩이다. 딱 4줄로 된 詩이다.

 

[달빛 드는]... 얼마나 간결하고 단아한 느낌인지...

낡은 구조(構造)의 대리석(大理石).....

지금 막 지어진 건물의 대리석이 아니라, 지어진 지가 꽤 된 구조의 대리석에

달빛이 흐르며 물들어가고 있다, 한모퉁이에...

 

그리고 또 다른 곳, 그 마당(寺院)-낡은 구조의 대리석이 놓여 있는 같은 공간-의

한구석에는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았다]라고 쓰고 있다.

그렇게 같은 시간대(달빛 드는 시간)에, 같은 공간(寺院의 마당)의 '한모퉁이'에는

대리석(大理石)이, 또 다른 '한구석'에는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한 공간, 한 시간대(달빛 흐르는 시간)이기에 1연에서 대리석(大理石)에 드는

달빛은 한잎 두잎 내려 앉는 잎사귀에도 흐르는 것이다.

시인(안희선 시인)이 [달빛에, / 고요한 뿌리를 내리는 잎사귀들]이라고 쓴 것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한 것이라 짐작된다. 즉, 달빛이 흐르는 고요한 밤에 잎사귀들은

뿌리를 내리는 생명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놓여 있는

대리석(大理石)에도 동일하게 그 생명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함께 새겨지듯

주름(시간이 흐른 흔적)처럼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달빛에, / 고요한 뿌리를 내리는

잎사귀들]을, 같은 공간에서 대리석(大理石)은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생명체 활동의

주체는 '잎사귀들'이지만, 달빛 드는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 생명체의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움직임은 대리석(大理石)-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대리석(大理石)'이 詩를 쓴

시인(김종삼 시인) 자신일 수도 있겠다-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 지나간 흔적으로 남아

[주름간 대리석]이 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가지, 시인의 시선에서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았다]라는 부분을

詩 전개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를 무심결에

읽어나갔다면,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았다]라는 부분을, 마당에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을 묘사했다고, 통상적인 개념으로 길들여진 습관의 나태함으로 지나칠

법도 한 이 부분을, 시인은 새로운 각도로 전환(轉換)하고 있다.

[식물도감을 훑어보니]라고 전환점(轉換點)을 찍고 있다. 왜 식물도감을 훑어보았을까?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았다]라는 부분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잎사귀가 떨어진다'라는 표현은 '죽음'이나 '종말'을 의미한다. 생명이 다한

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것인데 반(反)해, [잎이 내려 앉았다]라는 표현은, 생명활동의

지속(持續)과 유지(維持)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잎이 내려 앉는 식물'이 있다는 얘기이고,

그러한 식물-잎을 가졌을 테니 식물이다-이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 듯하다.

그 작은 단서 하나만 가지고 [식물도감]을 훑어보고 결국 찾아낸 끈기도 대단하다.

그러한 예감에 기꺼이 답을 준 [식물도감]은 또 얼마나 즐거웠을까! 할 바를 다 했으니...

 

 

결국, 찾아낸 것은 [바위취]라는 식물이다. 그럼, 이 [바위취]에 대해서 살펴보자.

식물도감을 훑어 본 시인은 이 [바위취]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첨부하였다.

 

 

바위취(Saxifraga stolonifera)
바위취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잎에서 뿌리줄기가 뭉쳐 나는데 신장 모양이며 길이 3~5cm, 폭 3~9cm이고 흰색 무늬가 있다.
꽃은 5~6월에 피는데 꽃줄기가 높이 20~40cm 정도로 곧게 서며 원추꽃차례에 달린다.
꽃잎은 다섯 장인데, 윗 세 장에는 짙은 붉은색 점이 있다.
아래에 달린 두 장의 꽃잎은 흰색이고 바소꼴이며 길이 1~2cm 정도로 나란히 아래를 향한다.

 

좀 더 자세히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바위취]라는 식물은 안개나 운무에서 나오는 작은 물방울,  아침이슬을 먹고 살아간다.

바위취 종류들은 대부분 바위에 붙어 사는데, 대표종인 바위취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바위취는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서식하는 것이다. -백과사전에서 발췌, 요약-

 

그렇다면..... 식물도감을 훑어본 시인은, 그러한 사실을 근거로 하여 수수께끼 같은 이 詩,

[주름간 대리석에 대하여] 후반부에 쓰고 있듯이....... [대리석(大理石)]에 주름이 간 이유를,

그 바위(대리석을 말한다. 원래 대리석(大理石)은, 석회암이 높은 온도와 강한 압력에 의하여

성질이 변한 변성암의 한 가지-사전 참조-로, '바위'이다)에 뿌리를 한잎 두잎 내려 앉아서

서식하는 잎사귀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로, 바위취의 잎사귀들이다.

 

이로써 수수께끼 같던 김종삼 시인의 詩, [주름간 대리석]을 풀어나간 것이라고 생각된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 화만 내지 말고]라는 부분이 참 재미있다. 그 말은, 이 詩를 읽는

독자들을 향해서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주름간 대리석]이라는 詩를 시인이 처음 대했을 때,

'도대체 대리석이 주름갔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품었을 때 생긴 '답답함' 정도가

아니었을까. '화만 내지 말고'라는 말은, 그러한 '답답했던 느낌'의 표현으로 생각된다.

[누군들 알았으랴, / 그 단단한 대리석에 / 왜 주름이 가는지]... 이것은, 수수께끼 같은 詩를 풀어낸

감탄과 놀라움이 아닐까!  정갈하고 단아한 4줄의 詩 속에 수수께끼처럼 감추어 쓴 詩.......

[문득, 하늘에 계신 / 시인이 그리워진다]

詩를 이해한 순간에, [주름간 대리석]을 쓴 김종삼 시인이 문득 그리워진 것일까...

 

2018년 2월 28일에 올려진 안희선 시인의 詩, [김종삼]에서도 '죽은 후에도 쓰는 시'라는

귀절이 나온다. 그 詩에 댓글을 달았었는데, 지금까지 답글을 받지 못했다. (웃음)

 

지금, 찾아보니, 그 댓글이 홀로 외로이,  詩 [김종삼]의 게시글 아래에서

단단하기만 하던 대리석('나')에 주름이 가기를 바라면서, 시의 생명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모닝듀 18.03.01. 00:39

[죽은 후에도 쓰는 시,
너무 힘겨워
차마 읽지 못합니다]

아침에 이 시를 읽고, 하루 종일 이 구절이 머리 속에 맴돌며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무게감으로 다가선 이 글이, 시인의 굵직한 존재감으로 승화되는 시간이었던 듯합니다.
퇴근 후에,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김종삼 시인의 시들을 거의 다 찾아 읽어봤죠.
[시인 학교]에 나오는 <장편2>부터 시작해서 <돌각담>, <북치는 소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etc.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이 후의, 짧은 시간에 동요된, 순수의 파장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되어,
화두를 던져 주신 희선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시의 감상을 마치며, 안희선 시인의 [주름간 대리석에 관하여] 詩 전문과,

함께 올려졌던 음악을 한번 더 첨부한다.

 

주름간 대리석에 관하여


김종삼 시인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그는 왜 죽어서도
시를 쓰는 것일까

그가 남겨놓은 대리석은
왜 주름이 갔는지

대리석은 나에게 오직,
창백한 함성 뿐인 것을

하지만, 그에게
대리석은 이미 대리석이 아닌 것을


* ' 한모퉁이는 달빛 드는 낡은 구조(構造)의
대리석(大理石)

그 마당(寺院) 한구석
잎사귀가 한잎 두잎 내려 앉았다 '


달빛에,
고요한 뿌리를 내리는 잎사귀들

누군들 알았으랴,
그 단단한 대리석에
왜 주름이 가는지

식물도감을 훑어보니,
정말 잎사귀에서 뿌리를 내리는
그런 나무가 있었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화만 내지 말고

문득, 하늘에 계신
시인이 그리워진다

 


                                                                                                       - 안희선

 




Cancion Triste - Jesse Cook [guitar] & Ofra Harnoy [C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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